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에 미국 자동차업계 등이 주목해 눈길을 끌고 있다.
19일 자동차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법 발효 후 한 달도 되기 전인 9월 7일 미국 정부와 협상 채널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같은 달 16일부터 실무협의에 들어갔다. 또 국회와 함께 IRA 개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미 FTA 정신을 강조하고 한국산 전기차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에 나섰다.
한편 미국 수입자동차협회 제니퍼 사파비앙 대표는 최근 회원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IRA에 매우 빠르게 대응했다"며 "즉시 문제를 부각하고, 법 개정 필요성과 같은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미국 행정부 및 의회와 펼친 커뮤니케이션이 우리 협회와 회원사에 매우 큰 도움이 됐다"라고도 말했다.
미국 수입자동차협회는 현대차·기아를 포함해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 글로벌 브랜드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현재 IRA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회원사들과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난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 미국 측과 협의하기 위해 출국하는 정부 대표단. 연합뉴스
현재 한국 정부는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IRA 개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이달 발표되는 하위규정(가이던스)에 국내 자동차 업계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IRA에 대한 동맹국들의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정부의 대응을 주요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0월 "미국 주요 동맹국들은 IRA에 분노하고 있다"며 "가장 반발하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도 같은 달 "유럽과 일본 등의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보조금 차별 조항에 불만을 품고 있다"며 "유독 한국이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와 국회의 노력은 미국 상·하원에서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세액 공제를 3년 유예하는 개정안 발의로 이어지는 성과를 내고 있다. 또 유럽도 한국의 행보에 발맞춰 IRA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월 IRA의 전기차 보조금이 시장 왜곡 조치라고 의견을 같이하고 강경 대응을 약속했다. 유럽연합(EU) 통상장관들도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만나 북미산 자동차와의 동등대우를 촉구했다.
지난달 미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연합뉴스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을 국빈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IRA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는 또한 국내 기업들이 IRA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는 공식 협의체를 통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차별적 내용이 해소되도록 설득하고, 국내에서는 기업들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정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 왔다.
정부는 IRA의 미국 상원 통과 직후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자동차와 배터리, 에너지 기업들과 긴급회의를 열었고 업계와 관계부처가 함께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한 바 있다.
국내 기업들도 미국 재무부에 별도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정부와 보폭을 맞추며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현재 내연기관차만 생산하는 앨라배마공장과 조지아공장에 2024년 전기차를 투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차 제조시설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등 IRA 내 인센티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안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기업들은 현대차와 기아는 물론 GM, 포드 등 자동차 기업들과 손잡고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거점 구축하고 있다.
배터리 기업들은 IRA 배터리 광물 및 부품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IRA의 투자 및 생산 세액공제를 최대한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및 미주 사장은 "한국 정부와 국회의 IRA 활동이 현대차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EU 등 다른 어떤 나라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IRA에 대응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IRA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미국 정부에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