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국정원 권력, 부분적으로 검찰로 갔다 사단" [한판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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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한판승부

■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김충식 가천대 교수 (<5공 남산의 부장들> 저자)

80년 봄에도 삼성은 전두환 집권계획 꿰뚫고 있었다
감시받지 않는 검경, 뭔가 꾸미고 싶은게 권력 생리
유령같은 권력의 횡포, 검경 민주적 통제로 제어해야
권력을 향한 정보기관의 충성, 영원히 되풀이할 건가

▶ 알립니다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박재홍>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 비사를 담은 책 남산의 부장들 많이 보셨죠? 이 책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김충식 가천대 교수가 최근 5공 남산의 부장들로 또 전두환 정권의 흑역사를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직접 말씀 듣기 위해서 스튜디오에 모셨어요.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김충식> 안녕하십니까?
 
◇ 박재홍> 진 작가님 그리고 김 소장님과 인사 나누시고요. 교수님 책 새로 출간하셔서 바쁘시겠습니다.
 
◆ 김충식> 여기저기 불려다닙니다.
 
◇ 박재홍> 인터뷰 굉장히 많이 하시던데요.
 
◆ 김충식> 많은 것은 아니고 세 군데 했는데.
 
◇ 박재홍> 많이 하신 거죠.
 
◆ 김충식> SNS에 많이 돌아다녀서.
 

◇ 박재홍> 그렇군요. 남산의 부장들,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이었습니다. 그때 50만 부 넘게 팔렸죠?
 
◆ 김충식> 당시에 52만 부가 즉시 나가서 8톤 트럭으로 실어날랐던 판매국팀들이 굉장히 감격해 했습니다.
 
◆ 진중권> 글쟁이들의 로망입니다.
 
◇ 박재홍> 52만 부.
 
◆ 진중권> 트럭으로 실어나르는.
 
◆ 김성회> 8톤 트럭으로 현금이 들어왔다는 줄 알고.
 
◆ 김충식> 그것도 두 대씩 하룻밤에.
 
◇ 박재홍> 자랑스러우시겠어요. 남산의 부장들 8톤 트럭으로 책 팔린 것뿐만 아니라 영화화됐지 않습니까?
 
◆ 김충식> 그건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로 성공해서 2015년에 박근혜 정부 때 찾아왔어요. 그런데 자기가 96년도에 중앙대 연극영화과 감독지망생으로 복학했을 때 이 책을 보면서 손을 부르르 떨었대요. 그래서 이건 내가 어느 날인가 감독이 돼서 성공하면 반드시 말론 브란도가 주연하는 대부처럼 한번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가 그 뒤로 몇 작품에서 실패하고 내부자들로 힘을 잡아서 내 돈으로 최초로 원작으로 계약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랬다가 개봉은 2020년이었죠?
 
◆ 진중권> 영화 보셨죠. 어떻습니까? 그 책의 내용하고 영화 이렇게 반영된 거하고.
 
◇ 박재홍> 싱크로율이라고 할까요? 작가 의도를 잘 반영했다?
 
◆ 김충식> 다큐 세계하고 영화 예술의 세계는 차이가 많아요.
 
◇ 박재홍> 실망하셨군요.
 
◆ 김충식> 영화는 극적으로 미화도 하고 과장도 하고 축약도 있고 해서 심지어 김형욱하고 김재규가 친구처럼 나오는데 사실 그건 고증적으로는 굉장히 비약이거든요. 그런 것을 했고 심지어 김재규가 박정희와의 대화를 도청하기 위해서 빗속의 담을 넘어서.
 
◇ 박재홍> 이병헌 씨가 연기했던 부분.
 
◆ 김충식> 그런 장면이 있어서 그건 내가 이의를 제기했죠. 그건 정보부장이 그럴 수 있는가. 비서를 시켜서 하고 멀리서 원격으로 듣는 게 맞지 않는가 했더니 아닙니다. 그건 영화의 세계를 모르는 얘기입니다.
 
◇ 박재홍> 두 분 사이도 많이 갈등이 있으셨네요, 보니까.
 
