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에서 화합으로, 여순을 넘어 새로운 여순으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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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전쟁 전후.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던 그때, 그 안에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습니다. 빨치산을 토벌한다는 군경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했던 평범한 시민들. 민간을 향한 국가의 폭력은 여순사건에서 지리산권 전역으로 확산됐습니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시작된 학살은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못한 수많은 민간인 희생을 낳았고 그 상처는 수십년간 이어진 좌우의 대립 속에 남겨진 유가족의 인생마저 송두리째 빼앗아갔습니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이라는 시대적 상황 앞에 그들의 주홍글씨는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습니다. 여순사건, 보도연맹 사건, 임실 폐금광 학살사건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아픔을 지닌 민간인 희생자들의 한(恨)을 전남·전북CBS가 공동 특별 기획을 통해 전합니다.

[전남·전북CBS 공동 특별 기획]
여순의 또 다른 진실, 지리산 킬링필드

▶ 글 싣는 순서
① 여순, 또 다른 비극의 서막…대를 거친 악몽 어디까지 이어졌나
② "지리산에 산다고 끌고 가 맥없이 죽였어"…끝나지 않은 여순
③ 지상의 지옥 임실 폐광굴 분화 사건…"민간인 600명 질식사"
④ 핏빛으로 물든 지리산…"보이는 건 모두 적, 섬멸하라"
⑤ 기록되지 못한 상처, 기억해야 될 시간…여순사건 과제 산적
⑥ 대립에서 화합으로, 여순을 넘어 새로운 여순으로


여수·순천에 갇히지 않는, 여순의 전국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광주 5·18민주화운동에서부터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가 이뤄진 제주 4·3사건과 비춰볼 때 여순사건이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먼 상황이다.
 
이데올로기 대립 속 한국 현대사의 큰 줄기임에도 좌우대립과 지역적 한계에 묶였던 여순사건.
 
완전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까지 과제가 산적했지만 20년 만에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면서 진상규명의 단초가 될 피해 신고가 이뤄지는 등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다만, 74년 오랜 역사인 만큼 보다 희생자·유족의 고령화에 맞춰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별법 제정 1년을 막 넘긴 지금, 광주5·18과 제주4·3을 반면교사 삼아 여순사건의 전국화에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이유다.
 
더욱이 여순사건 전국화는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측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정립 측면에서 여수와 순천 등 공간적으로 일부 지역에 한정된 여순사건이라는 현대사의 큰 줄기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정립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경모 작가의 여순사건 기록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이경모 작가의 여순사건 기록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여순사건' 아닌 새로운 이름, 사회적 합의와 연구 필요

전문가를 비롯한 지역사회에서는 여순사건의 역사적 재정립을 위한 정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여순반란'에서 '여순사건'으로 불리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역사적 의미에 걸맞은 단어로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주철희 여순사건위원회 위원은 "현재 특별법에서는 여순사건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사건이라는 단어를 서양이론에 대입하면 이는 이벤트(event) 또는 인시던트(incident)일 뿐이다. 역사적 접근으로 볼 땐 내포된 의미가 없는, 동서고금에 존재하지 않는 명칭이나 다름이 없다"며 "그렇다면 이 역사를 어떤 성격을 붙여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생긴다"고 말했다.
 
주 위원는 크게 반란과 학살, 학쟁 등 3개 단어를 고려할 수 있지만 단어 각각의 의미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란은 국가적 측면에서 군인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학살은 유태인 학살에서처럼 특정 집단이 일방적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개념으로 피해자의 관점에 무게를 둔다.
 
마지막으로 '여순항쟁'으로 정명한다면 14연대 군인들이 왜 명령을 거부했고 민중들이 이들에 따라 왜 집단적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강조하는 의미가 담긴다.
 
주 위원는 "사건이라고 부른다는 역사가 아니다. 역사에서 항쟁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집단적 실천행위다"며 "당시 여순을 비롯한 지리산지역 사람들은 시대에 맞는 그들의 요구를 국가에 지속적으로 전했다. 그것이 여순사건이 아닌 여순항쟁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다"고 강조했다.
 
다만, 항쟁으로 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실정이다.

주 위원은 "정부가 역사적 용어에 항쟁이라는 단어를 꺼린다는 점아 걸림돌이다"며 "항쟁이라는 단어에는 국가나 정부가 잘못한 부당한 억압적 행위를 했다는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강성호 순천대 대학원장은 정명에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심층적 연구가 선제돼야한다고 언급했다.
 
