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못 만들면 '자동 탈원전'…윤 정부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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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놓은 110개 국정과제에는 '과학적 탄소중립'이 강조돼 있다. 원자력발전을 보강한 에너지믹스, 온실가스 감축방안 현실화, 고부가가치 재활용 확대 등 에너지·환경 정책을 제시하면서다. CBS노컷뉴스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5년간 윤석열 정부가 펼칠 정책의 근간을 살펴본다.

[윤 정부의 과학적 탄소중립②]
2031년부터 고리·한빛·한울 '포화'…운전정지 위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40년간 결론 못내
尹 '친원전' 정책서도 아직 뒷전
원전 소재지역에 중간저장 합의 가능할지 관건

▶ 글 싣는 순서
①'8년 안에' 10기 수출…尹정부 '원전 강국' 실현 가능성은
②방폐장 못 만들면 '자동 탈원전'…윤 정부 해법은?
(계속)


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경북 울진군 북면 한울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건 윤석열 정부의 선결 과제는 원전 수출도, 소형모듈원전(SMR) 개발도 아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하 방폐물) 처리다. 원전 사업의 지속가능성은 원자력 발전 연료로 쓰이고 배출된 방폐물을 처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시작된 방폐물 처리시설 설치 논의는 40년 가까이 답보 상태다. 과거엔 그나마 여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당장 추가 저장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해도 2031년부터 가동을 하지 못하는 원전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 최강국'을 내건 이번 정부에서 마저 방폐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불가피하게 '탈원전'의 길을 걷게 된다.
   

10년 내 국내 원전 50% 가동중단 위기


사용후핵연료 처리 예시. 현재 월성 원전을 제외한 국내 원전은 모두 습식 방식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 중이다. 수조 용량이 가득 찬 월성원전의 경우 5년 정도 습식저장으로 냉각한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저장소(사일로, 맥스터)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국내에 영구처분시설은 아직 없다.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캡처사용후핵연료 처리 예시. 현재 월성 원전을 제외한 국내 원전은 모두 습식 방식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 중이다. 수조 용량이 가득 찬 월성원전의 경우 5년 정도 습식저장으로 냉각한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저장소(사일로, 맥스터)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국내에 영구처분시설은 아직 없다.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캡처
방사성을 내는 폐기물 중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거쳐 전기를 만들고 나온 것을 사용후핵연료라고 부른다. 방폐물은 방사능 농도에 따라 고·중·저준위로 나뉘는데, 핵발전소에서 사용된 장갑, 작업복, 필터, 교체부품 등이 대표적인 중·저준위 방폐물이다.
   
폐연료봉 같은 고준위 방폐물, 사용후핵연료는 1미터 앞에 있는 사람을 17초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한 방사능과 열기를 내뿜는다. 현재는 따로 처리할 방법이 없어 원자력 발전소 안에 수영장 같은 큰 수조를 만들어 붕소를 함유한 물과 함께 저장한다. 이미 그 수조가 가득 찬 월성 원전만 콘크리트와 금속으로 만든 건식 저장시설이 추가로 설치돼 운영 중이다.
   
월성원전 외에 고리·한빛·한울 원전본부도 수조가 가득 찰 날이 머지않았다. 고리 본부 내 6개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총 저장률(포화율)은 85.4%, 한빛 본부 내 6개 원전의 저장률은 74.2%다. 고리·한빛 본부는 2031년에 포화를 앞두고 있고 저장률 90.7%인 한울원전도 2032년에 포화가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2년간의 코로나19 상황으로 다소 감소했던 원전 가동률이 올라가게 되면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도 몇 년 앞당겨 질 수 있다. 이처럼 극도로 위험한 쓰레기를 처리할 곳을 못 만들면 어쩔 수 없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지난해 원자력 전체 발전량(1억5801만MWh)에서 고리·한빛·한울 원전의 발전량(1억894만MWh)이 차지하는 비중은 68%에 달한다. 곧 운전을 시작할 예정인 신한울 1·2호기가 100% 가동률로 돌아간다고 해도 10년 후엔 전체 발전량 중 50%가 사라지게 된다.
   
원전이 화력발전보다 앞서는 주전력이 되긴 커녕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보다도 존재감이 적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탈원전'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고준위 방폐물 처리, 36년째 제자리걸음 왜?