◆ 김충식> 주군의 변심에 장이 뒤집힌 사람으로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이런 걸 그려야 영화다.
 
◆ 진중권> 영화적 개연성은 있다 이런 거죠.
 
◆ 김충식> 그래서 조갑제닷컴에서 조갑제 대기자께서 이 영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김충식이다. 그 위대한 다큐를 이렇게 타락시킬 수 있는가.
 
◇ 박재홍> 그랬군요. 남산의 부장들 2019년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찾아보니까. 그래도 또 영화가 됐기 때문에.
 
◆ 진중권> 그런데 거기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임자, 임자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것이 진짜예요?
 
◆ 김충식> 그건 팩트입니다. JP한테도 그렇게 불렀고.
 
◇ 박재홍> 오늘 남산의 부장들 말고 5공 남산의 부장들로 책 얘기를 해 볼 텐데 5공 남산의 부장들 두 권입니다. 권력 그 치명적 유혹이 1권. 그리고 권력과 함께 춤을, 2권이 이렇게 돼 있는데. 이번 작품도 그냥 굉장히 숨가쁘게 넘어가더군요. 그래서 교수님, 뭐랄까요. 역시 또 영화화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기고 있습니다.
 
◆ 김충식> 아직은 계약서를 쓰지 않았는데 그 계약서에 영화 되는 것을 말하지 않기로 그렇게 쓰더라고요. 그 이유가 영화사가 마음 먹고 크게 기획을 하면 김 빼기 위해서 싸구려 영화를 또 만드는 수가 있대요. 그렇게 돼 있어요. 어쨌든 지금은 아직 미정입니다.

저자: 김충식 / 출판사: 블루엘리펀트저자: 김충식 / 출판사: 블루엘리펀트
◇ 박재홍> 그렇군요. 어쨌든 5공 남산의 부장들 다시 집필하시게 된 계기랄까요.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되셨습니까?
 
◆ 김충식> 우선 30년 된 책이 시중에 여전히 생명을 가지고 있고 또 영화도 되고 해서 말하자면 쫓겼죠, 후배들한테. 쓸 사람도 없는데 메모지를 뒀다가 주면 되는가. 그래서 고민 끝에 3년 전에 정규 강의도 끝나고 해서 그러면 좀 해 보자 해서 옛날 메모지를 다시 들추고 또 그사이에 회고록 같은 기록들이 많이 나오고 위컴 심지어는 전두환, 노태우도 회고록을 다 썼으니까. 그래서 이것저것 비교해 가면서 제 메모를 마무리를 했는데 그렇게 된 연유는 예를 들면 박준병 장군을 만났다고 하면 그분이 얘기하는 스펙트럼이 50년대 육사 때부터 민자당 사무총장할 때까지 왔다갔다 하거든요. 그런데 박정희 시대의 3, 4공 얘기는 거의 쓴 게 없어요. 그러니까 박준병 인터뷰의 한 80%는 사장돼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걸 좀 살림 겸 해서 이번에 정리를 했습니다.
 
◆ 진중권> 대부분의 자료가 그러면 당시 살아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
 
◆ 김충식> 정치부 기자를 10여 년 하면서 운 좋게도 많이 얘기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박재홍> 동아일보 기자를 하셨죠, 교수님께서.
 
◆ 김충식> 네, 30년 했습니다.
 
◇ 박재홍> 기자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또 취재원을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엄청난 자료를 모으신 건데. 이번 5공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 정보기관 역할이 굉장히 큰 걸로 나옵니다.
 
◆ 김충식> 그렇게 전두환 정권은 체육관 선거로 시작을 했고 전 국민의 투표로 인한 선거를 굉장히 두려워했기 때문에 결국은 정보부라든가 보안사라든가 안전기획부 같은 정보기관을 통해서 통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었죠. 그래서 남산 부장을 본인이 직접 했고 또 5명의 부장을 통해서 국회를 지배하고 정당을 지배하고 그러려다가 나중에 정치가 뜻대로 안 되니까 용팔이 정치 깡패까지 국고로 지원해 가면서 신당을 김영삼, 김대중의 당을 방해하려고 하는 것도 했었고 말이죠. 기본적으로 남산 그러니까 국가안전기획부를 배제하고 5공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가짜의 역사를 말하게 되는 거죠.
 
