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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피그' 소중한 것을 잃은 자들의 숭고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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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피그'(감독 마이클 사노스키)

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스포일러 주의
 
과거도, 이름도, 나 자신조차도 잊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상실의 아픔이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 이름도, 존재도 잊힌 채 모든 걸 버리고 숲에 사는 남자가 오랜 은둔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잊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시 마주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돼지 찾기 여정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가 '피그'다.
 
이름을 버리고 숲속에서 사는 롭(니콜라스 케이지)에게 함께 사는 트러플 돼지(브랜디)는 소중한 존재다. 그런 롭을 방문하는 사람은 푸드 바이어 아미르(알렉스 울프)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이들이 숲에 들이닥쳐 롭을 폭행한 후 소중한 돼지를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롭은 돼지를 찾기 위해 아미르의 도움을 받아 15년 전에 떠난 포틀랜드로 다시 돌아간다. 그곳에서 한때 가까웠지만 이제는 자신을 잊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롭은 사라진 돼지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진짜 이름을 밝히게 된다.
 
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피그'(감독 마이클 사노스키)는 이름을 버린 남자 롭이 사라진 트러플 돼지와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은 마스터피스 드라마다. 롭 역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빚어낸 완벽한 연기는 물론 높은 완성도로 전 세계 평단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는 스스로 고립된 남자 롭이 자신의 곁을 지킨 소중한 존재인 트러플 돼지의 납치 이후, 돼지를 찾아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체적인 큰 이야기의 틀은 마치 '존 윅' 내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를 숨기고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롭과 존을 가르는 것은 문제 해결 방식이다. 존 윅이 총과 칼을 휘둘렀다면, 롭은 자신의 신념 내지 근본과 음식을 통해 해결한다.
 
오랜 은둔의 세월을 깨고 나온 롭이 향한 포틀랜드는 미식가의 천국인데, 영화 속 포틀랜드 외식 산업계는 마치 마피아 세계처럼 그려진다. 음모와 부패, 권력과 암투가 도사리는 포틀랜드 지하에는 레스토랑 직원들이 서로의 이름값을 걸고 주먹을 날리는 파이트 클럽이 존재한다. 포틀랜드 외식 산업계 정점에 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푸드 바이어 다리우스(아담 아킨)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두려움의 존재다.
 
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이처럼 부패와 음모가 판치는, 상업성만이 남은 포틀랜드에서 롭은 순수성의 가치를 간직한 존재다. 그런 롭이 침묵을 깨고 포틀랜드에 진입하면서 혼탁한 도시에 균열을 내고, 포틀랜드가 잃어버렸던 순수성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 준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애써 덮어놓은 상실의 아픔을 마주하는 것이다. 롭의 여정은 매 순간 자신과 상실의 아픔이 담긴 과거를 마주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런 롭의 여정은 같은 아픔을 가진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성공을 위해 비평가와 손님의 입맛에만 맞추며 자신의 꿈과 조리법은 잊은 채 살아가던 포틀랜드 최고 레스토랑 수석 셰프 핀웨이(데이비드 넬), 성공만을 좇아 달려가며 따뜻함을 잃어버린 다리우스에게 롭은 분명 부드럽지만 물리적 행동보다 더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방식으로 그들이 잊고 지냈던 근원을 건드린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 말이다.
 
롭과 이들은 다른 듯 보이지만, 상실의 아픔과 존재의 각인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렇기에 돼지 찾기 여정을 통해 롭도 자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었던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게 된다.
 
재밌는 지점은 '피그'는 얼핏 보면 복수극의 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롭의 여정은 피의 보복이 아닌 맛깔스러우면서도 근원을 잊고자 했던 이들의 기억을 환기하는 방식을 취한다. 사실 롭이 하고자 하는 것은 복수가 아닌 돼지를 찾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그'의 외피는 전형적인 틀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이를 전복시키며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낸다.
 
결국 돼지를 찾아다니며 '나'를 찾게 되는 게 '피그'의 여정이다. 나라는 존재마저도 잊고 싶을 정도로 아팠던 과거를 마주하게 만든, 이 어려운 발걸음을 떼게 만든 건 트러플 돼지다. '돼지'는 소중한 무언가에 대한 은유이자, 상실의 아픔을 마주 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시작점의 은유다.
 
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외화 '피그'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롭을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가 있다. 오랜 부진과 스캔들을 말끔하게 털어낸 연기를 선보인 니콜라스 케이지는 복잡다단한 내면을 응축시키고, 이를 마지막에 터트리며 그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던 과거를 상기시킨다.
 
한때 잘 나갔던 전설적인 셰프가 은둔하며 자신의 이름도, 존재도 잊혔지만 과거 그의 명성은 결코 가볍게 얻어진 게 아니라는 건 롭의 여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과거 오스카 수상도 결코 가볍게 얻어진 게 아님을, 아직 그의 이름과 존재는 분명하게 스크린에 새겨져 있음을 '피그'가 입증하고 있다.
 
영화는 조명 사용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광에 의존한 촬영 방식을 선보이는데, 이는 '피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롭의 여정과 어우러져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패트릭 스콜라를 비롯해 '퍼스트 카우' 촬영팀의 매디슨 로울과 '미나리' 프로덕션 매니저 다니엘 맥길브리가 합류해 만들어낸 영상미 역시 '피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또 하나, CG가 아닌 실제 돼지 브랜디의 연기로 완성된 롭의 트러플 돼지는 짧은 분량에도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브랜디의 사랑스러움과 뛰어난 연기는 롭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킨다.
 
92분 상영, 2월 23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피그' 메인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외화 '피그' 메인 포스터.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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