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6월 말보다 집값이 20% 더 떨어지면 대출자 100명 가운데 5명은 집을 포함한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22일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금융 잠재 리스크(위험)로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부문 부실 위험 확대, 부동산 가격 조정과 동반한 가계·기업 재무 건전성 악화, 비(非)은행 금융기관 복원력 약화 가능성 등을 꼽았다.
먼저 부동산 관련 재무 건전성 분석에서는 향후 주택 가격이 올해 6월 말보다 20% 떨어질 경우,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초과)
또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 상환이 어려운(자산대비부채비율·DTA 100% 초과) '고위험' 가구의 비중(전체 대출 가구 기준)도 3.3%에서 4.9%로 증가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100명 중 5명은 집을 팔아도 대출액 전부를 상환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이정욱 금융안정국장은 부동산 가격 경착륙 가능성 등에 대해 "실거래가 기준으로 코로나 사태 이후 부동산 가격이 37~38% 정도 올랐는데, 올해 11월까지 10.4% 떨어졌기 때문에 급락이라기보다는 조정 국면"이라며 "아직 이 정도 하락은 금융기관이나 가계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 이후 상승률(37~38%)을 고려할 때, 주택가격 15% 하락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도 금융기관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건전성에 큰 위험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고 설명했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보고서 기자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 가계·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 급등도 우려됐다.
기준금리가 지난 6월 말 수준보다 2.0%포인트 오를 경우, 취약 가계·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각 1.7%포인트(5.6→7.3%), 3.6%포인트(5.7→9.3%) 높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취약 차주는 다중채무자(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이면서 저소득·저신용자를 의미한다.
같은 조건에서 한계기업의 부실 위험(1년 후 부도 상태로 전환될 확률)도 3.52%에서 3.75%로 0.23%포인트 상승했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험도 지적됐다.
내년 경제 성장률이 -0.3%로 떨어지고, 주식·주택가격이 최고점 대비 각 50%, 20% 하락하는 극심한(severe) 충격을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일부 보험·증권사와 저축은행의 자본 비율이 규제 기준을 밑돌았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 불균형 위험이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있지만, 시장금리 상승이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과 맞물려 금융 부문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잠재리스크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며 "정책당국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취약 부문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