◆ 김성회> 그런데 기자로 계시던 당시에 정보국, 안전기획부라고 부르든 보안사라 부르든 이런 문제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셨던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 김충식> 그 기자가 여러 형태가 있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약간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폐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취재 대상에 대해서?
 
◆ 김충식> 그렇습니다. 경찰 기자로 다니면서 막 어울려 다니고.
 
◇ 박재홍> 관계를 쌓고.
 
◆ 김충식> 하는 것은 좀 한심스럽게 생각을 했어요.
 
◇ 박재홍> 한심하게 보셨구나.
 
◆ 김충식> 도대체 저 사태가 왜 저렇게 벌어지는가. 말하자면 장군 몇 명이 참모총장을 잡아넣고 정치를 하는데 세상은 버젓하게 돌아간다. 그러면 그 메커니즘이 도대체 뭔가 하는 것을 8년 내내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저렇게 민심하고 유리된 저렇게 욕을 먹는 저렇게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굴러가요. 그게 어떻게 해서 굴러가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또 그런 관점이 있어서 자꾸 유학성 장군, 박준병 장군 이런 사람들한테 전두환에 대해서 묻기도 하고 노태우에 대해서 묻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이제 전체적으로 이런 데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 김성회> 기자 초임 시절이었죠. 전두환 정권 때가?
 
◆ 김충식> 그렇습니다. 78년에 입사를 했고 그렇습니다.
 
◆ 김성회> 초년병 시절에도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고 어쨌든 동아일보라는 직함을 달고 여러분들을 만나서 메모를 남겨놓았던 것이 이제.
 
◆ 김충식>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지금 다른 기자들은 잊었는지 모르지만 동아일보에 입사를 해 보니까, 78년 3월에 권오기 편집국장옆자리에 나가 앉아 있어요, 다리를 꼬꼬. 저 사람이 누구냐 했더니 정보부 파견관이래요.
 
◆ 김성회> 파견관이 옆에 앉아 있었어요? 사무실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요.
 
◆ 김충식> 소위 인스펙터예요. 인스펙터처럼 앉아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보세요.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냐 하면 우리는 조정관이라고 들었어요, 안기부 조정관. 대체로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이종찬 씨 회귀록이나 이기동이라고 수사관 회고록을 보면 조종관이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코퍼레이터가 아니고 매니플레이터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당시의 정치, 경제.
 
◇ 박재홍> 매니플레이터면 컨트롤이죠.
 
◆ 김충식> 컨트롤타워라고 보면 돼요. 그런 자부심이라든지 그렇게 세상을 움직였다고 하는 세상이니까요.
 
◆ 김성회> 그럼 그 당시에는 정보국이 이 나라는 우리가 움직인다라는 자긍심으로 일을 했겠네요.
 
◆ 김충식> 그래서 92년에 최초의 남산의 부장들을 쓰게 될 때도 박정희 18년이 끝났는데 지금 1990년이 되는데 아무도 그 18년의 정보부 역할을 아무도 안 쓴다. 이건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 아닌가. 제가 편집국에 늘 주장을 했어요. 이건 누군가는 써야 된다. 그리고 못 쓰면 6월 10일날 중앙정보부 창설기념일을 기념해서라도 피처를 몇 번이라도 써서 그 역할이 뭐였는지는 한번 조감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대한민국 언론이 수많은 제제다사(濟濟多士)들이 있는데 그걸 눈 감고 가면 안 된다고 해서 몇 번의 기획주장을 했는데 창간 특집도 안 되고 신년특집도 안 되고 하다가 김중배 편집국장이 오더니 그거 한번 하자 이렇게 돼서.
 
◆ 진중권> 이게 보면 러시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푸틴이 원래 KGB 출신이고 지금도 움직이는 게 FSB라고 정보기관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이게 모든 독재기관들은 역시 정보기관이 사실상의 내각 역할을 하고 그랬던.
 
