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연합뉴스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인한 금융불안을 해결함과 동시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해야 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금리 소폭 인상으로 '절충안'을 찾았지만 금융불안 상황이 길어질 경우 대응이 더 까다로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 연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은행권의 위기로 일부 위원이 금리 동결을 고려했지만 물가 압력때문에 베이비스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그동안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금융 불안을 야기한 측면이 있어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날 금리 인상 결정은 유동성 불안감을 더 키우는 측면이 있다.
파월 의장은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의 파산을 언급하며 "은행 시스템은 탄탄한 자본과 유동성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탄력적"이라고 강조했다. 물가와 관련해서는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너무 높고 노동시장은 여전히 매우 타이트하다"며 "연내 금리 인하는 생각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준이 물가 상승세와 SVB발 금융불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유동성을 풀어 금융불안을 막고, 긴축 기조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고물가도 막겠다는 의지다. 물가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금리인상을 단행해 왔던 미국이 금융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하락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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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과 은행권 위기 사이에서 연준이 얼마나 오래 줄타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의 대출 비용을 높여 대출이 감소하게 된다"면서 은행권 위기와 물가 문제를 동시에 잡기는 매우 까다로운 일임을 우려했다.
연준이 최근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악재다. 실리콘밸리은행 붕괴 사태로 은행권의 위기가 커졌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연준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인플레이션 대응도 마찬가지다. 미 일각에서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적기 대응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하반기 급격한 금리인상이 불가피했고, 그 때문에 은행 파산 위기가 도래했다는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파월 의장은 연내 금리인하는 없다고 했지만,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선물시장은 오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인하할 확률을 70% 이상으로 봤다.
이런 가운데 연준이 물가도, 금융기관 건전성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 위기는 은행 신용을 위축시키고 경제 둔화를 유발하는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하락)을 축적해 경기 침체를 앞당길 수 있다.
연준은 올해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0.4%로 직전보다 0.1%포인트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