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스마트이미지 제공최근 서울 강남에서 투신한 10대 여학생, 그는 옥상 난간에 휴대전화를 올려두었다. 'SNS 생방송'은 그가 투신을 결심하며 "간다"고 말하는 장면부터, 실제 떨어지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생중계'했다.
SNS를 통해 고스란히 노출된 투신 영상은 끊임없이 유포되면서 'SNS 생방송'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있다.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SNS 생방송'.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SNS 생방송으로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할 법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연이은 '사건사고' SNS 생중계…사전 규제 불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고층건물 옥상에서 10대 여학생이 몸을 던졌다. 여학생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미리 투신 계획을 알리고, 옥상 난간에 걸쳐둔 휴데전화로 실제 투신 장면까지 그대로 중계했다. 수십 명의 시청자들이 접속해 시청했고, 이후 투신 영상은 끊임없이 유포됐다.
지난달 30일에도 서울 영등포구 양화대교 밑 공원에서 10대 남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장면을 SNS를 통해 생중계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자신의 마약 투약 장면을 실시간으로 공개했고, 지난 1월 9일 대구에서는 중학생들이 동급생을 폭행하고 성추행하는 장면을 SNS를 통해 생중계했다.
이처럼 'SNS 생방송'을 통해 각종 범죄 및 사건사고 장면이 생중계되지만, 이를 사전에 규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는 방송법상 '방송'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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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상 방송사업자들은 미리 내부 내용 심의를 거쳐야 하고, 유해성·공정성·객관성 등 다양한 요소로 촘촘한 외부 규제를 받는다. 반면 SNS 생방송은 방송이 아닌 '부가통신서비스'(통신)다. 거대 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 규제가 상식인 방송법과 달리 정보통신망법으로 규제하니 사후 규제만 허락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김태우 변호사는 "(SNS 생방송에 대해서는) '검열' 논란이 있을 수 있어 사전 규제가 아닌 사후 규제만 가능하기에, SNS 생방송 시점에 직접 개입해서 규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현행법상 없다"며 "방송의 경우 내부적으로 사전 심의하도록 제도화가 되어 있지만, 통신의 영역에서는 아직 그런 제도가 마련되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사자도, SNS 사업자도, 2차 유포자도…'사후 처벌' 어려워
그렇다면 사후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범죄 장면을 SNS로 방송하면 당사자의 '범죄 행위'는 개별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방송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는 없다. 예컨대 마약 투약 장면을 생중계하면 마약 투약 행위를 처벌할 수는 있지만, 방송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은 (유해 영상을) 삭제·차단한다는 취지지, 범죄 장면을 방송하는 행위에 대해서 처벌하겠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범죄 등을 방송한 당사자는 물론, 해당 방송을 세간에 알린 플랫폼을 제공한 SNS 사업자에 대한 처벌조차 불가능하다. 대다수 SNS 라이브 방송은 영구적인 콘텐츠가 아닌 '휘발성 콘텐츠'이기 때문에 방통위 심의 대상이 아닌데다, 설령 생중계 방송이 저장돼 온라인에 남아도 SNS 사업자에게 해당 영상에 대해 접근 차단·삭제 요청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방통위 김정훈 차장은 "(SNS 사업자는) 통신사업자이기 때문에 방송사업자에 국한해서 적용되는 방송법과 방송심의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며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의 경우 해외 사업자다 보니 국내 법률을 근거로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결국 SNS 사업자의 자율적인 자정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당사자나 사업자에 대한 처벌 및 제재도 어려우니 2차 유포자를 처벌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영상들을 일일이 찾아내기 힘들뿐만 아니라 '2차 유포'에 대한 뚜렷한 처벌 조항도 전무하다. 방통위 관계자는 "투신 영상을 유포할 경우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특별히 (처벌할 수 있는) 다른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급변한 환경 따라, 관련법 전면 검토 필요"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스마트이미지 제공물론 과거에도 범죄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된 사례는 꾸준히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잇달아 인터넷을 떠돌았던 이른바 'X양 비디오'들도, 2004년에는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당한 고 김선일씨의 피살 영상도 논란이 일었다. 그때마다 경찰은 즉각 영상 차단과 유포자 단속에 나섰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정된 매체에서 제한적으로 영상이 유포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에 없던 수많은 SNS와 플랫폼이 등장했다. 누구나 방송사 부럽지 않은 'SNS 생방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찾아오면서 결국 'SNS 생방송'으로 범죄가 생중계되기까지 한 것. 뒤집어 말하면 방송법이 급변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최근 새롭게 발생한 범죄를 단속하는 데 빈틈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방심위의 사후 규제나 SNS 사업자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방송 환경이 변한 만큼, '어디까지 방송으로 보고,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는가'에 대해 재검토하자는 것이다. 앞서 2019년 국회에도 유튜브를 플랫폼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등 방송을 다시 정의하기 위한 '통합방송법(방송법 전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가 만료돼 폐기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방송'의 범위를 새롭게 정의해, 라이브 서비스를 제공하는 SNS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유럽연합의 경우 SNS 사업자를 '미디어중개사업자'로 규정하고, 그들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책임과 처벌 규정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 또한 SNS 사업자의 개념을 부가통신사업자에서 미디어중개사업자로 확대해, SNS 생방송 서비스 등 해당 SNS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