◆ 김충식>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형태상으로는 삼권분립처럼 헌법은 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부분 검찰, 언론, 정치, 행정 전체를 다 손바닥에 놓고 있었으니까요.
 
◇ 박재홍> 5공의 남산부장들 교수님 책을 보면 이제 전두환으로 시작합니다. 그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을 겸했던 데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 김충식> 본인이 겸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정권을 만들려면 당을 만들어야 되는데 창당 자금이 필요해요. 또 보안사 밑에 스터디를 시켜보니까 한 200억 원이 드는 거예요. 그걸 손을 벌리고 다니면 시끄럽고 노출되고 하니까 비밀리에 만들고 싶은데 정당을. 그래서 누가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정보부 김재규가 죽은 뒤로 요즘 같은 특활비 연장선상에서 120억이 남아 있다. 그걸 갖다 쓴 거예요. 20억은 보안사, 100억은 국보위 창설자금이라고 해서 실질적으로 그게 정권 기틀이 되는 거니까요. 첫째는 예산 쓰기 위해서 갔고 두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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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 그당시에 100억이면?
 
◆ 김충식> 엄청난 겁니다.
 
◆ 진중권> 지금으로는 1000억, 2000억이 넘죠.
 
◆ 김충식> 뭐 물가 비례하면 그 정도 되지 않겠습니까?
 
◆ 진중권> 담뱃값이 300원이었으니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
 
◇ 박재홍> 갑자기 담배 얘기를 하셨어.
 
◆ 김충식> 첫째는 그게 필요했고 두 번째는 정치판을 쓸어야 되는데 정치판을 쓸어내고 수사를 하려면 보안사 가지고는 좀 어려운 거예요.
 
◇ 박재홍> 보안사는 군대 안의 조직이고.
 
◆ 김충식> 정치인을 다루는 멤버가 정보부에 있는 거예요. 지하실도 정보부에 있고. 대규모로 정치수사를 할 수 있는. 그래서 정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수사관들을 포섭하는 측면에서 가야 했고 세 번째는 세상은 다 자기 밑에 복속해 있는데 국무회의를 못 들어가는 거예요, 장군이니까 그리고 보안사령관이니까. 중장까지 억지로 달았어요. 12.12 한 뒤에 3월달에.
 
◇ 박재홍> 쿠데타 한 다음에.
 
◆ 김충식> 안 달아주겠다고 하는 걸 본인이 자체적으로 하면서 운동해서 최규하 대통령 압박해서 달았어요. 그런데도 국무회의 못 들어가요. 원래 군인은 약간 폼도 잡아야 되고 하는데 이게 실세인데 국무회의 못 들어가니까 들어가려면 정보부장은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정보부장은 법적으로 겸임이 안 돼요, 현역 군인이. 그러니까 서리라는 딱지를 붙여서 비틀어서 자기가 들어간 거죠.
 
◇ 박재홍> 그래서 그 가운데 전두환을 띄운 K공작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띄웠어요?
 
◆ 김충식> 그건 인자한 서민, 라면도 많이 잡수면서 전투부대 다니시는 분 이렇게 뭐라고 할까. 새 시대의 리더는 죽은 박정희처럼 이렇게 뭐라고 할까. 하늘 위에 떠 있는 성층권의 사람이 아니고 우리하고 이웃에 있는 앞전에 이런 황강에서 태어난 배고픈 소년이 이렇게 씩씩한 군인이 되어서 이 나라를 다스릴 만한 자격이 되신다 하는 취지의 K공작입니다.
 
◆ 진중권> 역시 그때 어디부터 황강까지 이런 책도 냈던 것 같기도 하고, 책을.
 
◆ 김충식> 황강에서 북악까지.
 
◇ 박재홍> 우리 진중권 작가 보셨구나.
 
◆ 김충식> 그 상당 부분이 너무 과노출이라고 할까. 그래서 정권 차원에서 폐기했습니다.
 
