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살인범 조카 변호한 이재명…유족은 보상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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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윤창원 기자윤창원 기자
김모씨는 2006년 5월 흉기를 갖고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았습니다. 집에 들어가려던 전 여자친구를 쫓아들어가 그의 부모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아버지는 중상을 입은 채 베란다에서 떨어졌습니다. 전 여자친구와 어머니는 방으로 피했지만 김씨는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김씨의 변론을 맡은 사람은 외삼촌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습니다. 이 대표는 조카가 심신 미약 상태였다며 이는 감경 사유에 해당한다고 변론을 펼쳤습니다. 그 뒤 2021년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이 대표는 당시 변론이 문제가 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데이트폭력은 중대범죄이니 가중처벌 등을 포함한 특별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취지로 글을 올립니다.

이에 살아남은 전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이 대표를 상대로 1억원의 정신적 피해 보상 등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변론때는 감경 대상이라고 주장하던 범죄를 지금에 와서 가중처벌 대상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 대표는 대리인을 통해 사과 의사를 밝혔지만 변론 기일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유족은 이 대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고로 해당 사건과 관련해 당시에도 사과나 치료비 배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 대표 측 대리인은 지난 6월 첫번째 기일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범죄, 다른 결론…변호사는 '감경 사유', 정치인은 '가중 처벌'

이재명 페이스북 캡처이재명 페이스북 캡처
유족 측에서 문제삼은 이 대표의 지난해 페이스북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 살인범 조카를 변호했던 자신의 이력이 재점화되자 "제 일가 중 한 사람이 과거 데이트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돼 일가 중 유일한 변호사인 제가 변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데이트 폭력은 모두를 망가뜨리는 중대범죄. 피해예방, 피해자 보호, 가중처벌 등 여성안전을 위한 특별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족 측이 문제 삼는 것은 앞서 '데이트폭력은 가중처벌 대상'이라고 한 부분입니다. 이 대표 측에서는 '데이트폭력 중범죄라고 했고, 해당 범죄를 특정한 것도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양쪽 다 반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조카가 저지른 범행을 특정해 데이트폭력 중범죄라고 한 거니까요.

2022. 11. 10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 공판 中
원고(유족) 측 대리인: 피고께서 지난 대선 기간에 문제된 페이스북에 데이트폭력 범죄를 저질렀다, 여기서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때 가까웠다는 사이라는 것은 책임 가중 사유이지 감경 사유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찰에서 온 피고의 과거 16년 전 변론 내용을 보면, 오히려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면서 형을 감경해 달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증거로 입증됩니다. 따라서 원고 및 유족 입장에선 과거 변론 내용과 지난 대선 기간 주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너무 심각합니다. (중략) 피고께서는 과거 피씨방 살인사건에서 정신질환에 의한 감경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좀더 과한 주장을 하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이 사건과 관련한 피고의 발언은 너무나 지나치게 이율배반적입니다.

피고(이재명) 측 대리인: 원고 측은 피고가 16년 전 변론 당시 한 발언과 작년 발언을 비교하면서 피고가 불법행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16년 전 원고의 변론 당시 발언이 피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원고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피고의 불법 행위, 즉 16년 전 변론이라는 것인데 이미 16년이 지났으니 소멸시효가 지난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닌가요? (중략) 만약 대선후보 당시 발언을 문제삼는다면 재판장께서 보시듯 '데이트폭력'이라고 하지 않고 '데이트폭력 중범죄'라고 했습니다.

원고 대리인: 피고의 과거 16년 전 변론 활동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고요. 16년 전 변론과 정면 모순되는 주장을 지난 대선 때 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연인 사이였던 사람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이 '데이트폭력 중범죄'임은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달라진 것은 변호사 이재명은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졌으니 감경 사유라고 봤던 것이고, 대선 후보 이재명은 중범죄이니 가중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는 여성 표, 특히 2030 여성의 표심이 중요하게 작용했었고 이 대표는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덕분에 윤석열 당시 후보에 0.7%p 차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죠. 2030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 등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의견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구요. 그래서일까요, 원고 측 대리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피고 측 대리인은 "데이트 폭력이라고 표현한 목적이나 동기는 대선 기간 중에 정치적 목적과 동기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가 조카를 변론하면서 형을 감경받기 위해 '심신 미약'이라고 주장했던 것 역시 유족 측의 분노를 키운 부분입니다. 16년 전 공판에서 재판부가 이 대표의 조카에게 정신과 치료 전력과 치료 권유를 받은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역시 '정신 질환이 없다'는 취지의 감정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대표가 조카의 '심신 미약'을 주장하면서 참고한 유일한 근거는 네이버 지식백과라고 유족 측 대리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추모 감정 침해당했다는 유족…조롱 의도 없었다는 李

