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이인규 변호사가 발간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회고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모두 저격하는 내용이 담겨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에 이 변호사의 회고록이 판매되고 있다. 황진환 기자전직 대검중수부장 이인규 씨가 쓴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제목이었다. 책 제목으로 적시한 '대한민국 검사'는 참으로 드높은 기상이다. 법조기자 시절 만났던 그의 캐릭터와 부합하는 제목 같기도 하다. 아마 전현직 검사 가운데 책을 내며 이런 제목을 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검사들은 검사선언문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 검사선언문엔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런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선다"고 써있다. 선언문은 '대한민국 검사의 직'이라 했지 '대한민국 검사'라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 검사와 대한민국 검사의 직은 천양지차이다. 이 씨는 왜 제목을 '나는 대한민국 검사'라고 했을까. 명예욕 말고는 달리 짐작할 방법이 없다. 백 번 양보해도 선언문은 선언문에 불과한 것이고 그 선언문 조차도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차고 넘칠 때 만들어진 구시대적 판본 이라는 것이다.
박종민 기자
책을 읽고 '원한'이 책 속에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로 치면 미국 전쟁영화에서 해외 파병 뒤 고향에 돌아왔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의 심정이라고 할까. 똑같지 않지만 유사하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말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지 14년이나 흘렀다. 그런데도 이 씨의 '억울함과 원한'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뼛속부터 특수검사임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 "나는 나쁜 놈, 그 중에서도 힘센 나쁜 놈을 수사해서 처단하는 일을 하고 싶어 검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적었다. 정의 실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구조적 비리와 거악을 척결하는 원대한 꿈과 희망을 검사의 기본 조건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정의의 칼(?)을 휘둘렀던 그를 몰라주는 여론엔 아주 냉소적이었다. 노무현 수사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여론은 진영논리이며 거짓과 혼돈의 시대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단정했다. 사실 여부보다 진영 논리가 중요하며 거짓이라도 대안의 사실로 현실에 등록하면 그것이 곧 새로운 사실이 되는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5월 1일 새벽 강도높은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의 '원한의 정체'는 무엇일까. 요약하면 "나는 대한민국 검사로서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지 않았는데 그 책임을 온통 뒤집어 써 억울하다"고 읽혔다. 검사 이인규는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진실에 의거해 노 전 대통령을 조사했을 뿐인데, 그 진실을 왜곡하고 '논두렁 시계' 같은 고약한 프레임으로 둔갑시켜 정의로운 수사(?)를 정치화 해버렸다는 항변이다. 논두렁 시계도 본인과 검찰이 아닌, 당시 MB 청와대와 국정원이 언론플레이 한 건데 그로인한 공격을 본인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 했다.
그의 항변을 십분 이해한다 치자. 하지만 '진실'이라는 단어에서 동의되지 않는 부분들이 꽤 많았다. 수사기록을 보고 책을 쓴 것이라면 상당 부분 '팩트(사실)'를 적었다고 동의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진실'이라고 규정해버리는 그의 서술 태도에서 '목적지향적'인 그의 인간성이 뚜렷하게 비쳐졌다. 팩트와 진실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단어이다. 생전 노무현 수사로 여러 가지 팩트를 모았겠지만 노무현은 더 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사자를 상대로 십수년이 지나서도 진실게임을 쫓는 그의 목표의식에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황진환 기자이 씨가 책에서 공개한대로 많은 '팩트'를 찾아냈음을 이해한다. 다만 노무현의 죽음과 검찰 수사를 검사 시각의 좁은 현미경 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 수사에서 그 당시 중요했을 피의 사실은 이제 껍데기가 되었다. 남은 본질은 정치 검찰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와 검찰이 부화뇌동하고 언론이 피의사실을 확대재생산하는 한국검찰의 본질적 폐해는 노무현 수사에서 핵심적 성찰과제이다. 피의사실 내용이 껍데기라면 본질은 정치검찰 행태라는 얘기다. 이 씨는 여전히 피의사실 공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홍만표, 우병우 등 그의 부하들은 정의로움, 부드러운 성품, 깔끔한 일처리 능력을 가진 완벽한 검사들이라고 추앙한다. 심지어 그는 수사 보도를 자초한 것은 노무현 탓으로 반사시켰다.
당시 검찰이 유포한 피의사실과 수사기밀은 언론을 춤추게 만들었다. 검찰이 흘리고 언론은 마구 증폭했다. 백 번 양보해 이 씨 주장대로라면 검찰이 아닌 국정원이나 제 3기관이 수사기밀을 마구 유포시켰다. 그래도 본질은 여론을 흔들고 수사 동력을 이끌어 가는 정치 검찰의 전형적 수사패턴이다. 한국검찰의 주특기이다. 미국 FBI도 일본 동경지검도 이렇게 까지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수사 의도인데, 노무현 수사는 당시 정권 의도로 진행된 수사였다. 광우병 논란으로 지지세를 상실한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 배후에 노무현 세력이 있다고 보았고 이를 간파한 국세청과 청와대가 검찰에 하명수사를 내렸다. 이것이 이 사건의 거시적 구조이다. 검찰이 아무리 정의로운 수사라 주장한들 정치와 야합한 정치수사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인 것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박종민 기자거악 척결을 주장하는 검사들은 특히 정의와 진실을 외친다. 대한민국 검사라는 표창장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정의와 진실은 검사들 논리일 때가 많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숨 쉴 공간'을 내줄 수 있는 검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검사'라는 태극기 같은 생각만 하지 말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를 이인규 변호사에게 진정으로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