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일대에 걸린 진보당 현수막. 진보당 제공구청장을 규탄하는 정당 현수막을 '불법 현수막'이라며 무단으로 철거한 송파구청이, 이번에는 정당에 약 2천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 폭탄'을 부과해 스스로 논란을 키워가고 있다.
3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송파구청은 서강석 구청장(국민의힘)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내건 진보당에 총 1863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진보당 현수막 무단 철거에 이어…과태료 1863만 원 부과
진보당은 지난달 초부터 총 4차례에 걸쳐 구청장을 규탄하는 정당 현수막 27장을 송파구청 앞 사거리를 비롯해 송파구 일대에 내걸었다. 해당 현수막들은 모두 곧바로 구청에 의해 철거됐다.
지난달 4일 진보당이 처음 게시한 10장의 현수막은 성비위 의혹이 있는 인사를 구청 산하기관 이사장으로 임명한 서 구청장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송파구청은 해당 현수막들이 '불법 현수막'이라며 게시 하루 만인 지난 2월 5일 전부 철거했다.
(관련 기사 : [단독]'구청장 규탄 현수막' 무단 철거한 송파구청…줄 잇는 논란)연합뉴스현수막이 무단 철거된 이후에도 진보당은 지난달 9일과 16일, 24일까지 3차례에 걸쳐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을 추가로 내걸었다. 그때마다 송파구청은 게시 당일 혹은 다음날 해당 현수막들을 곧바로 철거했다.
더 나아가 송파구청은 진보당이 게시한 현수막 27장에 대해 현수막 한 장당 과태료 69만 원씩, 총 1863만 원을 부과했다.
통상적인 정당활동인데…구청 "불법 현수막"
송파구청은 진보당에 보낸 '과태료 처분 사전통지서'에서 '옥외광고물법 위반'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안내했다. 불법 현수막을 설치한 이에게 구청장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 규정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해당 현수막들은 모두 불법 현수막이 아닌, 내용과 형식이 모두 적법한 현수막이다. 정당법과 옥외광고법은 정당 현수막에 '통상적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내용을 담도록 허용하고 있다. 구청장을 규탄하는 내용도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정당 활동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일대에 걸린 진보당 현수막. 정당법과 옥외광고법 상 내용과 형식이 적법하다. 진보당 제공만약 현수막 '내용'의 적법성에 의견이 갈릴 경우, 최종 판단은 구청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린다. 행정안전부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는 지자체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에 현수막의 '통상적 정당 활동 내용' 여부에 대해 질의하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판단해 현수막의 불법 여부를 결정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도 "정당현수막의 내용에 대한 판단은 가이드라인상 (지자체가 아닌) 선관위를 거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파구 선거관리위원회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여러 차례 "(해당 현수막의 내용은)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선관위는 진보당의 현수막에 대해 '정당법은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에 준하는 표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한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정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는 서면 답변도 내놓았다.
현수막을 게시한 '형식'에 있어서도 현행법은 정당의 명칭·연락처, 설치업체 연락처와 현수막 게시 기간만 표기하면 현수막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진보당의 현수막 또한 해당 형식을 모두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구청은 '내부 논의'를 근거로 해당 현수막을 '불법 현수막'이라고 규정 짓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선관위나 행안부 질의 등을 거치지 않고) 구청 내부 논의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당 현수막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 '불법 현수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 걸려있던 '송파구청장 규탄' 진보당 현수막이 사라진 모습.
진보당 박지선 강동구송파구위원장은 "과태료 처분 통지서를 받고 구청에 '어떠한 부분에서 법률을 위반한 것이냐' 물었다"며 "구청 관계자는 '구청 내부 논의를 통해 불법 현수막으로 판단했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밝혔다.
경찰서로 간 '현수막 싸움'…진보당 "강력 대응할 것"
현수막을 둘러싼 진보당과 송파구청의 갈등은 고소·고발전으로까지 이어진 상태다. 지난달 6일 진보당은 현수막을 무단 철거하고 돌려주지 않은 송파구청장과 관련 부서 국장 등을 직권남용과 절도,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했고, 송파구청은 다음날 곧바로 진보당을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 때문에 진보당은 과태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4일 진보당은 송파구청에 과태료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의견제출서를 낸 뒤, 다음날인 25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현수막 4개를 추가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구청은 곧바로 해당 현수막들을 철거했다.
박 위원장은 "정당은 당연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며 "정당 현수막을 구청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불법 현수막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과태료 폭탄, 그리고 고발을 한 것은 정당 활동과 헌법을 침해하는 행위이기에 강력하게 대응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송파구청은 "(진보당의) 의견제출서를 접수했고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정당 현수막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자, 서울시는 지난 9일 옥외광고물법 개정을 건의하고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