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낙과 부인 아크샤타 무르티. 연합뉴스차기 총리 유력 후보로 꼽히던 영국 재무부 장관이 부인 세금 문제로 국민정서를 건드리면서 스텝이 크게 꼬였다.
한주일 전만 해도 리시 수낙(42) 영국 재무장관은 젊고 똑똑하며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정치인이었다. 운동으로 관리한 몸에 딱 맞는 고급 양복을 갖춰 입은 모습은 그가 엘리트 코스를 밟은 투자은행 출신이란 점을 떠올리게 했다.
수낙 장관은 코로나19 사태로 영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유급휴직 등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엔 장기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세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국제 에너지 요금 급등 등으로 생활비 증가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와중에도 세금인상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소득세인 국민보험(National Insurance) 분담금률이 6일부터 1.25%포인트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인상이 시작되는 당일 부인 아크샤타 무르티가 해외 소득에 관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무르티는 인도 IT 대기업인 인포시스 창업자의 딸로, 회사 지분 약 7억파운드(1조1천여억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고 여기서 받은 배당금이 지난해 1천160만파운드(186억원)다.
그런데 인도 국적인 무르티는 송금주의 과세제를 이용해서 세금을 내지 않고 있었다. 1799년 시작된 이 제도는 영국 장기체류 외국인들이 매년 일정 금액을 낼 경우 해외 소득을 영국으로 송금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이다.
BBC는 그가 연간 약 3만 파운드(4천800만원)를 내고 약 210만파운드(33억원) 세금 납부를 피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낙 장관은 공직자가 아닌 자신의 부인을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인도 국적이고 미래에 부모를 돌보러 귀국할 계획이므로 제도를 이용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수낙 장관이 장관 임명 후 1년 넘게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미국에 세금신고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더 시끄러워졌다.
결국 이틀 뒤 무르티는 모든 해외소득에 관해 세금을 내겠다고 밝혔다.
무르티는 완전히 합법적인 절세이지만 영국의 공정의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남편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인도 국적과 장기체류 외국인 자격은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BBC가 보도했다. 현재 기준 2억8천만달러(3천438억원)로 추정되는 영국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수낙 장관은 최근 자료유출 관련 조사를 지시한 데 이어 10일엔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공직자 윤리 위반사항이 있는지 자신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매체에서는 이번 일의 배경에 총리실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총리실은 부인했다.
존슨 총리와 수낙 장관은 최근 원전 투자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강력 추진하는 반면 수낙 장관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보수당 고위 의원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