◇ 박재홍> 그런데 당시 놀랍게도 신군부의 계획을 삼성이 꿰뚫고 있었다 이런 내용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삼성은?
 
◆ 김충식> 삼성은 예나 지금이나 예를 들면 LG에 한 2년 전에, 3년 전에 최순실 사건으로 삼성이 말 가지고 시끄러워졌을 때 LG의 대관 담당 이사가 그렇게 얘기해요. 역시 삼성이 우리보다는 월등히 격이 다르다. 우리는 최순실의 존재 자체를 몰랐는데 삼성은 최순실의 약점이 말에 있고 정유라에 있는 걸 알아서 이미 다 주물러서 1년 6개월 뒤에 세상에 밝혀진 뒤에 아니까 LG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얘기를 농담처럼 했는데 과거에 미국 대사관의 정보 다루는 분하고 이렇게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분이 그랬어요. 호암 선생은 평소에 아랫사람들한테 남의 그림자도 돈이다라고 가르쳤다고 해요.
 
◇ 박재홍> 남의 그림자도 돈이다.
 
◆ 김충식> 그림자가 약점일지 뭘지는 모르겠으되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수집하는 것을 비서실을 통해서 많이 했었다.
 
◇ 박재홍> 호암 이병철.
 
◆ 김충식> 그렇게 하는데 예를 들면 떡값검사 때도 나오지만 정보 콘텐츠가 밖에 노출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 한 없이 많이 노출이 됩니다. 그러니까 검사든 정보기관 요원이든, 삼성의 고등학교 친구 그리고 대학 친구, 친인척들한테 보도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많이 노출을 해요. 자랑 삼아서 자기의 역할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게 되는 수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이아무개 당시에 중역인 박관용 의원하고 그분하고 친구인데 아마 그분이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 박재홍> 관련해서 얘기를 들었다는 내용을 책에.
 
◆ 김충식> 맞습니다.
 
◆ 김성회> 예전에 보면, 지금도 그러는데 과장 때부터 서기관하고 친하게 만들어서 그 인연을 30년 동안 이어가게 만들어놓는 구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짜더라고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러면 10.26에서 5.17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말이죠. 어떤 좀 그 당시에 최규하 전 대통령의 행보라든지 미국의 역할이라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 김충식> 한판승부를 한 10번쯤 해도 해결이 안 되는 시간상의 제약이 있고요. 밖에 PD님이 자꾸 시계를 보시는 것 같은데 지금 딱 이거 한 가지가 우리가 핵심적으로 좀 주목할 만해요. 80년 2월 9일날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전두환 소장 보안사령관의 윗사람입니다, 명령계통상. 이분이 기자들 앞에서 공언을 이렇게 합니다. 물론 계엄하니까 비보도라는 것을 전제로 했던 얘기인데 메모를 보면 지금 기자가 물었어요. 신당을 만들어서 정권을 잡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이렇게 물어요. 그러니까 이희성 대장이 답변하기를 지금 군인이 내가 정권을 잡으면 미래에 역적 소리를 듣는다. 만일에 내가 정권을 잡아도 당장은 용납이 될지도 모른다. 왜? 물리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후세에 내 자손이 반드시 역적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건 무슨 얘기냐면 80년 2월이면 12. 12로부터 불과 3, 4개월 후에 상황에서 또 이희성 씨가 논리가 있어요. 지금은 5. 16 당시의 나라가 아니다, 정치도 두터워졌고 경제가 볼륨이 커졌고 행정도 전문가가 컸고 모든 분야가 두터워졌는데 지금 군인이 나와서 정권을 잡는 것은 역사에 역류한다는 취지의 얘기였어요. 지금 돌이켜 보세요. 그 말이 딱 맞지 않습니까? 그게 기본적인 컨센서스이고 사회적, 정치적 합의사항이고 그것을 전두환을 거느리고 있는 육군 대장이 주어를 나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두환 일당한테 들으라는 얘기예요. 자기도 핫바지처럼 얹혀 있었지만 그걸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하니까 우회적으로 신문을 통해서 미디어 기자들 앞에서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경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5. 17로 간 거란 말이에요. 그 결과가 5공이고 지금 뭐라고 할까 작고했지만 아직도 묘소가 어딘지를 모르는 그런 상황이 오는 원점은 이희성 대장이 80년 2월 6일날 예언한 측면이 있다.
 
