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래 제공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평가 받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정작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미래를 짐작할 수 없었고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직업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이상한 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이 총리나 의사,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고 할 때 자신은 '없다'고 써냈다.
지난달 28일 세상을 등진 일본의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 이렇게 꿈 없는 소년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음악을 '시간 예술'이라고 말한다며,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창작 활동을 의미한다면 자신은 애초부터 음악을 지어내는 재주가 없었고 그런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은 룰을 배우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자유로운 사상가였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공립 대신 특이한 사립 유치원에 다니며 처음 만난 피아노와 토끼 돌봐주기 체험 후 그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보라는 선생님의 작곡 숙제는 네다섯살의 꼬마에게는 여러 이유에서 강렬한 경험이었다고 사카모토는 회고했다.
"근질거리는 듯한 기쁨, 다른 누구의 것과도 다른 나만의 것을 얻었다는 감각. 그런 걸 느꼈던 것 같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는 사카모토가 2007~2009년 잡지 '엔진'의 스즈키 마사후미와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해 묶은 책이다.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성장한 그가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되돌아보며 음악과의 인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2010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도쿠야마 선생의 권유로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0대 시절 드뷔시와 비틀스의 영향을 받고 학교 친구들과 서구권을 넘어 인도·오키나와·아프리카 등의 민족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다. 소노 하루오미·다카하시 유키히로와 결성한 3인조 밴드 YMO(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는 그에게 인생의 전환을 가져다 줬다.
이같은 경험은 그에게 클래식을 넘어 전자음악과 일렉트로 힙합, 록, 오페라까지 경계를 넘어서는 뉴에이지 음악의 선구자이자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게 되는 디딤돌이 됐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작 '전장의 크리스마스' 영화 음악을 맡게되면서 본격적인 영화 음악에 뛰어들었다.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마지막 황제'(1986)로 아시아인 최초 미국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다.
그는 키타노 다케시의 첫 데뷔작이기도 했던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연을 맡았고, '마지막 황제'에서는 만주국 황제 푸이를 압박하는 제국주의자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으로 출연해 당초 할복자살로 설정된 대본을 거부하고 '일본인은 명예 할복자살'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며 권총자살을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켰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마지막 황제'를 연출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으로부터 '당장 영화 음악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맏고 불과 2주만에 '마지막 황제' OST를 만들어냈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압박하는 제국주의자 아마카스 마사히코 역을 맡았고, 감독의 갑작스런 요구로 영화음악 OST를 제작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 스틸컷사카모토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이자 영화음악가로 한평생을 보냈지만 사실 환경, 평화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행동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후쿠시마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며 탈원전 운동에 참여했고, 삼림 보전단체 모어트리즈(Moretrees)와 지진피해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를 창립해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나로서는 되도록 범위를 넓히지 않고, 오히려 최대한 좁혀서 음악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텐데 어쩌다 보니 다양한 일에 관여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 처지가 됐다"며 "뭐랄까, 모두 다 내친 김에 했다고나 할까"라고 유년시절부터 자신을 조금씩 참여하고 변화시킨 다양한 '체험'이 그같은 시작임을 강조했다.
사카모토가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집필된 이 자서전에는 투병기와 음악 작업기는 없지만 음악을 바라보는 그만의 매력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인간 세계나 현재의 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보다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조작하거나 조립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가만가만 늘어놓고 찬찬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