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검찰과 검사들에게 유구한 전통 이랄까, 법칙이 존재한다. 아직 까지 흔들리지 않는 법칙으로 존재한다. 검사들은 선배나 자신들 잘못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자기 권리가 침해되는 사안만 나오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선다는 것이다. 굳이, 작명 한다면 '권리행사 내로남불'이라 할까.
며칠 전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한국일보에 기고한 수사.기소권 분리를 반대하는 글을 읽었다. 홍만표 전 변호사를 구속 기소했던 검사다. 거악과 싸우며 특수 수사를 해 온 그의 이력과 정체성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글이라 생각되었다.
"'걷기'가 유일한 취미인 나는 제주 곳곳을 혼자 걸으며 난개발에 신음하는 현장과 마주치는 제주를 지키기 위해 검찰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작년부터 시행된 검경 간 수사권 조정으로 부동산 투기, 난개발, 환경파괴 사범은 검찰에서 수사할 수 있을 범죄에서 제외되어 있는 지라 초동 수사조차 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다. 경찰에서 수사하지 않으면 결국 개인 자격으로 경찰에 고발장을 내든지, 기껏 올레길 쓰레기나 주워야 하는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다."
지역의 검사장이 올레길 난개발이나 환경파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러나 동의하기 어려운 몇가지 상념도 들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19일 오후 제주지검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첫째는 이원석 검사장의 전임 검사장들은 난개발과 환경파괴에 얼마나 아픔을 느꼈을까 하는 점이다. 그때는 검경 수사권 조정 전이고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통제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 검사장 전의 제주 지검은 왜 여태까지 이런 문제를 방치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제주 난개발, 환경파괴가 어제 오늘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언론 보도도 넘쳐 났다. 그 권한을 지금 구하는 것을 보면 결국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인간 의지'라고 해야 하는 건지 헤아리기 어렵다.
둘째는 난개발과 환경파괴가 제주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국적 현상이고 수십년 간 첩첩이 쌓인 한국 사회의 적폐다. 과문하지만 한국 검찰이 그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척결해 왔는지 기억되는 것이 별로 없다. 이 검사장이야 그럴리 없겠지만 거악 척결에만 관심을 쏟는 분들이 품은 많이 들어가고 주목되지 않는 사건에 매달리려 했을지 고개가 갸웃거린다.
작년 LH 부동산 투기 사건 때에도 검찰은 먼 발치에서 경찰 수사를 지켜 만 볼 뿐 손이 묶인 채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해서 올리는 말씀이다. 광명·시흥 땅은 3기 신도시다. 1기와 2기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부동산 적폐가 3기보다 덜하지 않았을 개연성은 높지 않다. 사정 기관을 총괄한 검찰이 1,2기 신도시 투기 사건을 제대로 척결했다면, 3기 신도시 투기가 여전했을까. 아니면 거악은 척결해도 또 거악은 계속 양산되는 원죄에 관한 것인가. 이런 논리 대결은 너무 우습고 슬픈 것이다.
셋째는 산책때도 (제주를 위한) '수사'만 생각하는 노고에 관한 것이다. 절묘하게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지명자의 말과도 일치한다. 한 지명자는 "검찰은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시각은 일치한다. 이 검사장은 "힘 센 사람들에 맞서 현직 대통령 YS.DJ.MB의 아들과 형,측근들을 구속 수사했다"고 말했다. 나쁜 놈을 잡는 건 사회 정화를 위한 일이겠지만 죄와 벌로 세상이 통치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연합뉴스역지사지 해봤으면 좋겠다. 검사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권력 수사가 지난 30년 간 몇 건이나 되는지. 대부분은 여론에 이끌려 마지못해 착수하고 어떤 건은 끊임없이 꼬리 자르기 했다. 때로 그것도 들통나 망신 사고 겨우 종료했던 일이 흔치 않았음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다. 검찰 수사만으로 사회는 완결되지 않는다. 만능 주의가 과하면 오만해 진 것이다.
법무부·검찰만 유일한 성역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법무부와 검찰'이 '고유 업무'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가.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검찰 심판을 받았고, 심지어 사법부도 검찰 심판을 받았지만 검찰과 법무부만은 고유 업무와 관련해 자기 칼을 받은 적이 없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정권마다 법무부·검찰은 적폐수사에서 예외가 되어도 좋을 만큼 정당한 일과 수사만 해온 건 아닐텐데.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 수석 업무 수첩에는 법무부·검찰에 수사 외압과 관여를 시사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 작용이 청와대에서 일방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다. 대법원의 '이규진 수첩'에 사법 농단의 유력 증거들이 수두룩 하듯, 김영한 수첩도 마찬가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겨냥한 노력만큼 했다면 박근혜 정권 동안 법무부.검찰 고위급 검사 상당수가 직권 남용죄 대상이었을 것이다. 칼 대지 않은 적폐다. 이명박 정권 때도 모자랄 것이 없다. 그때 검사장 회의는 물론이고 평검사 회의 같은 검사 집단 행동은 없었다. 내로남불이라 하면 모함일까.
여론조사를 보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다. 기본적으로 팽팽해선 안 될 사안인데 말이다. 수사.기소권이라는 건 합법적 국가 폭력이며 독점적으로 위임된 것이다. 더욱이 영장청구와 기소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합법적 국가 강제폭력 행위에 대해 찬반이 팽팽히 교차한다는 자체가 행사 방식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선배와 내부 잘못에 대해 묵인하고 권리 침해 사안만 나오면 모이는 집단 행동이 검사님들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고 있음도 헤아려 주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