사용후핵연료가 묻힌 땅이 어떻게 변할지, 직·간접적으로 인간과 동·식물에 어떤 영향을 줄지 완벽히 알 수는 없다. 사용후핵연료의 반감기(방사능 양이 처음의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는 최장 10만년에 달하기 때문이다.
   
땅 위 수조나 콘크리트 벽 안에 임시저장(중간저장) 하는 것과 지하 500~1천미터 심지층에 영구처분하는 것에 대한 부담 차이도 크다. 안전한 줄 알고 저장해뒀던 땅이 지진이나 이상기후로 영향을 받을 위험도 늘 제기된다.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40년 가까이 숙제를 미뤄온 상황이다. 때로는 문제풀이 방향이 잘못된 것은 물론이고 의지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방폐물 처리에 대한 첫 논의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1978년 가동된 후 정부는 1983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대책위원회를 설립하며 방폐물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1987년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가 부지환경 현황조사를 통해 경북 울진과 영덕, 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부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주민동의 없이 부지조사를 하던 중 국회에서 방폐물 처분장(방폐장) 건설 계획이 알려지며 지역의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무산됐다.
   
1990년대 들어서도 지역 주민과의 협의·숙의가 선행되지 않은 일방적인 방폐장 건설 추진 시도와 무산이 반복되면서 방폐물에 대한 거부감과 막연한 두려움은 더 커져갔다. 1990년에도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비밀리에 고준위 방폐물 중간저장시설 설치를 추진하면서 명칭만 '원자력 제2연구소'로 바꾸는 꼼수를 부렸다가 격렬한 주민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태안군 내 학생 수천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를 하는가 하면 주민들이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읍사무소를 점거하는 일도 발생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국가가 일방 지정이 아닌 지자체가 직접 유치신청을 하는 방식이 자리잡았다. 2004년에는 전북 부안에서 최초의 주민투표가 실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과정 속에서도 지자체장과 지역의회, 지역 내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간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결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은 중·저준위 방폐장부터 만들기로 했다. 부지적합성 조사와 후보 부지에서의 주민투표 결과를 토대로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고준위 방폐물 처리만 남은 만큼, 2010년대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한 층 발전된 공론화 과정이 전개됐다. 그러나 '영구처분'이 아닌 '중간저장' 부지를 찾는 것으로 논의의 전제 자체가 축소되는 경향을 보여 정부가 여전히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컸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단순 투표 방식이 아니라 숙의적 토론을 위한 정부-시민 참여 위원회 토의가 전개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위원회 모두 독립성, 중립성 문제가 제기되며 시민위원들이 사퇴하는 등 결국은 '반쪽 공론화'에 그쳤다.
   

'친원전' 정책서 빠진 사용후핵연료 문제…과학적 해법은?


윤석열 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다. 이전 공론화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주무부처 문제 △방폐물 관리시설의 정의와 유형 △부지 선정 절차 △선정 부지와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 체계 등을 우선 법에 못 박자는 것이다.
   
대전제 자체가 통일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한 공론화는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단계 나아간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과제에서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전담하는 방폐물 처리 문제를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을 만들어 다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법 통과도 서두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외에 고준위 방폐물 처리와 관련해 내놓은 특별한 방안이나 구체적인 공론화 방식·시기 등은 없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언급한 파이로프로세싱 등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인데다, 실제 경제성과 안전성을 확보해 상용화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원자력 업계에선 하루 속히 특별법부터 제정하고 부지선정을 위한 합의에 나서자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서는 법안 통과부터 기존 공론화 과정의 난상이 재연될 소지가 크다. 지질환경 등 선결과제가 많은 영구처리보다는 월성 원전의 사례처럼 중간저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원전 소재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허울만 중간저장일 뿐 사실상 영구처분 시설로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남는 것은 설득의 문제다. 사용후핵폐기물과 그 처리시설에 대해 누적된 반감과 두려움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추고, 중간저장의 기간이나 보상방안을 합리적으로 설정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영구처분 관련 연구나 기술개발이 아직 더딘데다 지금 공사를 시작해도 완공되는 데 최소 40년은 걸린다"며 "사실상 원전 소재 지역 주민에게 당분간 사용후핵연료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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