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에 국민의힘은 사실관계가 우선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공세를 취하는 야당을 향해서는 "한미동맹을 흔들고 있다"며 역공을 펴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지지율 반등의 계기로 기대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가 오히려 여론 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기조"라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의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는 공식 입장에 발맞춘 여론전도 이어갔다. 육군 중장 출신 신원식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문건은 완전한 거짓말로 내용 자체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왜 틀렸다는 것인지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일종 의원도 SBS라디오에서 "각국 도청은 모든 나라가 다 하고 있다. 단지 공개를 안 하고 있을 뿐"이라며 "(문건에) 중국이나 러시아의 정보는 없고 자유 진영에 대한 것들만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정보는 가공이 됐다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도 여당 의원들의 질의는 대통령실에 대한 방어에 집중됐다.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은 "도청 관련 문건 대부분이 미국과 우리의 우방국들이었다.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에서 고의로 가짜뉴스를 퍼트려 정보전을 전개하려는 목적으로 벌인 일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나"라고 질의했고, 태영호 의원도 "자료 중 어떤 게 사실이고 위조인지 밝히는 것 자체가 중대한 기밀 유출이 될 수 있다. (조사가 끝난 뒤에도)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위조인지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방어전에 총력을 쏟고 있는 여당이지만 여론 악화는 부담이다. 당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발언에 "악의가 없으면 도청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도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예고하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당 차원에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으로 한미동맹을 흔들고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며 역공에 나섰지만, "논란의 원인을 뭉뚱그리고 반격을 하려니 각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국민의힘 관계자)"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지지율 상승을 기대했던 여당 입장에서는 이번 논란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한일정상회담 이후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이 여론에 악영향을 미친 상황에서 도‧감청 의혹이 또다른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다. 한 초선의원은 "지지율 반등 모멘텀으로 대통령 국빈방문 하나만 바라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악재가 또 겹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결국 이번 도청사건으로 한미정상회담 결과는 X2(2배) 부스터를 달았다"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배알도 없었다고 두배로 욕먹을 것이요, 결과가 좋으면 이번 사건을 동맹국의 입장을 고려해 잘 무마해서 그렇다고 할테니"라고 비꼬았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입수한 해당 문건의 한국 관련 내용 정부의 성급한 결론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공개적으로 나왔다. 외교통일위위원장을 역임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회의에서 "대통령실 발표에 따르면 한미 국방 장관 통화에서 문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의견 일치를 봤는데, 그럼 일부는 진짜란 것인가. 발표를 보면서 안타깝다고 느꼈다"며 "대통령실에선 불법 도청이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확정적으로 얘기하는데, 미국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