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경쟁자의 대선자금 수사'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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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깽깽이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대선후보
문민정부 이후 대선자금으로 기소된 후보 없어
손절메시지 받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
승자도 패자도 기소되면 어차피 1호
검찰이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의 사법화
검사 출신 대통령이기에 당연하지만 낯선 이유

지난 2003년 12월 15일 민주노동당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양연수씨가 대선자금 차떼기와 관련한 진술을 위해 대검에 출두하는 이회창 전총재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003년 12월 15일 민주노동당 종로구 지구당위원장 양연수씨가 대선자금 차떼기와 관련한 진술을 위해 대검에 출두하는 이회창 전총재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사에 대선자금 수사의 압권은 단연 2003년 '차떼기' 사건일 것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회창 총재의 측근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잔뜩 실은 트럭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통째로 전달받았다.
 
차떼기 트럭은 곧바로 한나라당 당사로 옮겨졌고 모 기자는 당시 재정국장 방에 들렀다가 영문도 모른 채 현금이 들어있는 사과박스 위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눴다는 일화도 있다.
 

대선자금 수사는 권력 교체기마다 으레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매번 청렴한 정치 운운하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하물며 정치인의 꼭지점인 대선후보는 담장 위에서 깽깽이 걸음을 하는 셈일 것이다.
 
기자생활 고작 30여년 한 것으로 대한민국 헌정사의 정치자금 생리를 다 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권력이 경쟁자를 대선자금 수사로 법정에 세운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차떼기로 이회창 총재측이 거둔 대선자금은 823억원. 이 후보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 등 정치인 32명이 사법처리됐다.
 
이회창 총재는 "대선자금에 관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고 제가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감옥은 커녕 기소도 되지 않았다.
 
왼쪽부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왼쪽부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노태우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1992년 대선 때 김영삼(YS) 후보측에 3천억원을 건넸다"고 밝혔지만 YS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김대중 후보(DJ)는 1997년 대선 때 대선자금을 포함한 비선자금 의혹으로 위기에 처했지만 당시 대통령인 YS는 수사 유보를 지시했다.
 
DJ 스스로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를 받았다고 실토했는데도 수사는 중단됐고 DJ는 당선됐다.
 
이회창 전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회창 전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도 이회창 후보처럼 불법 대선자금 혐의가 드러났지만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을 사퇴하겠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결국 19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사법처리된 후보는 한 명도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다.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대선자금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이재명 대표 입으로 측근이라고 칭한 김용 부원장이기에 김문기 전 성남도시공사 개발처장처럼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기도 어렵다.
 
"이제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주십시오"라는 손절 메시지를 받을 만큼 이재명 후보는 코너에 몰렸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등 의원과 당직자들이 2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검찰독재 신공안통치 민주당사 침탈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등 의원과 당직자들이 2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검찰독재 신공안통치 민주당사 침탈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에도 검찰의 압수수색이라는 습격을 받고 소속 의원들에게 당사 집결령을 내렸지만 결사투쟁의 명분을 찾아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민주당으로서는 이재명을 선택할 것인지 민주당의 미래를 생각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자금으로 기소되는 '1호가 될 순 없어'라는 입장이지만 1호가 되기는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승자가 패자의 선거자금을 문제 삼아 법정에 세운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게다가 대선이 끝난지 반 년 만에 상대 후보의 대선자금 수사는 온갖 정치적 해석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
 
연합뉴스·윤창원 기자연합뉴스·윤창원 기자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으로서는 야당 대표 이재명이 경쟁 대선후보였지만 지금은 한낱 불법 자금의 피의자일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의 정치자금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사법처리가 이뤄진다면 어차피 서로 1호가 되는 셈이다.
 
다만, 역대 대통령과 대선후보들의 정치자금 수사가 정치의 영역에서 판단돼왔고 그때마다 어느 정도 투명한 정치자금 논의를 거쳐 한국정치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검찰이 정치를 지배하는 현실이 사법만능, 검찰공화국 시대라는 낙인을 찍을까 안타깝다.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는 늘상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혹여 패자를 바로 감옥에 보내버리는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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