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터로 변한 제주 현대극장 터. 고상현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제주 첫 호텔 동양여관…명성 사라진 자리 남은 건 삶 ②개발 광풍에도…제주 일식주택 100년간 서 있는 이유는 ③포구 확장하고 도로 건설…사라지는 제주 어촌 '소통의 빛' ④택지 개발로 사라질 위기 제주 4·3성…주민이 지켜냈다 ⑤'아픈 역사 축적' 제주 알뜨르비행장,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⑥무성영화 시대 제주 마지막 극장 철거…사라진 기억들 (계속) |
"중학생 때 자주 가서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허물어져 없어." 지난 21일 제주시 삼도2동에서 만난 김재호(70)씨는 공터를 가리키며 이같이 말했다. 6층짜리 호텔과 10층 높이의 오피스텔 사이로 휑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낡고 허름한 건물이 서있던 자리다. 바로 제주 최초의 현대식 문화공간이자 4·3 역사가 담긴 '현대극장'이다.
무성영화 상영부터 권투시합까지…제주 첫 문화공간
지금은 철거되고 사라진 옛 현대극장은 1940년대 초 가설극장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이르던 1943년 일본인 하기모토 구라가 연극‧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위해 '조일구락부'라는 이름을 붙여 개관했다. '구락부'는 클럽이라는 의미의 일본식 영어 표현이다.
개장 초기에는 관객석 없이 가마니를 깔고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다. 유랑극단이나 악극단, 연극단이 주로 무대를 꾸몄다. 변사의 설명이 곁들여진 무성영화도 상영됐다고 전해진다.
현대극장의 옛 이름인 제주극장 모습. 1965년 개봉한 '홍콩의 왼손잡이' '어머니의 청춘' 포스터가 눈에 띈다. 당시 영화 관람료는 20원이었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공
당시 발행된 '제주신보'에 따르면 해방 후인 1947년 10월 항일운동을 다룬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가 국립경찰청 창립 2주년을 기념해 무료로 상영됐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1947년 11월에는 서울가극단의 공연이 있었다. 또 권투시합이나 학생웅변대회,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1948년 10월 좌석 375석, 입석 100석 등 모두 475석 규모로 시설을 정비하고 '제주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가설 건물에서 벗어나 극장다운 모습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12월 이후부터는 영화관으로만 활용되다 1970년대에 이르러 '현대극장' 간판을 달았다.
2층 규모에 직사각형 형태였던 옛 현대극장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1층에는 매표소와 사무실, 관람석과 스크린이 달린 무대가 있었다. 2층에는 영사실과 객석이 들어서 있었다.
제주시 삼도2동에서 나고 자란 추충실(77)씨는 현대극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어릴 적에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가 상영되면 극장 화장실 문 통해 몰래 들어갔어. 친구들이랑 '도둑 영화'를 봤거든. 걸리면 혼나기도 하고 도망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추억이 많지."
1970년대 현대극장 모습. 제주시청 제공해방 이후 좌우 이념대립 현장…4·3의 기억도
해방 직후 옛 현대극장에서는 정치적 성격의 행사들도 많이 열렸다. 당시 주변으로 제주도청과 경찰서 등 주요 관청이 몰려 있던 데다, 많은 인파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 이곳에서 행사가 개최됐다.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 좌익과 우익 단체들의 출범 장소로 사용됐다.
1947년 2월 제주읍 조선민주청년동맹대회, 1947년 10월 대동청년단 제주도지부단 결성식과 이북인대회 결성식, 1947년 12월 민족청년단학생 결성식과 총회 등의 행사들이 열렸다.
특히 4·3 역사가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옛 현대극장이 조일구락부로 불리던 1947년 2월 23일 이곳에서는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제주도위원회 결성대회가 열렸다. 민전은 4·3의 도화선이 된 경찰의 발포사건이 발생한 3·1절 기념행사를 준비한 단체다.
아울러 4·3 광풍 당시 도민들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서북청년회 결성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1947년 11월 2일 조일구락부에서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가 창립된 것이다.
제주 현대극장 터. 주차된 차와 쓰레기들이 눈에 띈다. 고상현 기자도민 3만여 명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4·3의 초기 상황과 해방 직후 이념대립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곳이지만, 현재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판은 어디에도 없다. 허물어진 건물 위로는 차량들이 주차돼 있거나, 주변 공사장에서 나온 건설 폐기물과 쓰레기들로 방치된 상태다.
'제주4·3유적 Ⅰ·Ⅱ'을 펴낸 김창후 전 4·3연구소장은 "4·3 당시 옛 현대극장 만큼 큰 공간이 제주에 없었다. 대규모 실내 행사를 대부분 이곳에서 했다. 민전 결성이나 서북청년단 결성 때도 이곳에서 했다. 4‧3 유적지로서 가치가 있지만, 허무하게도 건물을 헐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무성영화 시대 제주 마지막 극장, 결국 허물어져
수십 년간 도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현대극장은 1980년대 경영난을 겪으면서 운영이 어려워졌다. 결국 1987년 1월 제주의 첫 공연장이자 무성영화 시대 마지막 극장은 문을 닫았다.
젊었을 때 제주시 함덕리 집에서 현대극장까지 걸어서 영화를 보러 다녔다는 이민자(80) 할머니는 이같이 말했다. "신성일 나온 영화를 주로 봤어. 인상 깊게 본 영화는 '꼬마신랑'이야. 70년대부터는 집에 TV가 생기니깐 다들 극장에 잘 안 갔지. 현대극장도 그래서 문을 닫지 않았을까."
철거 직전 현대극장 모습. 송동효 작가 제공스크린을 향하던 빛이 사라진 옛 현대극장은 이후 상점과 창고 등으로 활용되다 지난 2015년 11월 안전진단에서 최하위 등급인 E등급으로 지정돼 보강 공사 또는 철거 대상에 올랐다.
제주 근대 역사가 담긴 옛 현대극장 건물을 지키려는 노력도 있었다. 제주시에서는 건물 매입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등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무산됐다. 지난 2018년 초 '아라리오 뮤지엄'이 건물 매입을 추진했지만, 금액 조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건물주는 보강 공사가 아닌 철거를 선택했다. 2018년 마지막 날 굴삭기가 70여 년간 그 자리를 지켰던 극장 건물을 허물었다. 그 순간을 기록한 송종효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유서 깊은 극장이 철거되는 모습을 촬영하게 됐다. 굴삭기 앞에 극장 필름이 놓여있는 사진이다. (옛 현대극장이 있는) 원도심뿐만 아니라 도 전체가 제주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그냥 일반적인 도시처럼 변하고 있다. 안타까움에 변화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철거 당시 모습. 극장에서 나온 필름이 버려져 있다. 송동효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