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과 관련해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나서자 국민의힘이 이를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법안 처리 이후 관련 논란의 불을 끄고 인사청문회 등 유리한 지형으로 전장을 옮기려는 민주당에 맞서 검수완박 전선을 연장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8일 국회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검수완박 국민투표와 관련해 "인수위 측과 소통해 당의 지원이 필요한 게 있으면 즉각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당선인께 국민투표를 부치는 안을 보고하려고 한다"고 첫 운을 떼자 곧바로 화력을 보탠 것이다. 국민투표법이 2014년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효력을 상실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대응 방향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당 정책위의장인 성일종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회가 보완 입법을 했어야 하는데 당시 헌법 개정과 관련해 이런 것들이 논의가 안 된 부분이 있다. 국회가 잘못한 것"이라며 "우리가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법적 난관에도 장 비서실장이 제안에 나서고, 국민의힘은 이에 맞춰 보완에 나서는 것은 검수완박 전선을 연장시키기 위한 포석이란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 논란으로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현재 지형이 불리하지 않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이 '꼼수 탈당' 등의 무리수까지 두며 법안처리에 강행 드라이브를 건다는 비판이 비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 수용을 번복하면서 명분상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최근 민주당이 주도한 법안에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관련 내용이 빠지고 '국회 방탄법' 논란이 일면서 다시 여론 주도권을 가져온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국무회의를 최종 통과하고 다음 달 3일 이후 청문정국이 시작하면, 민주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사그라들고 청문회 관련 이슈가 전면에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의 '아빠찬스' 논란으로,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장학금 싹쓸이' 논란으로 강한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청문정국에서 이런 공세를 받아내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다시 불리하게 조성될 여론지형이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민주당은 자료 제출 부실을 문제 삼아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일정을 다음달 2~3일로 미뤘고, 이에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일정 역시 줄줄이 연기됐다. '검수완박 논란 마무리 → 청문정국 돌입' 시간표가 짜진 셈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간사의 의사진행발언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다. 윤창원 기자
이 시점에서 국민투표는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검수완박 이슈를 좀 더 이어나갈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국민투표는 국민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이를 통해 검수완박 논란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대한 반발 여론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다선 의원 역시 "검수완박의 여야 대치 상황을 계속 이어가는 게 나쁠 게 없다. 민주당 내 중도층도 '검수완박을 안 하면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간다'는 식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냐"며 "국민투표의 실현 가능성이 작더라도 우리 당 입장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다른 수단 자체가 없으니 어떤 면에선 단순하게 가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검수완박' 관련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상정된 제 395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첫 주자로 발언을 하는 앞쪽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윤창원 기자"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국회의 몫'을 강조해온 윤 당선인이 검수완박 논란을 다시 국회의 공으로 돌려 직접적인 정쟁을 피하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양당은 이날 각각 정책조정회의, 최고위원회의 등은 물론, 기자회견을 잇따라 열며 하루 종일 공방을 벌였다.
다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제도를 무리하게 카드로 쓰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민의힘의 한 다선의원은 "만일 국민투표가 진짜 실시됐을 때, 혹시나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못한다면 집권 초기 굉장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초선의원은 "국민투표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라며 "국민투표와 연계시켜 이번 지방선거를 사실상 중앙정치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