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난임 지원에 '성패' 따지는 정부…저출생 손놨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진짜 난임 환자는 제대로 된 난자가 없어 자부담하는 현실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난임제도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30대 난임 환자라고 밝힌 청원인은 "보건소의 시험관 아기 시술(이하 시험관 시술) 지원 조건은 '난자 채취성공'이고 채취 이전에 시술이 중단되면 병원비 전액 환자부담이 된다"며 "상심이 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치료비 전액부담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습니다.
청원인은 주치의 소견에 따라 난자 채취를 포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정부지원이 무효 처리돼 면제받았던 진료, 주사, 검사비용 등이 '미수금'으로 청구됐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불가피한 중도 중단의 경우에 대해 시술 과정을 나눠 지원해주거나, 횟수 차감 또는 자부담 및 횟수 유지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피임을 하지 않는데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에 해당합니다. 난임치료 시술(이하 난임시술)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요. 체내 수정을 시도하는 '인공수정'과 체외 수정 후 태아가 되기 전인 배아를 이식하는 '시험관 시술'입니다.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과 달리 인위적으로 난자를 채취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까지 가지 않으면 난임시술비 지원이 안 된다는 건데요. '난자 채취'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와 시도는 했으나 난자가 없는 경우까지 말이죠.
한 맘카페 게시판에 시험관 시술 중단으로 정부 지원금을 반환하게 됐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쓴이는 남편의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난자 채취도 못하게 됐다고 밝혔는데요.
"배 주사(배란 유도제 투여) 놓고 산부인과에 다니며 난자 채취날만 기다려왔는데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 비참하다"며 "시험관 시술이 중도 중단되어 그동안 받은 지원금도 다 토해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정부는 난임 진단을 받은 부부 중 중위소득 180% 이하 가구 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 난임시술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시술 방법 및 대상 연령에 따라 지원 횟수와 금액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요. 제도 관련 안내를 살펴보면, '난자 채취 실패' 외에 또 하나 지원 불가능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난포 발생 시, 건강보험 횟수 차감 없이 본인부담률 30% 적용·정부 지원 불가능' 
 
난포는 난자가 들어있는 물주머니입니다. 정상적으로 성숙되면 자연히 난자를 배출하는 배란이 일어나는데요. 시험관 시술에서 난자 채취를 시도했으나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공난포'일 경우입니다. 난자 없이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죠.
 
과거에는 신선배아 시술 과정에서 공난포로 난자 채취 실패 시 난임시술비 지원 횟수를 차감했는데요. 보건복지부는 2018년부터 횟수 차감 대신 난자채취 및 처리비용의 본인부담률 80%를 적용했고, 이 부담도 줄이기 위해 2019년 7월부터는 30%로 하향 적용했습니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채취 외에 검사, 약제 등 다양하게 돈이 들고, 병원마다 비급여 진료 비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난임시술은 건강보험 급여 횟수를 모두 쓰고 나면, 비급여 진료 비용을 따라야 합니다.
 
    
난임시술 지원사업은 정부가 추진한 2단계 재정분권에 따라 올 1월부터 지자체로 이양됐습니다. 지자체들은 건강보험 횟수가 종료된 환자에게 추가로 시술비 지원을 시작했는데요.
소득기준 탓에 애초 정부 지원대상이 되지 못한 난임부부들은 지자체 지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에 추가지원 대상자도 기존 소득기준 범위를 지키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중위소득 180% 가구는 2022년 2인 가구 기준 월 수입 586만 8천 원, 사실상 맞벌이 부부는 지원받기 힘든 상황이죠. 또 공난포엔 지원이 어렵다는 건, 지자체 난임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난임시술 금액은 지난 3년 사이 약 45% 증가했습니다. 시술별 최대 지원 금액에 제한이 있음에도 최근 5년간 난임시술 지원사업 예산은 매년 100% 집행됐는데요. 최 의원은 난임부부들에 예산이 충분치 못한 상황을 지적하며 "아이를 원하는 난임 부부들에게 값비싼 난임 치료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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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횟수 한번 한번이 정말 소중해요. 의료비 부담이 크니까요. (난임시술을) 오래전부터 시작해서 저는 공난포로 횟수가 차감되던 때도 경험했거든요. 또 난자 채취는 했는데 수정 후 배아가 기형이라고 이식을 못해서 횟수를 날린 적도 있어요. 정부 지원 기준으로는 채취부터 이식까지 성공해야 1회 차수가 진행된 걸로 치니까요."
2016년 말부터 올 1월까지 난임시술을 받은 40대 여성 이모씨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21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씨는 "1년에 1천만 원 이상씩 돈이 나간 게 여러 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5년여간 난임시술을 받으면서 본인부담액상한제로 3번이나 일부 비용을 환급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의료비를 너무 많이 썼으니,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으로 준 것인데요. 그는 난임시술 지원금액이 달라지는 만 45세가 되진 않았지만 향후 시술 계획을 접어둔 상황입니다. '난소기능저하'(이하 난저)로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난임시술의 과정별 지원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관해 이씨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는 정부의 제한적 지원이 불가피함을 이해하면서도, 청원인의 주장에 동의를 표시했는데요.
"정부가 소수까진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난저 중에도 '극난저', '초극난저'가 있는데 배려를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난포가 제 마음처럼 자라주지 않는데, 의사 분들은 경험적으로 공난포가 많다는 걸 아시죠. 이럴 때 위험을 무릅쓰고 채취할 건지, 아니면 다음 (배란)주기로 넘길지 물어보세요. 환자는 과배란에서 채취까지 오는 길이 너무 험해요. 이런 경우 만약 과배란 따로, 채취 따로 디테일하게 지원된다면 횟수 차감 걱정 없이 좀 더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5월기준 신생아 8명 중 1명이 난임시술 지원을 받아 태어났습니다. 전체 신생아 수는 해마다 줄고 있지만, 난임 시술로 태어난 아기는 증가 추세인데요.
한 생명을 세상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 난임환자들은 많은 희생을 감내합니다. 난임시술엔 출발 단계인 배란부터 여러 난관이 이어지지만, 모두 헤치고 이식이라는 도착점에 이르러야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저출생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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