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흐름 속에서도 100년간 자리를 지킨 제주 일식주택. 지금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고상현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제주 첫 호텔 동양여관…명성 사라진 자리 남은 건 삶 ②개발 광풍에도…제주 일식주택 100년간 서 있는 이유는 (계속) |
"옛날에는 무근성 일대에 부자들이 많이 살았지. 백 년가량 된 오래된 집이 많아서(많았다). 비단 저고리 입고 다녔주게(다녔다). 이제는 어서져부렀지(없어졌다). 밀어서 건물 올리고…."
지난 26일 오후 제주시 삼도2동 무근성 마을회관에서 만난 고순택(95)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전후 무근성 모습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양모(85) 할머니도 "옛날에는 무근성이 번화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옛집을 다 뜯어버리니깐 과거 모습은 다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근대 도시로 변모한 제주 도심지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에는 주둔 중인 부대의 군인과 행정 관리, 상인 등 식민지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거주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41년 제주에 거주한 일본인은 1354명이다. 주택 수는 403호로 집계됐다. 주로 제주시 도심지를 중심으로 거주했다.
당시 '오래된 성곽'이란 뜻인 무근성 인근 관덕정 주변으로 도청, 우체국, 경찰서 등이 모여 있어서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 상업이 번창했던 칠성골(칠성로 일대)도 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은 원도심으로 불리는 무근성, 칠성로 일대는 과거 일본인이 지은 일식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1945년 이전 제주시 원도심 일식주택 분포도. 제주대 건축학과 김태일 교수 제공주택 내부 특징은 다다미(마루방에 까는 일본식 돗자리)와 쓰즈키마(칸막이를 열어젖히면 옆방과 연결되는 구조), 도코노마(방 벽 쪽으로 장식을 위해 움푹 파인 공간)다. 유리 창문을 설치한 구조, 돌‧벽돌‧콘크리트 블록으로 이뤄진 벽에 시멘트 기와를 올린 구조 등도 주요 특징이다.
이밖에 목골구조에 그물처럼 만든 철망(라스)을 치고 모르타르(시멘트에 모래를 섞고 물로 갠 것)로 마감하는 '오카베 구조', 마루에 달린 격자살 유리창과 문 등이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일식주택 모습이다. 아울러 제주 전통식 또는 서양식 건축 형태를 접목한 절충식 일식주택도 지어졌다.
특히 주변 재료로 집을 짓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건축 재료인 시멘트와 벽돌, 유리, 철이 공급됐다. 이에 더해 규격화된 서양식 건축법이 들어오면서 제주 도심지의 모습은 급속도로 변화했다. 제주 고유의 초가집과 기와집은 점차 사라지고 근대 도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오카베 구조의 일식주택 모습. 고상현 기자지역 개발로 대부분 철거…그 자리엔 오피스텔
현재 제주 원도심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생활상과 독특한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일식주택은 몇 채 남아있지 않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꽤 많은 일식주택이 있었지만, 지역 개발로 대부분 철거됐다. 그 자리에는 현재 오피스텔과 공동주택, 공공임대주택, 상가건물 등이 들어서 있다.
8년 전만 해도 허름한 형태로나마 자리를 지켰던 일식주택에는 10층짜리 오피스텔이 우뚝 서 있다. 일본식 근대형 목구조에 지붕 처마 아래 '눈썹지붕(아마하시)'이 특징인 주택이었다.
무근성에서 나고 자랐다는 고건식(77) 할아버지는 "마루랑 양 옆에 다다미방이 있던 옛날 집들이 많이 있었는데, 빌라 지으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집 주인들이 다 팔아서 원도심 밖으로 이사 갔다. 여기서 자란 사람은 현재 10명도 안 된다. 친구들도 다 떠났다. 나밖에 없다"고 했다.
과거 일식주택이 밀집해 있던 무근성. 현재는 오피스텔과 공동주택이 들어서 있다. 고상현 기자특히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주정공장 사택들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이곳은 근대적인 토지구획 정리를 통해 조성된 일식주택 단지로 제주동초등학교 후문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를 두는 제주 전통 가옥 배치와 함께 일본식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고씨 주택'은 2014년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철거 위기를 겪었다.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보존됐다. 현재는 복원돼 주민 소통공간과 책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2학년생 고준호(23)씨는 "요즘 환경 문제도 그렇고 오래된 건물을 재활용할 수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건물의 장점은 보편화된 요즘 건물들과는 다르다는 점에 있다. 원도심에 오래된 건물이 한두 개씩 남아 있으면 특별해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정공장 사택 단지가 있던 곳. 현재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고상현 기자"없앤다고 아픈 역사 사라지나…역사 교육의 장으로"
일식주택이 일제 잔재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래된 건물은 헐어서 불편하기 때문에 철거하고 쾌적한 새 건물을 짓는 방식을 택하는 게 우리나라 재개발의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00년 넘도록 꿋꿋하게 서있는 2층짜리 일식주택이 있다. 제주시 삼도동 관덕정 맞은편 현대식 건물 사이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순아커피'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곳은 해방 이후 수십 년간 한 부부가 1층에서 점방을 운영하고 2층에는 세 아들을 키워낸 곳이다.
현재까지도 일식주택의 특성인 다다미, 쓰즈키마, 도코노마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울러 나무골조도 일본 공장에서 반듯하게 잘라낸 제재목이 사용된 근대 건축 특성이 엿보인다.
다다미와 쓰즈키마, 도코노마가 남아 있는 순아커피 2층 모습. 고상현 기자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2016년 9월 태풍 차바로 외벽이 허물어지자, 노부부가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 권정우 소장이 만류하며 복원했다. 오래된 목조건물이어서 기울어진 2층 바닥을 바로잡았을 뿐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권정우 소장은 "유럽 여행을 가는 이유가 몇 백 년 된 풍경이 아름다워서 가는 게 아닌가. 공간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어야 도시에 대한 애착이 있고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다. 현재 우리의 문제점은 길을 확장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며 흔적을 다 없애버리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순아커피를 운영하는 정양선(58‧여)씨는 "오래된 집이지만 친근한 느낌이 있다. 손님들도 '할머니 집 같다'고 정감 간다면서 자주 오신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원룸이 있는 게 아니라서 집 주인이 직장인에게 방 하나 빌려줬었는데, 최근 한 손님이 여기서 살았었다면서 찾아오셨다"고 말했다.
"다만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픈 상처가 남은 집은 맞다. 집을 허문다고 그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집이 있다면 아픈 역사의 교훈을 후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순아커피 내부 모습. 고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