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30년 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로부터도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으니 소멸을 걱정해야하는 다른 지방 상황과는 전혀 달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미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경기도는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은 자연감소 단계(1972명 감소)에 들어섰다. 인구유입이 줄어들면 시간이 문제지, 경기도 역시 다른 지방의 모습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관계자는 "경기도도 2024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꺾이고 2039년에는 전체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전국 인구감소지역 89곳 가운데 두 곳이 경기도 지역이다. 바로 가평과 연천군이다.
지난 20일 찾은 가평군 설악면 가일1리는 수도권에서 이름난 관광지였지만, 평일인 탓에 여느 시골 마을처럼 한산했다. 이곳은 유명산을 끼고 있고 주변에 계곡도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오전 10시 20분쯤 마을회관을 찾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10여분을 기다리니 노인 한 분이 다가왔다. 이곳에 정착한지 2년 정도 됐다는 김복희(87) 할머니였다. 김 할머니는 "나이를 많이 먹고 일을 안 하는 노인들만 5명 정도 찾는다"면서 "사람이 없다. 80~90세 노인들이 주로 나온다"고 했다.
오전 10시30분 문을 여는 가평군 설악면 가일1리 마을회관. 고령화가 심하다 보니 주로 80~90대 어르신들이 이곳을 찾는다. 정영철 기자얼마 지나지 않아 김원현 할머니가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김원현 할머니는 94세나 됐다. 김 할머니는 "유명산 인근이라 사람들이 서울에서 많이들 오지만 젊은이들은 없다"면서 "돈 벌이 때문에 젊은이들은 안 들어 온다"고 했다.
이 말에 옆에 있던 김복희 할머니가 "여긴 60대는 말할 것도 없고 80대도 아프지 않으면 일을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취재진이 떠날 때까지 마을회관은 두 분만이 지켰다.
가평을 돌며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젊은 사람은 방일1리에 사는 양유영(45)씨였다. 서울에서 살다 자연환경이 너무 좋아 가평에 정착한 양씨는 "우리 마을 40여 가구 가운데 아이들이 우리 애 2명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어르신들이 길에서 만나면 무척 반가워 해 주신다"고 했다.
설악면은 그나마 관광지여서 외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 속한다. 가평군 인구는 지난 2017년 6만2973명에서 지난해 6만2264명으로 감소했지만, 설악면은 같은 기간 9285명에서 9663명으로 378명 증가했다.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곳이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 가일2리 마을만들기사업 사무장인 정진희(52)씨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인구가 늘었다"면서 "어느정도 성공적이긴 하지만 지속가능성이 확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28일 가일2리에서 열린 마을축제에 주민 200여명이 참여해 다과를 즐기고 있다. 정진희씨 제공젊은층을 유인해야 하는데 가평군에는 산부인과 병원이 없는 실정이다. 정씨는 "젊은 사람이 와도 임신을 하게 되면 (병원이 있는) 남양주 등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자자체 노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가평에서 인구감소 위기가 가장 심한 청평면 하천1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최영화(74) 할머니는 "옛날에는 공업단지가 있고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면서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나가고 고령층만 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이 없다보니 노동력이 줄어서 나이 먹고도 농사를 짓고 한다"고 말했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한 최 할머니는 설악면에 있는 병원을 다니는데 버스를 3번이나 타야한다고 했다.
접경지역인 연천군은 가평군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 중에 가장 인구가 적은 곳으로, 유일하게 5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2016년 4만5907명에서 지난해 4만2721명으로 3천명 넘게 감소했다.
연천에서도 인구 위기가 더 심각한 곳 중 한 곳인 청산면을 가봤다. 청산면 초성1리 마을 입구에 있는 경노당은 문이 닫혀 있고, 옆집 마당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어르신 3명이 눈에 띄었다. 이찬수(76) 할아버지는 "인구가 많이 줄었다. 특히 애들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경기도는 청산면을 유일한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다. 청산면에서 주소지를 두고 실거주하고 있다면 나이, 재산 관계없이 누구나 월15만원을 받게 된다. 다만, 농민기본소득(영농종사자 대상 월5만원), 청년기본소득(만24세 때 일회 100만원) 등 다른 복지 혜택과 중복해서 받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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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청산면 초성1리에는 지난 2년간은 편의점이 없었다. 청산면이 농촌기본소득의 시범실시 지역이 되면서 편의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정영철 기자
경기도와 연천군은 농촌기본소득의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청산면 인구는 지난해 12월 3895명에서 올 8월 4244명으로 약 9%(349명) 많아졌다.
연천군청 여성회 팀장은 "인구 감소 지역에서 인구가 다시 느는 일은 거의 없는데 청산면은 전입 인구가 전에 비해서 늘었다"고 했다.
농촌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다보니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2년 전 폐점했던 편의점이 다시 문을 열기도 했다. 편의점 주인인 김정은(47)씨는 "이제는 주민들이 멀리 안나가고 여기서 장을 본다"면서 "편의점도 없었고, 농촌기본소득 제도가 시행돼서 겸사겸사 편의점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촌기본소득 역시 젊은층을 끌어들이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명목상으로는 20대 인구가 110명 증가했지만, 관사 생활을 하는 직업군인들이 주소지를 옮긴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60대는 109명 늘었는데 가까운 인근 지역에서 전입한 경우도 적지 않다.
주민들은 군사시설이 많다보니 집을 짓기도 어렵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노모(왼쪽)와 함께 집앞에 나와 있는 연천 토박이인 이명훈씨. 이씨는 연천이 갈수록 활기를 잃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정영철 기자
노모와 집앞에 나와 있던 이명훈(65)씨는 "여기서 태어나서 65년을 살았는데 인구가 줄면서 낙후하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깝다"면서 "중앙 정부에서 전체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씨는 구체적으로 "도로 옆에 있는 탄약고 때문에 건설 인허가가 안 난다. 탄약고를 지하화하거나 외곽으로 빼야한다"고 했다.
이장을 맡고 있는 유기문(60)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땅을 사 들어와서 귀농을 하고 집을 짓고 살려고 해도 허가가 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