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이승만(왼쪽·52), 이정학(51). 대전경찰청 제공21년 전 발생한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의 피의자로 이승만(52)과 이정학(51) 등 2명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21년 전 현장에서 확보된 DNA에 피의자 한 명은 범행을 시인했고, 사건 당시 쓰인 권총이 이 사건 두 달 전 경찰관에게서 탈취한 것이라는 진술도 나왔다.
경찰, 피의자 2명 신상공개…불법게임장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
대전경찰청은 피의자 이승만, 이정학의 이름과 나이, 얼굴을 30일 공개했다.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된 신상공개위원회는 이날 비공개회의를 거쳐 "범행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공공의 이익이 인정돼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에 근거해 피의자들의 성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씨 등은 21년 전인 지난 2001년 대전 소재 국민은행 지하주차장에서 1명을 숨지게 하고 현금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지난 27일 구속됐다.
2001년 12월 21일 은행 지하주차장에서 총성과 함께 3억 원이 든 가방이 사라졌고 은행 현금출납 과장이 실탄에 맞아 숨졌다.
범행 현장 유류물에서 나온 DNA와, 피의자 중 한 명인 이정학의 불법게임장 출입이 검거의 단초가 됐다.
대전경찰청 백기동 형사과장은 이날 사건 브리핑에서 "유류물에서 검출된 유전자가 2015년 충북 소재 불법게임장 현장 유류물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동일하다는 감정 결과를 지난 2017년 10월 회신 받았다"며 "이에 게임장에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1만5천여 명에 대해 범행 연관성을 확인해나가는 수사를 진행한 끝에 올해 3월경 이정학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2001년경에도 유전자 검출을 시도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보강 수사 등을 거쳐 지난 25일 이정학을 검거했고, 이승만과 범행했다는 진술을 토대로 이승만을 긴급 체포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7553일 만이었다.
이 사건 두 달 전 순찰 중인 경찰관의 권총이 탈취당한 사건 역시 이들이 저지른 것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이 권총은 이후 은행 강도살인 사건에서 쓰인 권총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은행 강도살인 사건 두 달 전인 2001년 10월 15일 0시쯤 대전 대덕구의 한 골목길에서 도보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발견, 차량으로 강하게 충격하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경찰관의 권총을 탈취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권총은 두 달 뒤 강도살인 사건에 사용됐는데, 다만 이들은 은행 강도를 염두에 두고 권총을 훔친 것은 아니고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기동 형사과장은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으로서 피의자 이정학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하면서 죄를 뉘우치고 있고 구체적인 범행을 진술하고 있다"며 "다만 이승만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함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금융거래 내역 확인, 디지털포렌식,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 혐의를 보다 명백히 입증하기 위한 집중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사건 송치 이후에도 검찰과 긴밀히 협력해 원활한 공소유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강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1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발생 당시 현장 검증 모습. 연합뉴스21년 만에 드러나는 실체…남은 과제도
21년 만에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남은 과제들도 있다.
피의자 이정학은 일치되는 DNA 정보가 확인됐고 범행을 시인하고 있지만, 이정학이 공범으로 지목한 이승만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승만에 대한 직접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백 과장은 "여러 수사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피의자 이승만의 진술이 거짓으로 판단됨에 따라 현재 전문 프로파일러 투입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에 쓰인 권총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이정학은 경찰관에게 탈취했을 당시 이승만에게 권총을 건넸고 사건 당일 지하주차장에서 권총을 쏜 것도 이승만이며 이승만이 총기를 바다에 버렸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만이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범행을 시인한 이정학 역시 주도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은 이승만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경찰은 이 부분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인 공범의 여부, 이 사건 이후 있었던 유사 사건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지난 2003년 대전에서 두 차례 현금호송차량 탈취 사건이 있었는데, 수법에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 경찰은 주목하고 있다. 다만 두 피의자가 이 사건들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고 당시 CCTV도, 목격자도 없어 추가 사건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이듬해인 2002년 3명이 체포됐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바 있다. 이들과 이번에 붙잡힌 이씨 등과의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 환경이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등 열악한 환경이었고 당시 본인이 범행을 시인하는 듯한 진술이 있었다"며 "결론적으로 이 사건과 연관이 없는 것으로 파악이 되지만 좀 아쉬운 면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