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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앨범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 얼굴을 괜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 사람은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차곡 차곡 쌓여진 소중한 기록들은 그의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피해자를 만난다. 눈물 범벅이 된 피해자의 진술은 오락가락이다. 범인의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그의 손과 머리를 통해 그려진다. 피해자가 외쳤다. " 이 사람이에요! 이 사람!"
박만수 경위의 얘기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박경위는 학교 앨범을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했다. 문영기의 독(獨)한 인터뷰에서 몽타주 전문 수사관 박만수 경위를 만났다.◈ 극장 간판 그리다가 경찰에 투신예전에 좋은 극장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극장 간판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서울의 유명한 개봉관 (지금은 이런 개념이 없지만, 과거에는 새 영화를 아무 영화관이나 개봉할 수 없었다. 개봉관, 재개봉관, 재재 개봉관 이런 식으로 등급이 있었다.) 국도극장, 스카라, 단성사, 국제극장 등 유명극장에 걸려있는 극장 간판에는 살아서 튀어나올듯이 실감나는 영화배우들이 관객들을 유혹했다.
신성일보다 더 멋진 신성일이 있었고, 비비안 리보다 더 예쁜 비비안 리가 극장 간판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등급이 낮은 극장으로 갈수록 현실성 떨어지는, 등장인물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 엉뚱한 사람이 그려져 있곤 했다.
박만수 경위는 극장 간판을 그렸다.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그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청주의 한 극장에서 영화배우의 얼굴을 그리는 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꽤 유명한 극장의 간판을 그리고 있었다. 6년쯤 지났을 때, 경찰관이었던 큰 형님의 권유로 그는 간판일을 접고, 공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1980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경찰이었던 큰 형님께서 공무원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를 했다. 형님의 권유도 그랬지만, 당시 경찰관의 제복은 푸른 색이었는데, 색상도 맘에 들고, 경찰관도 괜찮겠다 싶어 경찰 공채에 응시해서 합격했다.''''
경찰 제복이 ''''푸른색''''이어서 맘에 들었단다. 특이하게도 ''''예술적인''''이유로 경찰에 입문했지만, 처음부터 몽타주를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다 82년, 당시 치안본부 감식과에서 전국 지방청 몽타주 요원 선발 실기시험에 응시했고, 그것이 27년 몽타주 전문 수사관의 시작점이 됐다.
◈ 그림실력 보다 더 중요한 대화능력
몽타주 작업은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미로를 뚫고 출구를 찾는 것과 같다. 범죄의 피해자나 목격자를 상대로 범인의 얼굴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술을 얻어내는 것이 몽타주의 관건이다.
그가 작업하는 몽타주 작업실에는 몽타주가 결정적인 단서가 돼 검거된 피의자들의 사진이 여러 장 붙어있다.
''''검거사진을 붙여놓은 것은 실적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심리적 안정과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피해자나 목격자가 안정감을 갖고, 몽타주에 의해서 범인을 검거할 수 있구나 하는 신뢰를 갖게 되면, 그 당시의 목격상황을 정확하게 진술하게 된다. 정확한 진술에 의해 몽타주가 완성되면, 검거율은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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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몽타주의 대상이 되는 범죄는 강도,살인,강간등 강력사건이 대부분이다. 두려움과 공포감에 휩싸인 상황에서 가해자의 정확한 인상을 기억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범죄피해를 목격한 경우, 보복등을 우려해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피해상황을 진술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다. 심지어는 전혀 엉뚱한 진술을 하기도 한다.
이런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안정이 최우선이다. 그가 몽타주를 그리는 시간보다 피해자와 편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이유다.
◈ 데이터 보다는 ''''감(感)''''을 믿는다. 현재 경찰청에는 몽타주 작성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도입돼 있다. 99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몽타주 프로그램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얼굴윤곽, 눈,코, 입등으로 세분화된, 만천여건에 이르는 인상이 입력돼 있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는 1년 단위로 계속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웬만한 한국인의 얼굴특징은 다 입력돼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컴퓨터 작업이 도입되면서 작업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미술실력이 꼭 필요한 조건은 아니게됐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컴퓨터와 수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컴퓨터에 입력돼 있지 않은 신체특성이 있을 수 있고,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세심한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몽타주 작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미술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感)''''이다.