윤창원 기자윤창원 기자
명예훼손적 사실 적시 여부 외에도 양측이 맞붙는 지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피해자에 대한 추모 감정을 훼손당했는지 여부로, 변론 막판 등장한 또다른 쟁점입니다.

유족 측 대리인은 지난 7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인정된 대법원 판례를 제출했습니다. 지난 2015년 한 대학교수가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낸 영문 지문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듯한 표현을 쓰면서 비하 논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당시 재판부는 "소외인(소송 당사자가 아닌 자)의 아들인 원고의 소외인에 대한 추모감정은 침해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2018. 11. 29 대법원 민사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 선고
재판부: 유족이 스스로 망인에 대한 추모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권리로 볼 수 있고, 유족이 망인에 대한 추모감정을 형성하고 유지함에 있어 외부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당하여 정신적 고통을 입는 것은 행복추구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요소에 해당하므로, 행복추구권의 실현에 필요한 조치로서 유족의 망인에 대한 추모감정을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있고, '유족의 망인에 대한 추모감정'이 지니는 의미를 고려할 때,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751조 제1항에서 말하는 '기타 정신상 고통'에는 '유족이 망인에 대한 추모감정을 침해당하여 입은 정신상 고통'이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생략)

아무리 풍자적 성격이 있더라도 그 대상을 비하하고 조롱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이에 노 전 대통령 유족의 추모 감정은 침해됐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대표의 사건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이 대표 조카 김씨에 의해 가족을 잃은 유족 측은 △이 대표가 일가족 살인 사건을 데이트폭력이라고 했고 △변론 때는 감경해달라던 그 범죄를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가중처벌 해달라고 했으니, 이 판례에 따라 자신들이 입은 정신상 고통에 대해 보상해 달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 대리인은 "조롱의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2022. 11. 10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 공판 中
피고 측 대리인: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판례를 제시하셨는데, 그 사건의 경우에는 피고가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문제를 제출한 겁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원고, 즉 피해자를 희화하고 조롱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사과하고 위로하고 그에 대해 원고의 뜻과 동일하게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원용할 수 있는 판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피고가 직접 출석하지 못했지만, 출석하게 되면 반드시 원고와 유족 분들에 대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피고를 대신해서 다시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고 측 대리인: 그 부분도 사실, 피고께서 야당의 당 대표이시고 대선후보셨는데 직접 사과문을 제출하시면 더 진정성 있고 유족의 분노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대리인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
윤창원 기자윤창원 기자
16년 동안 사람의 생각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을 선거 기간 중에 바꿨던 이 대표였고, 유연한 사고를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얻은 바 있습니다. 살인사건 가해자 처분에 대한 생각도 충분히 바뀌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데다 가해자인 조카는 변호사를 선임하기에 형편이 어려웠고 모든 사람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으니, 삼촌이 변론을 맡아주는 것 역시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족 측에 큰 상처를 입힌 그의 변론도 전략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조카가 정신 질환을 앓은 적은 없지만 심신 미약이라며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한 것 말입니다. 이 대표 측 대리인은 또 "언론에서는 과거 한때 연인 사이였던 살인 사건에 대해 데이트 폭력이라는 표현을 썼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데이트 폭력이라고 사용했던 것을 피고가 사용했다고 해서 불법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소 언론에 책임을 떠미는 듯한 발언도 했지만, 이 역시 소송에서 패소하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유족이 받고 싶은 위로는 데이트폭력 범죄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대선 후보의 약속이 아닌, 변호사 이재명이 직접 전하는 사과 아닐까요? 다른 피고들은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표하거나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합니다. 이 재판에 대한 선고는 내년 1월 있을 예정입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 CBS노컷뉴스 법조팀 기자들이 전하는 살아 숨 쉬는 법정 이야기 '법정 B컷'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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