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재정으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대위 지급하도록 법률까지 제정했다.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의 하수인이라도 되는거냐"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하면 애국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하면 굴욕이라는 해괴망측한 민주당 주장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관합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일본에 대해 더 이상 (배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때 공동위원장이 이해찬이었고, 위원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같이 참여해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결과에 따라 국가 재정으로 그걸 보상하자 차원에서 2007년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요약하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보상금을 대위 지급(변제)한 적이 있는데 윤석열 정부만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과 당시 문재인·이해찬 등 민주당 인사들이 참여한 위원회에서도 일본 측에 배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고 윤 정부의 해법도 이와 맥이 같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하지만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노무현 시절 위원회 "65년 한일협정, 식민지배 불법성 빠져…개인 청구 가능"
연합뉴스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우리 정부에 '한일수교회담 문서'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한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연거푸 '65년 한일협정으로 보상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 내리자 '도대체 당시 어떻게 협정을 했던거냐'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한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항소를 포기하고 문서를 공개한다. 이후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을 설립해 65년 한일협정의 진실규명 및 피해자 지원 논의를 시작했다. 이때 전문가 등 의견수렴을 위해 이해찬 당시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민·관공동위원회'도 함께 구성했다.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부위원으로 참여했다.
민·관공동위원회는 총 4차례 회의 끝에 65년 한일협정의 기본 성격을 '해방 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우리가 협정을 통해 받은 돈 역시 이를 전제로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몫으로 산정된 돈은 '미지급 임금' 등 민사적 차원의 성격이었다고 봤다.
당시 작성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 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에 따르면 위원회는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군위안부·생체실험·강제동원 중 범죄행위 등)는 일본 정부가 일제하 반인도적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해방 전 일본 헌법상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같은 법리적 해석을 통해 위원회는 '일제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남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65년 협정 자체가 일본의 불법행위에 대한 판단을 배제한 채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권한은 남아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정부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일본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고 봤다.
연합뉴스위원회는 "한국정부는 (한일협정 당시) 강제동원 자체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대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고통받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정치적 차원에서의 피해보상을 요구했으며 이러한 요구가 양국간 무상자금 산정에 반영됐다고 봐야한다"며 "무상자금에 강제동원 피해보상금이 반영된 것이 정치적 요구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피해자 개인들이 '강제동원은 일제의 불법적인 한반도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적·물질적 총체적 피해'라는 법적 논거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개인이 일본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 보상청구 소송에 지원이 필요한데, 정부가 직접 피해소송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고, 민간단체 등을 통해 피해자를 간접 지원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피해 입증자료를 일본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결론 내렸다.
김기현 "노무현 때 더이상 청구할 수 없다 결론"…팩트 틀려
당시 위원회 결론을 요약하면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을 일본 정부에 요구할 순 없지만,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65년 한일협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가장 권위 있는 해석이 됐고, 이후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이어지게 됐다.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을 이끌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당시 민간 학자들과 정부 인사들이 모여서 한일협정 관련 문서들을 전부 확인하고 해석한 것"이라며 "위원회 해석을 바탕으로 이후 법원에서 일관되게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외무성이 낸 문서가 있는데 거기에서도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65년에 채권으로 확인되기 어려웠다고 인정을 한다. 결국 당시 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다"며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의 핵심도 '불법 행위에 대한 양자 간의 합의가 없는데 어떻게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이 (65년 협정에) 들어가서 해결됐다고 볼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종합하면 김기현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관합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일본에 대해 더이상 청구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한 발언은 사실과 다른 셈이다.
노무현 때 세금으로 대위변제?…법적 배·보상 아닌 '위로금'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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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무현 정부는 위원회 논의 결과에 따라 특별법을 제정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한다. 박정희 정부가 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돈 대부분을 경제 개발에 사용했고, 피해자에겐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에 강제동원 피해보상금 성격이 포함돼 있지만, 피해자들의 권리를 소멸시키고 받은 것이 아니므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상할 책임은 없다"면서도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실제 1975년 정부 보상 시 강제동원 사망자 8552명에게만 1인당 30만원씩 보상해 준 것이 전부였다. 위원회는 "한일청구권자금에 의한 75년 정부 보상이 불충분했다는 도의적 책임 및 국민통합 차원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인적피해와 미불임금 피해 등에 대해 추가적인 구제조치를 강구한다"며 1인당 약 2천만원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정부의 대책 마련으로 이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며 "일반 국민들이나 일본 측에서 오해하지 않도록 이번 대책은 한일협정에서 다뤄진 사항에 한정된다는 것을 명시한다"고 못 박았다. 즉, 법적 배·보상이 아닌 75년 정부의 불충분한 보상에 대한 '위로금'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따라서 김 대표의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재정으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대위 지급(변제)하도록 법률까지 제정했다"는 발언 또한 사실이 아닌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은 1965년 한일협정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자찬하고 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내려진 해석에 비춰보면 윤 정부 해법은 오히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수준으로 후퇴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측이 강제동원의 불법성 및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당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다"며 "최근 정부가 65년 협정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조화롭게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두 개가 모순되기 때문에 조화시켜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