◇ 박재홍> 당시 신현확 총리 제안대로 대통령 동반 사퇴가 이루어졌으면 혹시 달라졌을까요?
 
◆ 김충식> 그것은 또 한판의 바둑인데요. 뭔가 임팩트가 있었겠죠. 왜냐하면 신군부가 어쨌건 가두에서 아주 욕을 많이 먹고 있었고 아무개 물러가라, 화형식하라 이런 엄청난 얘기들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통령하고 총리가 동반 사퇴를 한다면 이건 거의 변란에 가까운 수준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신군부가 아무리 똘똘 뭉쳐서 뭘 한다고 하더라도 신현확의 구상은 그거예요. 그렇게 해서 대형자살극을 벌이면 투신 자살극을 벌이면 세상은 바뀐다. 저놈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 역사에 한번 발악을 했다,  흔적이라도 남기든지 승산도 있다. 신현확 씨는 그렇게 봤던 것 같아요. 그분 굉장히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 진중권> 그런데 제가 기억이 나거든요. 왜냐하면 그당시 제가 중간고사 끝난 다음에 영화를 보고 그다음 날 수학여행이었는데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게 두 이름을 들었는데 신현확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 그 당시에는 신현확도 같은 편이라고.
 
◆ 김충식> 그게 오해입니다. 그러니까 인생과 역사에서 오해가 반이 넘는다는 것은 그런 얘기일 수도 있는데 윤석열 당시 법대생이 모의재판에서도 반대로 거꾸로 재판을 했잖아요. 신현확 사형, 전두환 무기. 그것이 오판인데 그러한 정보의 오류들이 세상을 많이 지배하는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교수님도 고초를 겪으셨어요. 안기부에 어떻게 끌려가게 되셨던 겁니까? 기사 때문이었습니까?
 
◆ 김충식> 구구한 상황은 그렇고 86년도에 이름 석자가 올랐는데 정말 오른 게 아니고 당시 편집국장하던 이채주 국장 그리고 정치부장하는 이상하 부장, 제 이름 그렇게 셋이 올라와 있는데 하여튼 3박 4일 동안 전기고문을 제외한 각종 사전에 나오는 형태의 가혹행위는 다 당했죠. 그런데 그 경위는 2.12 총선 때 동아일보가 협조를 안 해서 상당히 정치부가 좀 주목을 받았어요, 동아일보 정치국장하고.
 
◇ 박재홍> 협조를 하지 않았다는 건 정부 편향적으로 쓰지 않았다?
 
◆ 김충식> 85년 2월 12일에 총선이 김대중은 2월 8일 귀국하고 또 김영삼이 그동안 단식하고 이렇게 투쟁하면서 쌓아올린 에너지를 이렇게 민한당 야당 체제를 분쇄하는 힘으로 썼던 선거인데 그때 신민당이라고 하는 양김의 힘을 얻는 신당이 약진을 했단 말이에요. 그건 전두환과 남산이 기획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에 약간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게 동아일보입니다. 그러니까 지면을 동원해서 하여튼 남산이 잡아가지 않을 정도로 지면을 늘렸어요. 계속 지면을 늘렸어요. 2페이지, 3페이지, 4페이지 해서 각 선거구에서 나오는 얘기를 여당이든 야당이든 계속 늘려가니까 말이라는 게 봇물처럼 터질 거 아니에요. 거의 5년 동안 막혀 있던 말들이 해서 심지어 청와대 아무개 무슨 여사 욕이 나오고 하는 얘기들이 막 XX하고 막 나온단 말이에요. 그런 게 이렇게 돼서 동아일보가 굉장히 뭐라고 할까. 경계의 대상이 됐는데 거기에 건수를 잡은 거죠.
 
