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에서 발언하는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 연합뉴스러시아군이 유럽 최대 규모의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단지를 공격한 것을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부딪쳤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자포리자 원전 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우크라이나 측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네벤쟈 대사는 "러시아군이 원전을 공격했다는 거짓말이 들린다"며 "우크라이나 국수주의자나 테러단체가 현 상황을 이용해 핵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원전을 통제 중"이라고 했다.
이어 "러시아군이 원전 단지 인근에서 순찰 중 우크라이나의 사보타주(의도적 파괴행위) 그룹의 공격을 받아 응사했을 뿐"이라며 "이 그룹이 단지 밖에 있는 교육용 건물에 불을 지른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네벤쟈 대사는 "원전과 주변 지역은 러시아군이 지키는 중"이라면서 "원전이 있는 지역의 자연방사선은 정상 수준이며 원전 안전과 방사성 물질 유출에 대한 위험은 없다"고 했다.
안보리에 참석한 세르게이 끼슬리쨔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 연합뉴스
하지만 이후 발언권을 얻은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르게이 끼슬리쨔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는 "거짓을 퍼뜨리는 일을 그만 멈추라"고 했다.
끼슬리쨔 대사는 자포리자 원전 상황에 관한 러시아 측의 설명은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의 끔찍한 사례"라고 반박했다.
이어 "현재 원전 주변 지역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수천 명이 진행 중인 포격과 전투 때문에 대피하지 못하고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히 전날 러시아의 자포리자 공격에 대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과거 사고들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고 경고했다.
또 끼슬리쨔 대사는 "아인슈타인은 '세상은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하고 방관하는 사람들에 의해 망한다'고 말했다"며 국제사회의 행동을 거듭 촉구했다.
앞서 전날 새벽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시 원전 단지에서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5층짜리 교육훈련용 부속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불길은 잡혔고 인명피해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군이 원전 단지를 점거했다는 보도들이 뒤따랐고, 자포리자주 군 당국도 성명을 통해 단지 상황을 밝혔다.
자포리자주 군 당국은 "(원전) 행정동과 출입 검문소가 점령자들(러시아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며 "원전 직원들은 원전 시설의 안정적인 가동을 유지하면서 근무를 계속하고 있고, 원전의 방사능 수준은 정상"이라고 했다.
한편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15기 중 6기를 보유한 대규모 원전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원자력발전소 중 하나다.
구 소련 시절인 1984년부터 1995년 사이에 건설됐으며 총 발전량은 4백만 이상의 가정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5.7기가와트(GW)로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 생산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