''''피해자의 진술을 듣다보면 아!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피해자의 진술과 다르더라도, 떠오른 영감에 따라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그림을 보여주면,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이사람... 하는 경우가 열에 일곱, 여덟쯤은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속된 말로 길거리에서 자리 펴고 앉아 관상 봐도 될 법하다. 그의 머릿속에 입력돼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오히려 컴퓨터보다 정확하고, 빠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런 감(感)이 어디 하루 이틀에 생겼을까. 27년간 한 우물만 파고 든 직업정신이 만들어 낸 성과물이다. 그는 아직도 범인이 검거되면 그가 그린 몽타주와 어떤 점이 다르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 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 몽타주는 사진보다 강하다정확한 몽타주는 검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그의 몽타주로 검거된 범죄인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심지어 물적증거 없이 그의 몽타주만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된 경우도 있다.
''''97년 8월경이었다. 충북 옥천 주차장에서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몽타주 장비도 도입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피해자의 진술로 작성된 몽타주로 범인을 일주일만에 검거했다. 그런데 용의자가 범행을 강력히 부인하는 거다. 검찰은 마땅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고.. 궁지에 몰린 검찰은 궁리 끝에 나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법정에서 내 경력, 몽타주 작성 경위등을 설명했다. 결국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그의 몽타주 그리는 능력이 어떤 증거보다 확실하다고 판사도 믿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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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는 사건 초기에 작성해야 효과가 있다. 보통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 기간은 3-4일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이상 시간이 경과하면 왜곡된 몽타주가 나오기 쉽다. 특히 어려운 대상은 어린이와 노약자다. 아무래도 진술능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부정확하기 쉽기 때문이다.
부정확한 몽타주는 안 그린 것만 못하다. 수사에 혼선만 초래할 뿐이다. 그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이 부정확하다고 판단될 경우 아예 몽타주를 그리지 않는다. 경찰청장이 지시해도 무너지지 않는 원칙이다.
◈ 27년 외길, 후계자 양성하는 일이 급선무몽타주 수요는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CCTV가 곳곳에 설치되면서, 영상에 의존하는 비율도 늘어났고, 또 범죄인들도 점점 지능화되면서 얼굴을 가리거나 장갑을 끼는등 증거물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타주는 여전히 과학수사에 가장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연간 350건 가량의 몽타주가 만들어진다.
그는 현재 전국에서 유일한 몽타주 전문 수사관이다. 20년도 더 지난 2005년에야 인증을 받았다. 전국 경찰청에는 약 20명 정도의 몽타주 요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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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특수 수사대나 범죄 프로파일러 출신들이다. 하지만, 대부분 3-4년 정도로 경력이 짧다. 내근만 전담해야 하는 몽타주 요원을 계속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몇 년 하다가는 다른 부서로 전근가는 경우가 많다.
경력이 짧고, 순환근무가 이뤄지다보니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 아무리 컴퓨터가 도입됐다고 해도, 많은 몽타주를 그려본 경험은 어떤 데이터베이스보다 귀중한 자산이다. 그는 이런 점이 안타깝다. 후계자 양성도 시급한 문제다.
'''' 정년이 몇 년 안 남았다. 5년전 쯤에 후임자를 양성하려고 불러다가 교육도 시키고 애정을 많이 쏟았는데, 본인이 한,두달 하더니 그만두겠다고 하더라.. 안에서 그림만 그리려고 하지를 않는다. 하지만, 취미나 자신의 특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특채를 해서라도, 후진을 양성할 생각이다.''''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몽타주는 여전히 최고다. 지방경찰학교에서 교수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그가 쏟은 27년의 열정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몽타주로 붙잡은 가장 유명한 범죄자는? |
| 1975년 10월. 서울 전농동의 한 세탁소에 한 남자가 청바지를 맡기러 왔다. 그가 맡긴 청바지에는 여기 저기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세탁소 주인은 방금 다녀간 그 남자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듯 했다. 그는 청량리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붙잡힌 사람은 17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살인마 김대두였다. 당시 치안본부 감식과에 근무하던 김성한 주임이 그린 한 장의 몽타주로 연쇄살인은 멈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