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다른 제공4월 16일 아침. 모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데 문득 '식판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가 회전하고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객실에 돌아왔는데도 배가 기울어진 게 느껴졌다. 갑자기 배 안의 모든 불이 꺼졌다. 잠시 후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세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가만히 계세요!"설레임과 환한 웃음으로 3박 4일 간의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일이 닥쳤다.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325명의 아이 중 생환한 이는 불과 75명.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한 명이었던 유씨가 9년 만에 그날의 기억을 꺼냈다.
최근 출간된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그가 참사 이후 9년 간의 일기에 담아낸 '생존자의 생존기'다. 세월호 생존자가 직접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는 사고 당일 친구와 함께 기울어진 배의 미끄러운 바닥을 기어 위로 올라간 끝에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다. 커다란 배는 이미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겨우 헬기에 올라 인근 섬에 착륙했다. 마을회관 밖에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렸지만 수 많은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TV에서는 생방송으로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참사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처음 1~2년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자의 눈에 어느 순간 책이 읽혀지지 않았다.
"다들 혼자 있으면 심적으로 더 안 좋았기 때문에 항상 함께 모여 있었어요. 모여 있으면 안심이 되었고 더러 웃기도 했어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지내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얼마 동안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벌어진 사고를 인정할 수 없어 회피했던 건지도 모르죠."트라우마는 스멀스멀 그들을 덮쳤다. 저자는 수없이 자해까지 시도하다 대학에 간 뒤에 정신병원 폐쇄병동에까지 입원했다. 여전히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그는 이겨내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
저자가 고심 끝에 고른 책의 제목도 '살아내다'이다. 주어진 시간을 살아 견뎌내는 삶. 책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으면서도 평범한 삶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온 치열하면서도 담담한 일상의 기록이 담겨 있다.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마음건강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씨랜드(1999) 유가족을 만나고 남들처럼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평범하게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끊이 없이 버둥댔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운디드 힐러'(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의미)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재난 피해자를 돕는 활동도 하기 시작했다. 트라우마에 취약한 아동과 갑작스러운 재난 재해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 트라우마를 알려주는 인형극을 하고 산불 피해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방도 운영했다.
그러나 단체 활동을 한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진 않았다. 저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평생에 남을 상처를 평범한 그가 완전히 극복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깨달았다"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고 마음먹었다.
여전히 그는 그날의 일을 기록하고 재난 재해 현장을 누비며 트라우마를 겪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여정을 이어가려 한다. 세상은 여전히 사회 재난,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비방과 혐오를 던지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책 출간을 권유받고 망설임 끝에 용기 내 책을 쓴 이유다.
"저는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다음 세대인 아이들도, 더 성장해 나갈 저의 세대 사람들도 우리 앞에 벌어진 참사에 두 눈을 뜨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남겨진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많은 노력을 할 거예요. 부디 관심을 거두지 않기를, 생각을 멈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유가영 지음ㅣ다른ㅣ164쪽ㅣ1만 2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