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원전'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의 2030년 에너지믹스에서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이 9%p(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원전 비중을 높게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세계 여러 국가의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자문기구인 총괄분과위원회는 2030년 에너지믹스에서 원전 비중을 32.8%, 신재생 비중은 21.5%, 석탄 비중은 21.2%로 하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공개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 제공
탈원전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면서 원전 비중은 23.9%, 신재생은 30.2%, 석탄은 21.8%로 2030년 목표를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과 신규 원전의 건설 재개를 시작하면서 원전과 신재생의 비중이 뒤바뀌었다.
지난해 말부터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며 에너지 안보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신재생 목표치가 8.7%p나 줄어든 것을 두고 기후·에너지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세계 추세와 맞지 않는 '역주행'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성명을 통해 "세계 에너지대란으로 향후 4~5년간 혹독한 에너지 공급난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데 그 기간에 투입될 수 있는 전원은 태양광과 풍력밖에 없다"며 "10년 후에나 건설될 원전은 현재의 위기에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다. 수명연장도 2026년부터 에너지 공급에 기여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기후위기 대응과 기업의 수출 경쟁력까지 동시에 포기하려는 수준의 실망스러운 계획"이라며 "현재 RE100 캠페인에 참여한 한국 기업들마저 재생에너지 조달 비율이 2%에 불과한데 이는 미흡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에 있다. 정부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신한울 3·4호기 주단소재 보관장 찾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한편 미국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탈탄소 에너지 투자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며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부문에 3690억달러(약 490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1조달러(약 134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안 중 50% 이상을 풍력과 태양광, 전력망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세계적 추세와 반대로 가는 상황과 관련해 산업부는 국내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서 주민 수용성 문제나 실현 가능성을 감안해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스스로 신재생 비중 30.2%를 목표로 내놓았는데 1년 만에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뒤집는 꼴"이라며 "주민 수용성을 핑계로 내세워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는 이렇게 제로섬(zero-sum) 형식으로밖에 공존할 수 없는 걸까? 한정된 계통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전력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어느 한 쪽의 비중을 높이면 다른 쪽은 출력량을 조절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지만 중장기적 대책이라면 해결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결국 더 급격한 석탄화력, 천연가스 퇴출 대신 관련 업계의 반발을 사지 않을 안전한 방법으로 신재생 에너지 목표치를 줄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생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위주인 기존 화력발전 업계와 달리 재생에너지 업계는 결집이 쉽지 않다"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선 원전과 재생에너지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석탄·가스발전 비중이 더 크게 줄어야 하는데 엉뚱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