어떻게 건수를 잡느냐. 85년 8월 24일날 중국에서 폭격기 한 대가 망명을 해요. 대만을 가려고 했는데 기름이 부족하니까 한국에 떨어지면 대만으로 보내줄 것이다 해서 떨어졌는데 뒤에 두 항법사하고 부조종사는 타고 오다가 하나는 떨어져 죽고 하나는 부상당해서 살았는데 법적으로는 국제법적으로는 재난 상륙자예요, 뒷사람은. 앞의 사람은 망명자고. 그런데 이 사람들 신병 처리는 유명한 소련의 벨렌코 중위가 60년대인가 일본에 망명한 이후로 국제법 관례상으로 거의 정해져 있어요. 망명을 희망하는 사람은 인도주의에 따라서 망명 희망지에. 그리고 재난 상륙자는 본국에 이렇게 돼 있단 말이에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요. 그런데 그걸 언제 발표하느냐가 관심사였는데 마침 내가 또 출입처가 외무부였는데 왔다갔다 하니까 담당 과장이 뛰어다니더라고요. 그거 하는 겁니까 하니까 장 과장이 고개만 끄떡끄떡하고 도망가요. 그거 맞지 그랬더니 그걸 한다고. 그래서 내가 그걸 보도했는데 그것을 안기부 말은 중공 관계는 포괄적으로 엠바고다 이런 얘기를 했지만 엠바고를 외무부 기자실에 건 일도 없고 최근에도 내가 김응수 대변인한테 물었어요, 엠바고 관련된 거. 엠바고 무슨 소리야. 2.12 총선에 대한 보복이지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중공 관계 기사를 정부가 발표하기 한두 시간 전에 썼다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 박재홍> 엠바고 깼다 해서 고문당하신 거군요.
 
◆ 김충식> 엠바고를 깼으면 기자를 때리거나 해야지 편집부장하고 정치부장을 왜 데려다.
 
◇ 박재홍> 건수를 잡아서.
 
◆ 김충식> 그런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 박재홍> 굉장히 힘든 시기를 거치시고.
 
◆ 김충식> 그것 때문에 정권도 많이 힘들었죠. 나중에 나는 그래도 신문 기자하고 편집국장들이 그렇게 된 것이 외신에도 나오고 또 국제인권단체에서 이렇게 한마디씩 하고 하니까 국회가 빌미가 생겨서 국회도 덩달아서 하고. 하여튼 김아무개 이름이 수백 번 의사록에 남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또 이번 책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도 실어주셨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얘기가 있습니다. 1986년에 미국 독립기념일 리셉션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초청된 일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서 외교부 장관을 날렸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김충식> 그게 제가 바로 그런 측면에서 기자는 현장에서 흥분하는 기자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약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저걸 좀 노려보는 기자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게.
 
◇ 박재홍> 비하인드 스토리.
 
◆ 김충식> 이원경 장관이라는 사람이 품격도 있고 굉장히 훌륭하게 열심히 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날리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 한 달 전에 7월 4일날 김대중의 정동 미국대사관 이벤트 참석을 못 막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미주 국장하고 북미 과장 이렇게 보니까 뺐더란 말이에요. 보니까 외무국장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그게 5공 체제라는 게 얼마나 엄혹한 거예요? 그런데 쓸 수는 없어요. 내가 언젠가는 논설위원이 돼서 칼럼으로라도 이거 한번 써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했다가 이번에 그 메모를 다시 찾아서 썼는데. 그만큼 5공이라는 게 보세요. 김대중은 사실상 정치적인 크리미널일 수는 있지만. 무슨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놓고 가택에 연금시켜놓고 그 사람을 미국 정부가 불렀는데. 외교부 공무원들이 부탁을 했겠지, 안 불렀으면 좋겠다. 했지만 미국 국무부의 지침으로 불러라 해서 한국의 야당 지지하는 사람들한테 미국의 인심도 얻어야 된다 이렇게 했을 거 아니에요? 그걸 가지고 외교부 장관 목을 치고 또 북미 국장 목을 쳐서 이렇게 좌천시킨다는 게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겠어요?
 
