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서도 원청 사업주 무죄…김용균 유족 "이래서 산업재해 막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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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 "원청 대표이사로서 구체적 위험성 인식했다 보기 어렵다"
한국서부발전 법인도 벌금형→2심서 무죄…하청업체 대표·법인도 감형

사단법인 김용균재단과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가 9일 오후 항소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정남 기자사단법인 김용균재단과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가 9일 오후 항소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정남 기자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도 원청 사장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대전지법 형사항소2부(최형철 부장판사)는 9일 오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벌금 1천만 원이 선고됐던 한국서부발전 주식회사 법인에 대해서도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 등을 받았던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도 무죄를 받았다.
 

김용균 노동자가 소속됐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전 사장과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은 1심보다 형량이 낮아졌고 한국발전기술 주식회사 법인에 대한 벌금액 또한 15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줄었다.
 
앞서 검찰은 "태안화력에서는 사건사고가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숱한 조짐이 있었고 그에 대한 무관심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며 "원청 대표이사가 현장을 잘 모른다고 주장해 무죄가 선고된다면 현장 출신이 아닌 경우 책임을 피해갈 수 있게 된다"며 김 전 사장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에 이어 김 전 사장이 구체적인 설비나 운전원들의 작업 방식과 관련된 위험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표이사로서 태안발전본부 내의 개별적인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위험 예방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주의 의무를 가진다고 보긴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또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숨진 김용균 노동자가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1심의 판단 역시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지난 2021년 월 태안화력 정문 앞에 세워진 고(故) 김용균 노동자 추모하는 조형물. 김용균재단 제공지난 2021년 월 태안화력 정문 앞에 세워진 고(故) 김용균 노동자 추모하는 조형물. 김용균재단 제공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한국발전기술 소속 컨베이어 운전원으로 채용돼 한국발전기술이 자체적으로 정한 업무와 구역, 시간에 따라 근무했고 숨진 당일에도 발전기술 파트장의 지시에 따라 순회 점검을 나갔다"며 "채용 및 근무에 관해 서부발전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항은 없고, 서부발전 측의 요청이나 지시·감독 행위가 있긴 했지만 이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또 용역 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이뤄진 것이지 피해자가 종속돼 근로를 제공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1심에서도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원인으로 꼽힌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이나 하청업체와의 위탁용역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김 전 사장이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잘 몰랐다"는 원청 사업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 측 변호인인 김덕현 변호사는 "1심보다 훨씬 후퇴된 판결이 선고됐다"며 "구멍 뚫린 설비뿐만이 아니라 우리 법원의 판결에도 노동자의 안전에 대해서는 정말 크고 많은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을 오늘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오늘 선고된 항소심 판결은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위험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며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중요한 권한이 있고 실질적인 능력과 책임이 있더라도 '모른다', '가보지 않았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고받지 않았다', '보고하지 말라'고 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그런 신호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12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고 김용균 씨의 시민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황진환 기자 지난 2018년 12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고 김용균 씨의 시민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황진환 기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당시 24살의 김용균 노동자는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는 "어떻게 거기까지 들어가서 협착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머리나 몸을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 "(작업자 개인이) 잘해보려다가 그런 것 아니냐"와 같은 취지의 진술이 원청 측으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촉발시키고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도 시행에 들어갔지만, 김용균씨의 재판은 두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피해자 측은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그리고 강화된 법이 적용됐을 때 우리 법이 이 사건을, 이런 중대재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심리할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가 되는 사건"이라며 이 재판이 갖는 의미를 강조해왔다.
 
고 김용균 4주기 추모위원회는 시민 9470명이 참여한 엄벌 촉구 탄원서를 법원에 내기도 했다.
 
재판이 끝나자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래서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습니까. 이런 판결로…"라고 법정을 향해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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