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에서 구조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연합뉴스'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지난달 29일 밤 당시 병원으로 이송된 피해자 중 심정지‧사망자를 제외한 중환자 의심 환자 중 거리 상 가장 가까웠던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이송된 경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병원의 물리적 거리 외 환자 수용 능력 등을 종합 고려했다는 입장이지만 가장 가까운 병원에 심정지 환자와 사망자가 쏠리고 정작 중환자는 거의 이송되지 않아 병원 배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지적도 제기된다.
4일 CBS노컷뉴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을 통해 입수한 이태원 참사 '병원 이송현황'을 분석한 결과 29일 밤 11시 15분부터 다음날 새벽 6시 5분까지 병원에 이송된 피해자 198명 중 중환자로 의심되는 피해자는 모두 22명이다.
사망자 40명, 심정지 80명 그리고 일부 신체 통증 등 경증 추정 환자 56명을 제외한 수치로 구체적으로 △실신 5명 △의식장애 5명 △호흡곤란 3명 △하반신 마비 2명 △사지마비 1명 △신체부위 마비 2명 △과호흡 1명 △전신통증 1명 △쓰러짐 1명 등이다.
연합뉴스그런데 이 중환자 의심 환자 중 참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약 1km에 있어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옮겨진 경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환자 의심 환자 20여명은 당시 현장에서 11km가량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멀었던 이대목동병원(3명)을 비롯해 6.1km 떨어진 강북삼성병원(4명) 4.6km 떨어진 국립중앙의료원(3명), 6.8km 떨어진 세란병원(1명), 6.5km 떨어진 서울대병원(1명) 등 모두 12곳의 병원으로 이송됐다.
반면 순천향대 서울병원에는 모두 55명의 피해자가 이송됐는데 이중 사망이 17명, 심정지가 37명 그리고 골반·아랫배 통증 환자가 1명이었다. 1명을 제외하고 전부가 사망자 또는 심정지 환자였던 셈이다.
연합뉴스심정지는 통상 골든타임이 4~6분이다. 당시 참사 발생 신고가 밤 10시 15분에 이뤄졌고 구조 작업 자체가 약 10분 뒤부터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이태원 참사의 심정지 환자 중 소생 가능성이 있던 경우는 극히 적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순천향대 병원에는 사고 당일 밤~다음날 새벽까지 이송된 55명에 이후 오전까지 총 82명이 이송됐는데 이 중 경상자 2명과 중상자 1명을 뺀 79명이 숨졌다. 사망자 대다수는 이미 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망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당시 참사 현장에서의 병상 배정이 생존 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 원칙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심정지 환자와 사망자가 집중돼 중환자가 상대적으로 먼 병원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참사 현장에 설치된 현장진료소와 병원 여력 확인을 담당하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협조해 여러 조건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단순 물리적인 거리 외에 병원의 의사 진료 가능 여부, 응급실 병상 여력 등을 두루 살펴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중증은 가깝게 최대한 빨리 보내고. 경증 환자는 상대적으로 멀리 보내주고 하는 것인데 그 '가깝다'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서울 시내"라며 "누군가는 이 사람은 중증 환자인데 서울 내 멀리 보냈냐고 하지만 그건 당시 의료진 상황 등이 고려됐을 것이다. 병상은 비웠는지, 의사는 있는지 등을 종합 고려해 현장에서 판단했을 것이라는 뜻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 구급차가 모여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장 상황이 급박했던 점을 고려해도 당시 중환자 치료에 물리적으로나 규모로나 가장 적합했던 순천향대 서울 병원에 중환자가 아닌 사망자가 몰린 점은 응급의료 우선순위에 맞지 않을뿐더러 중환자를 돌볼 여력도 줄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재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포기할 사람을 포기하고 살릴 사람을 먼저 살린다는 원칙이다. 한정된 의료자원으로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하는데 (이번 참사에서는) 이미 사망한 인력에 너무 많이 의료자원이 낭비되며 이 개념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자료를 보면 당일 밤 11시 15분부터 심정지 환자 이송이 이뤄지는데 이는 실신.우측흉벽통증, 의식장애, 우측골반 및 어깨.흉부늑골골절 환자 등이 미처 이송이 되지 않은 때다.
김대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재난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있는 환자부터 이송해야 한다"면서 "심정지의 경우도 제일 후순위로 이송한다"고 전했다.
유 교수는 또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79명의 사망자가 몰렸는데 그러면 2차적인 사망 판정도 하고, 진단서도 쓰고 공간 배정도 해야하는데 이러면서 중환자를 돌볼 여력은 더욱 떨어진다. 이런 점들이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한편, 참사 당일 119 신고 후 사상자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평균 2시간34분가량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7시간가량 걸린 사례도 있다. 참사 현장의 많은 인파와 불법 주정차 차량 등으로 구급차의 진‧출입이 어려웠던 가운데 빠른 병원 이송이 되지 않은 점도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