강 원장은 "여순사건이 반란, 사건, 항쟁 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역사 진행 과정에 대한 보다 좀 더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부 군인만 가담했는지 또는 일부 시민들만 동조했는지, 아니면 지역에 거의 대다수가 참여하고 피해의 폭도 컸는지 이런 것들을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순사건의 진행 과정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좌익에 있었던 인민위원회 활동 폭이나 참여했던 단체·계층 현황 등 당시 사실을 구체적으로 데이터화하는 작업은 미진했다. 이같은 작업이 이뤄진다면 사회적 합의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기억을 위한 기록, 국가 등 기록화작업에 힘써야

정명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진상규명의 기초가 될 기록화작업도 힘써야 할 부분이다.
 
정부 차원의 기념사업을 바랄 단계는 아닌 만큼 광주5·18, 제주4·3과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민간 차원의 기록화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여순사건 순천유족회가 지난 2020년 10월 순천시 장천동 유족회관 2층에 개관한 여순항쟁 역사관이 대표적인 예다.
 
여순사건 발발 72년 만에 국내 처음 개관한 여순사건 관련 기념관으로, 6개월간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소속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참여해 전시 주제 설정 및 여순항쟁 역사 검토 과정까지 거쳐 개관까지 이르렀다.
 
역사관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와 연구 성과, 유족과 지역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여순항쟁의 개요와 전개 상황 등이 전시 중이다.
 
이밖에도 유족의 상황과 활동, 통계로 보는 피해 상황, 여순항쟁의 전개 및 피해 상황, 정부 대응과 왜곡, 진실 규명 노력과 여순항쟁 역사지도 등 여순항쟁의 역사를 알리는 데 필요한 사항을 담아냈다.
 
여순10·19범국민연대 박소정 운영위원장은 "여순항쟁 역사관이라는 공개된 기록관이 마련되면서 숨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최대한 사료에 근거해 기록했기 때문에 왜곡을 최대한 막아낸 낼 수 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본다"며 "다크투어리즘의 필수 코스가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는 등 작은 공간이지만 의미가 깊은 이곳이 여순사건을 널리 알리는데 의미 있게 쓰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남 순천시 장천동 유족회관 2층에 있는 여순항쟁 역사관. 유대용 기자전남 순천시 장천동 유족회관 2층에 있는 여순항쟁 역사관. 유대용 기자
순천 여순항쟁 역사관을 기점으로 여순사건을 기리는 기억의 공간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여수시는 지난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발맞춰 여수 오동도 여순사건 기념관을 개관, 운영 중이며 전라남도는 여순사건 피해 신고 접수를 완료한 뒤 내년부터 기념관 조성 등 본격적인 기념사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기록화작업과 관련해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어진다. 여순사건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났다보니 당시 생존자분은 매우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록물 수집에 어려움 많겠지만 생존자나 유족 등의 기록을 채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당시 군사재판, 경찰, 행정기관의 기록물 모두 다 찾아야 한다"며 "원본이라면 조작된 기록물이라 하더라도 가치는 충분하다. 기록물만 있다면 조작 여부와 사실 추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여순10·19사건, 불의에 맞선 민주주의 역사

여순사건을 광주5·18에 비춰 국군의 역할에 대해 정립하는 계기로 삼자는 의견도 제시된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조금 과장하면 국군의 역할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여순사건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동포를 해할 수 없다는 14연대 군인들과 달리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은 빨갱이 사냥이라는 명령 아래 권력을 잡으려는 지휘자관들의 몽둥이로 전락했다"며 "올바른 국군의 역할이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것임을 생각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여순사건의 교육적 가치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조 상임이사는 나아가 진상규명에 발걸음을 뗀 여순사건이 5·18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5·18 진상규명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여순사건을 풀어가기 위한 전반적인 시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 상임이사는 "광주와 전남 시·도민만의 노력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노력이 지금의 5·18을 있게 했다"며 "진상규명에 앞서 무엇보다 국민의 적극적 동의를 끌어내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지역사회와 언론의 역할도 강조된다.
 
주 위원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보상 등 제주4·3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중 최초의 입법적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유족과 지역사회 그리고 지역 언론의 힘이 컸다"며 "부당함과 불의에 맞선 우리의 민주주의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순사건은 지역사회 내 연구의 문제뿐만 아니라 관심 자체가 저조한 편이다. 특히나 여순사건을 전문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사도 전무한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해방 이후 눈부신 성장에 걸맞은 문화적 품격이 사회 전반에 자리매김할 때 완전한 진상규명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그는 "여순사건을 계기로 빨갱이라는 낙인이 생겼다. 이후 흘러온 일련의 상황을 치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며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묵살하고 배재했던 야만의 시대를 재조명하고 물질의 풍요를 나눌 수 있는 문화적 품격을 갖출 때 한 발 더 성숙한 대한민국 공동체와 함께 완전한 진상규명이 찾아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6월 29일 전남 여수시청 회의실에 모인 여수지역 유족,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환호성을 외치고 있다. 여수시 제공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6월 29일 전남 여수시청 회의실에 모인 여수지역 유족,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환호성을 외치고 있다. 여수시 제공
※이 영상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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