◇ 박재홍> 그리고 책에 보면 1980년 11월에 비상계엄계획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 김충식> 그건 박철언 장관 회고록에도 아주 상세히 나오는데 그건 뭐 플랜A 그리고 플랜B로 미국 선거가 여의치 않으면 그러니까 보수정권을 지배하는 전두환 서포터즈가 되지 않는다면 실행하기 어렵다는 전제하에 플랜A로 가지고 있었던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있지 않습니까? 이 얘기로 많은 분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용기가 있었죠, 당시. 그런데 그당시 안기부 또 경찰이나 검찰에 대한 반감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김충식> 맞습니다. 경찰이 대통령의 친형인 전기환 씨가 용산경찰서에서 경감으로인가 근무를 한 그 백을 업고서 검찰 위에 사실상 군림하는 정도의 힘을 썼죠. 그래서 그 전 해에 권인숙 양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말하자면 본말을 뒤집었어요. 성고문의 성자도 쓰면 안 된다. 그리고 문기동은 풀어주고 권인숙은 기소하고 하는 그런 엉뚱한 일을 한 것이 경찰이었는데 그 배후의 꼭대기에 전기환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반감이 검찰 전체에 팽배해 있었죠. 우리가 고시도 하고 항상 지휘권으로 휘두르는데 순사들한테 이렇게 맨날 휘둘리고 이렇게 하는 게 되겠는가 하는 반감이 쌓여져 있던 판에 경찰 치안본부 특수대에서 사고가 나니까 이놈들 봐라. 맛 좀 봐라 하는 형태로 누출한 그런 측면도 부분적으로 있습니다. 심정적으로 억하심정 자극한 거죠.
 
◇ 박재홍> 5공의 남산의 부장들 얘기하고 있는데 거의 마무리할 시간이 됐는데 지금 이제 중앙정보부가 안기부. 현재는 국정원이죠. 내사기능이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과거에 비해서 우리 국민들이 안심하고 그런 권력기관의 그런 일탈이랄까요. 그런 문제.
 
◆ 김충식> 그런데 그 내사를 하고 싶어 하는 권력의 생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국정원, 안기부가 빼앗긴 권력이 부분적으로 검찰에 가 있다가 사단이 난 거예요, 10여 년 전부터. 그것이 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에 검찰을 이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하는 취지로 나오는 것들이 다 그런 뿌리라고 봅니다.
 
◇ 박재홍> 범죄정보분석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 김충식> 아닙니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권력이 있을 때는 굴종하고 그리고 집권 말기가 되면 반드시 물어뜯을 거리를 잡고 그러다가 미래 권력을 향해서 충성을 바치고 그리고 그 미래 권력과 동승하다가 말기가 되면 또 털고. 이걸 영원히 되풀이시킬 것인가 하는 취지의 생각들을 얘기를 해 왔어요.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하여튼 검수완박까지 이르렀는데 심지어 검찰권력이 또 경찰로 간다고 하더라도 감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뭔가를 꾸미고 싶다고 하는 권력의 생리가 있단 말이에요. 그걸 객관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하고 시스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된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중앙정보부도 그게 안 돼 있었고, 법적으로 관행적으로. 안기부도 안 돼 있었고 국정원도 덜 돼 있다가 서훈, 박지원에 이르러서 국정원은 완전히 정리가 된 것 같은데 그 유령 같은 권력의 횡포의 근거가 되는 실체가 떠돌고 있어요, 하늘에. 이게 지금 검찰에 옮겨 붙었다가 경찰에 갈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걸 민주적으로 제도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감시하고 보세요. 정치 깡패를 동원할 때 그것이 역사적으로 김충식이 언젠가 쓴다고 생각했으면 쓰겠냐고요. 수지김 간첩으로 그렇게 하는 게 진중권 교수가 언젠간 그걸 캐낸다고 하면 그걸 했겠냐고요. 영원히 덮일 것이다라는 생각 하에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오늘 5공 남산의 부장들 새 책을 출간하신 것 역시 어떠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에 대한 경고를 담은 메시지다라고 저희가 소화하면 될 것 같습니다.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가천대학교 김충식 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 김충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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