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안좌스마트팜앤쏠라시티 태양광발전소는 부지 크기만 27만평에 달한다. 바닷물이 스며들어 짜고 질퍽한 땅 위에는 농작물이 자랄 수 없어 태양광 모듈 24만여개(96MW)가 대신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일조량이 가장 좋은 신안군의 햇빛이 만들어내는 연간 전력량은 약 136GWh로 약 40만 가구(4인 기준)가 쓸 수 있는 양이다. 정다운 기자"3세대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선 화재가 발생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시기. 햇빛과 바람으로 만드는 재생에너지는 원료가 공짜지만 문제가 있다. 그 햇빛과 바람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기상조건으로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것을 에너지업계에선 '간헐성'이라고 부른다.
ESS는 햇빛이 쨍하고 바람이 많이 불 때 에너지를 한껏 저장해놨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장치다. 재생에너지가 ESS와 함께 간헐성 문제를 해결했다면 탄소를 뿜어내는 화석연료와 핵폭발 위험이 상존하는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의 잘못된 재생에너지 정책 설계와 초창기 불완전한 ESS 기술이 맞물리면서 화재 사고가 빈번했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용량 확대가 아닌 차기 기저전원으로서의 입지 확보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남 신안군 안좌스마트팜앤쏠라시티 태양광발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ESS) 모습. 천장의 노란 가스관을 통해 화재 진화에 쓰이는 특수 가스가 나온다. 배터리 온도가 일정 수준(57도)을 넘길 경우 바닥부터 촘촘히 설치된 얇은 관을 통해 즉각 물을 주입해 화재 확산을 차단하게 된다. 정다운 기자지난달 26일 방문한 전남 신안군 안좌면 스마트팜 태양광발전소(96MW)는 일단 화재 사고 우려에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발전소를 운영하는 KCH 쏠라시티 측 관계자는 "1세대와 2세대 ESS에선 화재가 발생했었지만 3세대 ESS에선 한 번도 없었다"며 "겹겹이 화재진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좌 발전소의 ESS 규모는 340MWh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설치된 배터리만 2만2780개다. 배터리마다 부착된 센서가 57도의 온도나 열을 감지해내면 바로 물이 방출되도록 바닥부터 촘촘히 주수소화설비가 갖춰져 있고, 천장의 가스관에선 불을 끄는 특수 가스가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설비를 모든 태양광 사업자가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좌 태양광 단지 공사비용의 45%가 ESS 설비를 갖추는 데 들어갈 정도로 가격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발전사업자들이 ESS 설비를 갖추도록 유도하기 위해 일종의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ESS에 저장했다가 파는 재생에너지 전력은 일반 전력 대비 4~5배의 값을 쳐준 것이다.(신재생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안좌 발전소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태양광으로 만든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오후 5시부터 한국전력으로 보낸다. 태양광 발전을 해서 일반적으로 파는 전기가 100원이라면, ESS에 저장을 했다가 파는 전기는 400~500원을 받을 수 있다.
전남 신안군 안좌스마트팜앤쏠라시티 태양광발전소 내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만 2만2780개(340MWh 규모)가 설치됐다. 정다운 기자그러나 이같은 정책이 각종 부작용을 낳으면서 정부는 2021년부터 돌연 REC 가중치를 4에서 0으로 없애버렸다. 이른바 '보조금 장사'를 노린 일부 사업자들이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않고 ESS를 설치·운영하면서 각종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태양광 연계 ESS의 경우 전력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대에 전력을 팔지 않고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전력수요가 낮은 밤에 내보내는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오히려 전력수급 안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컸다.
REC 가중치 폐지 이후 ESS 설치에 대한 유인이 떨어지면서 민간에서는 더 이상 큰돈을 써가며 설비를 들이지 않는 상황이다. 안좌 태양광발전소도 1차 사업에선 ESS 설비에 공을 들였지만 현재 추진 중인 2차 사업(192MW)에선 ESS 설비를 아예 빼버렸다.
어디에서 어떻게 발전되는 재생에너지에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지. ESS 설비 활용을 장려하기 위한 유인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 탄소중립과 에너지정의 관점에서 어느 때보다 세심한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재생에너지에 REC 지원을 집중하고, ESS의 경우 충·방전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초기 투자비용을 지원하거나 계통에 기여하도록 유인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 신안군 안좌스마트팜앤쏠라시티 태양광발전소 전경. 정다운 기자그러나 정부는 최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1.5%로 낮추면서 일단 속도조절부터 나선 상황이다. 1년 전 세운 목표치(30.2%)는 "실현가능성이 낮다"며 현실과 타협하는 데 그쳤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가 활성화·안정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구조를 개편해야 할 정부가 현재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거래 체계에 갇혀 '실현가능성'만 운운하고 있다"며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