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제2의 김연경은 왜 나오지 않을까" 김연경 본인에게 직접 물었다 ②'女에 밀리고, 강호에 치이고' 韓 남자 배구, 르네상스는 언제? ③"韓 배구 젖줄? 속이 탑니다" 중고 배구의 절규, 열악한 현실 ④'韓 배구 영광 재현하려면' 프로 구단·협회의 문제 인식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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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배구대표팀과 임도헌 감독(오른쪽). 연합뉴스궁지에 몰린 한국 남자 배구다. 프로 리그에서는 여자부에 밀려 흥행이 저조하고 국제 대회에선 경쟁력이 부족하다.
숫자를 보면 위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배구연맹(KOVO) 자료에 따르면 지난 시즌 V-리그 남자부 평균 시청률은 0.75%였다. 2020-2021시즌(0.81%) 대비 0.06%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여자부는 지난 시즌 평균 시청률이 1.18%로 훨씬 높았다.
컵 대회 결과도 비슷하다. 지난달 '2022 순천·도드람컵 프로배구 대회'에서 여자부는 평균 시청률 0.99%로 남자부(0.89%)보다 높았다. 관중 차이는 더 컸다. 여자부 경기 평균 관중은 2129명이었지만 남자부는 794명에 그쳤다. 2배 이상 차이가 난 셈이다.
여자 배구 대표팀은 2012년부터 3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2012년 런던과 지난해 도쿄에서는 4강까지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반면 남자 배구 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대회를 마지막으로 20년 넘게 올림픽 본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
여자 배구에는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있지만 최근 남자 배구는 이렇다 할 스타를 꼽기 어렵다. 1980~90년대 올림픽에서 강팀으로 분류됐던 남자 대표팀은 이제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 35위에 머무는 수준이 됐다.
경쟁력이 약해진 남자 대표팀을 위해 대한민국배구협회와 KOVO는 국제 대회 출전 처방을 내놨다. V-리그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큰 물을 마주하고 세계 랭킹을 끌어올려 2024 파리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는 계획이었다.
한국 남자 배구대표팀 자료사진.
시작은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챌린저컵의 국내 개최. 대회 우승팀은 상위 대회인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출전권을 받을 수 있었다. VNL에 참가해 승리를 거두면 또 세계 랭킹을 올릴 기회가 생기고 이를 통해 파리행 희망을 이어가겠다는 복안이었다. 앞선 두 차례 대회에서 개최국이 모두 우승한 바 있다. 2018년 포르투갈, 2019년 슬로베니아가 1위를 차지해 VNL로 승격했다.
하지만 한국은 8개 팀이 참가한 서울 대회에서 쿠바, 튀르키예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VNL 진출권은 사라졌고 24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 설 가능성도 사실상 희박해졌다.
지난달 8월 끝난 아시아배구연맹(AVC)컵도 4위에 그친 남자 대표팀. 마지막 3·4위전에서 랭킹 70위 바레인에 0 대 3 완패를 당했다. 그나마 2014년 이 대회 우승 후 가장 높은 순위를 거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현대캐피탈 문성민(왼쪽부터), 하근찬 CBS미디어캐스트 대표이사, 김홍 중고배구연맹 회장이 21일 충북 단양국민센터에서 열린 '제33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폐막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단양=박종민 기자
남자 배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성민(36·현대캐피탈)은 남자 배구의 부흥을 위해 1순위로 국제 대회 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문성민은 지난 21일 충북 단양에서 열린 '제33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 폐회식에 참석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남자 배구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이겨서 나가야 하는데 올림픽에 20년 넘게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면서 "나도 국가대표 시절 올림픽에 나가지 못해 선배로서 지금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한 감정이 든다"고 밝혔다.
한국 배구의 특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기본기는 물론이고 키는 다소 작지만 빠르고 유연한 체형적 특징이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팀 색깔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성민은 "이런 선수들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면서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됐다는 자부심으로 훈련에 임하고, 한국만의 스타일을 만든다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극 마크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문성민은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고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내준다면 남자 배구의 인기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충분히 스타성이 있는 선수도 많다"면서 "그 선수들이 배구를 좀 더 잘하고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이면 남자 배구의 인기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성민은 대학생 시절이던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이전까지 배구는 또 다른 겨울 스포츠 농구에 밀렸던 게 사실이었지만 도하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당시 남자 배구는 우승을 차지했지만 남자 농구는 5위에 머물러 아시안게임 사상 첫 4강 진출이 무산됐고, 48년 만에 노 메달에 그쳤다.
다만 남자 배구는 이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는 숙적 일본과 4강전에서 석진욱 현 OK금융그룹 감독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결승행이 무산돼 아시안게임 3연패가 좌절됐다. 4년 뒤 인천에서는 동메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따냈지만 우승하지 못했다.
발리볼챌린저컵에서 포효하는 임동혁. 연합뉴스현 대표팀 에이스가 된 임동혁(23·대한항공)의 어깨는 더 무겁다. 나이는 어리지만 한국 배구의 성적이 자신의 팔에 달린 만큼 책임감이 막중하다.
임동혁은 최근 국제 대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문성민 등과 함께 CBS배 폐회식을 찾은 임동혁은 "국제 대회에 다녀온 뒤 컵 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 상을 타게 됐다"면서 "소속팀에서 많은 훈련과 노력도 있었지만 대표팀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왔기에 컵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비록 국제 대회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희망을 발견했다. 임동혁은 "한국은 높이에서 외국에 밀리지만 수비나 기본기는 다른 나라보다 확실히 좋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본기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잘 다듬어 우리나라의 장점을 계속 극대화한다면 국제 대회에서도 성적이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임동혁은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담당하는 아포짓 스파이커 영역에서 당당히 외인들과 견줄 토종 거포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신만의 비결에 대해 "선을 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선수가 무조건 나보다 잘한다는 선입견을 가지면 그 선에 맞는 운동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동혁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훈련과 경기에 임하면 저도 모르게 경기력이 좋아지고 실력이 나온다"면서 주전 경쟁도 자신감을 가지고 임한다고 전했다.
여자 배구의 인기에 밀리고, 국제 대회 외국 강호들에 치여왔던 한국 남자 배구. 과연 세계 정상을 위협하던 한국 남자 배구의 '매운 맛'을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