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의 풍향계라는 버지니아주 제10선거구의 투표장. 제니퍼 웩스턴 민주당 하원 의원에 공화당 헝 카오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권민철 기자미국 중간선거일 8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소재 윌로 스프링스 초등학교에 마련된 제10 선거구 투표소.
미국 전역에서 4천만명이 넘은 유권자들이 사전 투표를 한 때문인지 생각보다 차분한 가운데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버지니아 제10 선거구는 미국 언론이 이번 중간선거의 전조(前兆, bellwethers)로 지목한 곳 가운데 하나다.
박빙의 싸움이 벌어진 곳이면서도 개표가 다른 지역보다 빨라 이 곳을 보면 전국적인 '진짜' 표심을 보다 빠르게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를 마친 유권자 10여명에게 반응을 들어봤다.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무엇을 고려해서 투표했냐'는 것이었다.
딸과 함께 나온 젊은 흑인 남성 유권자는 "민주적인 권리와 자유를 고려했다"며 "가족과 경제적 안정, 건강 이슈를 감안해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 유권자는 "여성의 권리, 민주주의"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말은 하지 않겠지만 누구를 찍었는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선거 전략이었던 낙태문제와 민주주의 위기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버지나아 유권자 론(왼쪽 등을 보이는 사람)이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중이다. 권민철 기자론이라는 이름의 남성은 "최선을 다할 후보를 찍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이 잘한다고 보기 어렵다. 공화당도 잘 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면서 "덜 사악한 악마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그가 공화당에 투표한 것으로 읽히자 '바이든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은 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지체 없이 "인플레이션, 기름값, 국경개방"이라며 "대통령이 너무 막대한 돈을 썼다"고 말했다.
'이 선거구가 접전지라는 곳에 동의하냐'는 추가 질문에도 그는 "여기 말고 미국에 많은 접전지가 있다. 결국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라고 매우 자신감 있게 말했다.
버지니아 유권자 리사 포울터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권민철 기자리사 포울터라는 이름의 여성은 "지금은 미국 역사에서 중대한 시기"라며 "자유와 민주주의 보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년 넘게 유지해온 미국의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투표했다고 했다.
'누구를 찍었는지 알겠다'고 추임새를 넣자 "민주당을 찍었다고 확실히 말하겠다"고 반응했다.
이어 "카오 후보는 총기규제, 낙태, 의사당 습격사건 등에 대해 민감한 내용의 정치광고를 했다"고 비판했다.
카오 후보는 베트남계로 해군 출신의 공화당 후보로 공화당의 핵심 가치들에 대해 분명한 의사를 밝혀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올해 미국 중간선거는 다른 선거 때 보다 투표소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표정이 대체로 밝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꺼리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다.
마치 화나있는 모습이었다.
한 남성 유권자는 자신은 '공화당원'이라고만 말하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여성 유권자에게는 '누구를 찍었냐'며 접근했더니 "그건 말해선 답해선 안 될 질문"이며 대답을 피했다.
민주당을 제거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버지니아 유권자. 권민철 기자혼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던 중년의 남성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진보적인 민주당을 제거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들(민주당)을 제거하는 것이 많은 것을 제거하는 것이고 그래야 바뀐다"고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고 무표정하게 차에 올라탔다.
포울터씨에게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화난 것처럼 보였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 역시 그런 시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2016년부터 이 나라는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라며 "나라가 너무 분열됐다. 그 동안 나는 중도였고 그 때 그 때 이슈를 보고 투표를 해왔다. 지금은 너무 양극화돼서 공화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고, 좀 부끄럽다"고 웃어 보였다.
한편, 이날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결과의 대략적인 윤곽은 이날 밤 늦게부터 잡히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접전지역일수록 투개표상의 문제 제기가 많을 것으로 보여 최종 결과는 그 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지아주의 경우는 과반 득표가 없을 경우 다음달에 결선이 다시 치러진다.
따라서 미국 언론은 버지니아주 같은 접전지역의 개표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인구가 860만 명인 버지니아주를 지역구로 하는 하원 의원은 모두 11명이다.
이 가운데 7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미국 언론은 각종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이들 7명 가운데 3명(2,7,10 선거구)이 공화당에 의석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언론은 공화당의 이 같은 약진을 '붉은 파도'(red wave)라고 표현해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버지니아 2선거구에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면 '붉은 파도' 대신 '붉은 잔물결'(red ripple)로 봐야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만약 공화당이 7선거구에서 승리한다면 예상대로 '붉은 파도'가 맞고, 10선거구까지 이기면 '붉은 쓰나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