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처음해봐서 몰랐다"…꼭 해봐야 아나?[베이징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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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정재호 주중 대사가 5일 기자간담회에서 행사 일정 보도자료 안 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기자들과 같이 가야 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밥 먹으면서 편하게 소통도 하자고 하자 4개월치 업무추진비를 직원 추석선물비로 기부해서 돈이 없다면서 내년에 보자고 했다. 김영란법 얘기도 했는데 소통하자는데 김영란법 들고 나오는 것은 소통 안 하겠다는 것 아닌가.

지난달 24일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서울과 베이징을 화상으로 연결하는 이원 중계 방식으로 열린 비즈니스 협력 포럼에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24일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서울과 베이징을 화상으로 연결하는 이원 중계 방식으로 열린 비즈니스 협력 포럼에서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인사말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사를 처음 해 봐서 몰랐다."
 
지난 5일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대사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재호 대사가 한 말이다. 20여 명 이상 모였던 특파원들은 귀를 의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말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인을 대동하고 봉하마을을 방문한 것과 관련해 제2부속실을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는 질문에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고 답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런 논란을 모를 리 없는 정 대사는 왜 고교 동창인 윤 대통령을 바로 생각나게 하는 발언을 했을까?
 
정 대사는 취임식에서 중국식으로 첫째, 둘째…이런 식으로 나눠가면서 대사로서의 포부를 밝혔는데 이 중에 하나가 소통이었다. 정 대사는 브리핑 자리에서도 한중간에 소통이 가장 필요한 때 소통 창구가 닫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위기 시에도 닫히지 않는 소통창구를 유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 기자가 관련된 질문을 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에 주말에 대사가 다녀오셨지만 보도자료도 없었는데 배경이 있었냐면서 바쁜 9월이 지나면 특파원들과 식사도 하면서 편한 소통을 하자고 했다.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17호각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왼쪽)가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 17호각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정재호 주중대사(왼쪽)가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여기서 그 발언이 나왔다. "대사를 처음 해서 잘 몰랐다. 특파원들과 같이 가야 하는지 몰랐다. 보고 받지 못했다. 상세히 검토해서 항상 있었던 관례라고 한다면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자 질문은 특파원들과 왜 같이 가지 않았냐는 게 아니라 작년과 재작년에는 대사가 행사에 참석하면서 기자들에게 알리고 보도자료까지 냈는데 이번엔 왜 안 낸 건지를 물은 것이었다. 질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대충 둘러대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는 것 같았지만 "대사를 처음해서 몰랐다"는 말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이어진 대사의 발언은 기자들에게는 더 충격적이었다. 밥 먹으면서 편하게 소통하자는 요청에 다른데 챙길 곳도 많고 업무추진비도 없다고 했다. "좀 기다려 달라, 업무추진비 넉 달 치를 행정직원 추석 선물에 기부했다. 내년에 밥 먹을 기회를 한번 모색하겠다"고 했다.
 
기자들이 밥 사달라고 애걸하는 것은 아니다. 또 중국 대사가 기자들이나 만나고 다닐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특파원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여럿이 밥 먹을 때 대사가 하는 말에 영양가가 없을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전임 대사가 교민사회는 물론 기자들과의 소통이 썩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참으로 의외였다. 주중 대사관과 주중 특파원 간에 소통도 안 되는 데 교민사회와의 소통이나 한중간에 소통이 되겠냐는 생각이 나올 법 했다.
 
업무추진비를 행정직원 추석선물에 다 썼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지 채용 행정직원 처우가 특히 낮은 것은 문제지만 제도적으로 접근해야지 대사 업무추진비로 할 일이 아니다. 2년 전 국정감사에서도 장하성 대사가 의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던 부분이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에 10% 가량 개선됐다.

정재호 주중대사가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17호각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윤석열 대통령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 제공정재호 주중대사가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17호각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윤석열 대통령 축사를 대독하고 있다. 주중한국대사관 제공
덧붙이자면 업무추진비와 직원사기 진작 비용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교수가 연구생들에게 선심 쓰듯 할 돈이 아니다.
 
김영란법 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법은 김영란법은 한 끼 식사에 우리 돈으로 3만 원을 안 넘는 선에서 공무원과 기자의 만남을 허용하고 있다. 베이징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정 대사가 대사를 처음 해봐서 그런지 모르지만 150위안이면 배가 터질 정도로 충분하다. 소통하자는데 김영란법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듯하다.
 
정 대사는 대사와 특파원들 간에 브리핑 자리도 최근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 외에는 없다면서 특파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특권처럼 생각하지 말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브리핑을 일방적인 시혜의 자리로만 볼 문제도 아니다. 대사관에서 모르는 일이나 교민들의 아프고 가려운 부분은 특파원들이 더 잘 알 수도 있다. 기자들이 무슨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를 잘 관찰하면 대사관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
 
정 대사의 이날 브리핑은 냉소적이었고 비꼬는 투였고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 있는 전문 외교관들은 주재국 인사를 만나든 교민들을 만나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 대사가 얘기했던 주미 대사관의 조태용 대사가 일전에 워싱턴 특파원들과 가졌던 간담회의 발언 내용을 구해서 읽어봤으면 좋겠다. 조 대사의 발언엔 베테랑 외교관 출신 대사의 식견과 품격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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