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좋아 하늘만 올려다 본 소녀, 국가정원을 품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편집자 주

10년 만에 열리는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를 앞두고 순천 전역은 박람회 준비가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 7개월간의 대장정에 앞서 전국에서 몰려들 손님 맞이에 분주한 이들이 있다. 바로 관람객에게 푸르른 녹음을 선사해줄 나무전문가이다. <2023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사람들> 세 번째 순서로 김숙영(47) 조경팀장의 나무와 함께한 인생 이야기를 전한다.

[2023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사람들③]
2023정원박람회 김숙영 조경팀장
박람회장 조성 작업에 하루 평균 3만보는 기본
후미진 곳에 나무·꽃 식재…새 공간으로 탈바꿈
"정원 때문에 살고 싶은 순천 만드는 게 목표"


2023정원박람회 김숙영 조경팀장이 국가정원 내 버드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사라 기자 2023정원박람회 김숙영 조경팀장이 국가정원 내 버드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사라 기자 
캐나다 벤쿠버 빅토리아 섬에 위치한 세계적인 정원 부차든 가든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 정원사는 자신의 직장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로 불렀다. 모든 정원사들의 마음은 그런 걸까. 직장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다소 생경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김숙영 팀장이 나타났다. 박람회 준비로 집에서 잠만 겨우 자고, 하루종일 공사 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데도 그는 인터뷰 내내 '즐겁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김 팀장의 하루는 순천만국가정원 현장에서 시작된다. 축구장 90여 개 크기의 국가정원(92ha)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돌면서 작업 상황을 점검한다. 사무실에서 회의를 한 후 다시 현장을 다녀오면 만보기는 3만보를 가리키기 일쑤다.

몇 달간 매일 3만보 이상 걷는 강행군을 버틸 수 있었던 건 5년 동안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받을 만큼 단련된 체력 덕분이다. 자전거,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김 팀장은 덕분에 야외 현장도 거뜬히 소화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소속된 조경팀은 모두 4명이다. 국가정원 리뉴얼, 잔디·수목 관리, 작업단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김 팀장은 모든 작업을 총괄하며 기업 등이 참여한 정원 관리까지 맡고 있다.

이번 박람회를 위해 국가정원에 식재된 나무는 모두 99만 주. 철쭉나무 27만 주 등을 새로 심었다. 김 팀장은 나무를 식재할 자리를 결정했다. 공사가 끝난 자리는 관목이나 나무, 꽃을 조성하고 잔디로 마감을 했다.

김 팀장은 "관람객들은 아주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에 감동을 한다"며 "그런 부분이 안되면 성의 없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깔끔하게 처리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숙영 팀장이 국가정원에서 나무 식재 작업을 하고 있다. 김숙영 팀장 제공 김숙영 팀장이 국가정원에서 나무 식재 작업을 하고 있다. 김숙영 팀장 제공 조경에는 리허설이 없다. 그래서 식재하기 전 화형과 색깔 배치 등에 신중해야 한다. 특히 나무와 꽃의 현재 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랄 특성을 계산해야 한다. 이를테면 관목이나 철쭉 등은 키가 30~50cm까지 자라고 홍가시 나무는 더 잘 자란다. 또 바닥에만 깔리는 꽃이 있는가 하면 중간치로 크는 꽃이 있고 코스모스처럼 길쭉하게 자라는 식물도 있기 때문에 이런 성질을 고려해야 어느 꽃도 죽지 않고 조화롭게 자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공간별로 시설, 화훼 팀과 항상 머리를 맞대고 조경 기획을 한다"며 "대비되는 색이 있고 보색, 유사색이 있는데 잘하면 고급스러운 배치가 되는 반면 잘못 대비를 하면 촌스러운 정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 공간에 대해서 팀 별로 고민하고 또 조율하면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박람회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정원 내 후미진 공간들까지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꿨다는 거다. 이를테면 메타세쿼이아 길 부근 뒤쪽 공간에 가든스테이를 위한 매점을 만들었고, 그 옆에는 마로니에 칠엽수를 심어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미국 풍나무길이 탄생했으며, 갯지렁이가 지나는 자리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공간도 다시 손을 봤다.

김 씨는 2013정원박람회 때도 조경팀의 일원이었다. 그러다 10년 만에 다시 박람회를 맡아 감회가 새롭고, 마음 가지 않는 데가 없다.

대학에서 산림자원학부를 전공했다는 그는 우연히 들어간 학과에서 수목학을 배우며 나무에 푹 빠지게 됐다고 했다. 나무가 얼마나 좋았으면, 길을 걸어갈 때에는 하늘만 쳐다보고 다닐 정도였다.

2000년도에는 산림청 국가직 공무원이 됐다. 그러던 중 여수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 2004년 순천시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순천시에서 녹지직을 맡고 있다. 공원과, 공원녹지과, 삼림과, 허가민원과 등에서 녹지와 관련된 일을 했다는 그는 "그 중에서 제일 재밌는 건 나무를 심는 거"라고 자신했다.

나무와 함께 걸어온 세월만 수십 년. 겉보기에 다 똑같아 보이는 나무도 그는 기둥만 보고도 식별해낸다.  

"정말 정직한 건 제가 한 공간에 나무를 심고 꾸미면 사람들이 와서 '예쁜 공간이 만들어졌네. 정말 좋다'는 식의 피드백이 온다는 거예요. 시민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조적인 일이라서 더 재밌는 것 같다"고 웃음지었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전경. 순천시 제공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전경. 순천시 제공 이번 박람회장에서 가장 아끼는 나무가 뭐냐고 묻자 곧바로 "시민들이 기증해준 나무"라고 답했다.  최근 한 80대 어르신은 "죽기 전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며 명주나무를 포함한 20주를 기증했다고 한다. 이 어르신은 지난 2013년 박람회 때도 반송나무 두주를 기증하기도 했었는데 현재 국가정원 남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다른 시민은 돈나무를 기증해서 바위정원 옆에 식재됐다.

김 팀장은 "아끼던 나무를 기증해 준 정성에 감동을 한다"며 "이런 나무들이 죽으면 슬퍼할 기증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영양제와 뿌리제도 주는 등 더욱 신경을 쓴다"고 전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그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나무는 덩치가 큰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죽어버리면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을정원에 있는 목련이나 푸조, 고목나무 등 대경목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작은 나무들은 금새 옮기기라도 하지만 큰 나무들은 한 수 옮기는 데도 2~3일이 걸리고 나무들 역시 '이사' 후 며칠 몸살을 앓기 때문에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하다가 지칠 때면 '개울길 광장'에서 잠시 힐링의 시간을 보낸다. 버드나무가 쭉 심어져 있는 마사토 길을 걸으면 개울에서 사람 팔뚝만 한 물고기가 첨벙첨벙 뛴다고 한다. 자연의 소리와 광경을 보고 있자면 힘들었던 것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진짜 팔뚝만 한 물고기가 있어요. 믿기지 않으시면 꼭 와서 보세요"라며 강력 추천한다.

그는 순천 곳곳에 정원 같은 공원들이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없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순천은 '정원에서 삽니다' 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먼저 정원에 사는 순천 시민들의 만족도가 더 높아지고, 누구나 순천에 오면 치유되는 것을 넘어 '나 살고 싶어'하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지치고 힘들었던 사람들이 순천에 와서 노년을 보내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그런 곳, 대한민국에는 없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녹지직으로서의 바람이다"고 전했다.  

0

0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