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공수처장. 연합뉴스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열 세 사람이 있다. 무학(無學)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 많고 열 세 사람인데 저희도 열 세 사람이다. 그 뒤에 세상을 바꾸지 않았나. 열 세명이면 충분하다. 무학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 출신보다 훨씬 양호하지 않느냐"
(2021년 4월 19일 김진욱 공수처장 출근길)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미숙한 모습들 보여드린 점 먼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중략) 애초에 공수처법에 정원이 너무 적게 법에 명시된 관계로 인력 부족 문제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상시적인 인력 부족 문제가 조만간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2022년 5월 16일 공수처 검찰·수사관 완전체 1주년 기자간담회)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은 출범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고개를 숙였다. 1주년 간담회와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으로서의 '미흡함'이 주요 원인이다. 여전히 공수처법상 제한된 인력과 여건 때문이었다고 화살을 돌렸다. 이번에도 책임 지는 사람은 없었다.
1년 전처럼 "국민 기대 비춰 볼 때 미흡했던 점 송구"
김 처장은 지난 1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출범 2주년 기자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공수처 출범에 대해 보여준 국민적 기대에 비추어 볼 때 미흡했던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면서 "오늘 출범 2주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시무식에서 종교 관련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간담회에서 김 처장은 공수처법의 문제점과 공수처가 열악한 상황을 토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지난해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듯이 검사 정원이 23명이고 수사부 검사가 12명에 불과해 사건 처리 속도가 굼뜨게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다만 지난 해보다 진전된 점이라면, 일반직 직원이 증원된 법안이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부분이다.
마지막 남은 1년에는 '성과'를 내야겠다고 강조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그럴만한 사건을 수사해서 그럴만한 성과를 내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2주년 간담회에서 밝힌 처장의 설명대로라면, 올해도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우려스럽다. 당장 공수처가 쥐고 있는 박은정 전 성남지청장의 성남FC 수사 무마 의혹 사건만 해도 그렇다. 공수처는 박 전 지청장의 성남FC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을 지난해 3월 입건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수사를 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은 검찰도 입건해 계속 수사 중이다. 같은 사건을 두 수사기관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박 전 지청장 사건은 현직 검사 사건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첩 해야해서 공수처로 오게 돼 있다. 기다리면 된다"고 답했다. 공수처법 25조 2항에 따르면 공수처 외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해야 한다. 박 전 지청장이 현직 검사이기 때문에 공수처가 수사를 하지 않아도 검찰이 수사를 해서 공수처에 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처장은 다시 한 번 공수처 수사 인력을 언급하며 "우리 형편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이해를 해 달라"고 했다. 직접 수사를 하는 수사기관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포기하고, 검찰의 수사만 기다렸다가 이첩 받아 기소만 하는 걸 택한 셈이다.
시스템 갖춰야 할 땐 수사, 수사 실패하자 집단 무기력…거꾸로 된 판단
2021년 국민 열망에 따라 출범한 공수처는 1년 내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만 하다가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그때야말로 수사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시스템이 수반되지 않아 제대로 된 수사를 못하면 '되치기'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우려가 많았음에도 공수처장의 결단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잇따라 착수했다. 당시는 공수처가 '선별 입건'을 할 수 있어 처장의 '판단 능력'이 중요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2021년 1월 21일 공수처 출범부터 2022년 1월 10일까지 구속영장과 체포영장을 각각 2번씩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출범 후 1주년 동안 시스템을 갖추고 2년차 가열찬 수사를 했어야 했지만 공수처는 '거꾸로'였다. 가장 공들였던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 압수수색 할 때마다 잡음만 냈고 영장은 번번이 기각됐다. 결국 손준성 전 대검수사정보정책관만 불구속 기소하면서 다른 피의자의 고발 사주 혐의만 벗겨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급격하게 힘이 빠진 공수처는 지난해에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제대로 된 수사는 할 수 없었고 인력 부침만 있었다. 출범 1년이 막 지난 시점부터 공수처 검사의 인력 이탈이 이어지며 지도부의 '리더십 논란'까지 나왔다.
김 처장은 이를 어느 직장이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계속 나가는 분들이 있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다"면서 "작년에 리더십 문제 지적이 맞고 송구하다 했는데,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직장에 입사해서 2년~3년 내 이직이 제일 높다. 어느 직장이나 당연하다"면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실제 일해보니 다를 수 있다. 여기에 맞추든가 나가든가 둘 중 하나로, 공수처가 자리잡는 과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공수처장의 말마따나 공수처도 공수처 직원들에게 직장임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공수처의 출범 역사를 보면 단순 '직장'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사명과 임무가 막중하고 크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제대로 수사하라는 사명을 띠고 탄생했다. 이를 위해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도 깨뜨렸다. 이 바탕에는 검찰이 독점적 기소권을 남용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만 했다는 성찰적 의미가 깔려 있다. 공수처에 국민들의 기대치는 높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공수처장의 2주년 간담회에는 지금껏 공수처가 한 일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 없이 우리가 고생했다는 덕담만이 남았다. 김 처장은 출범 2주년을 기념해 각 부서별로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주 좋은 동영상이 많이 나왔다. 수준이 높고 재밌다"면서 "그런 걸 보면서 구성원들이 자부심, 사명감, 동료 의식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국민들이 공수처의 출범 2주년에 이같은 말을 듣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