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우그라이나 접경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 장갑차. 연합뉴스17일(현지시간) 아침 지방시찰 길에 나서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앞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였다. 최근 며칠 째 그래왔던 것처럼 기자들로부터 나온 질문은 온통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살인적인 물가폭등 문제, 코로나 지침 완화를 놓고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 재난 지원금 오용 문제,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공급망 사태 등 여러 난제들에 대한 질문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국정지지율이 30%대 문턱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집권 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이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기세도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사태로 취임 7개월 만에 50% 아래로 떨어진 그의 국정지지율 하향곡선은 지난달 25일 41.5%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그날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 8500명에 대해 파병대기 조치를 내린 날이었다.
'우크라 사태' 속 폴란드서 진지 구축하는 미 공수부대원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는 수렁에 빠진 바이든 대통령에게 동아줄이었을까?
우크라이나는 일찍이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친러 내각이 실각하고 친미 정권이 들어선 2013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는 미국의 입김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미국에 줄을 대려는 우크라이나 정관재계의 로비스트로 고용됐다. 그 가운데 한명이 헌터 바이든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기업 사외 이사로 쉽게 취업해 월 5만 달러씩 벌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부통령이던 아버지의 배경을 활용하기도 했다.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아들 헌터가 재직중인 회사에 대한 우크라이나 검찰의 수사를 막으려 했다는 의혹도 이후 불거졌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이 의혹을 키우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되레 탄핵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차남 헌터(왼쪽). 연합뉴스그리고 2022년 바이든은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우크라이나와 또 다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최근 전개 과정을 보고 있으면 사태의 주도권은 바이든 대통령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대(對)러시아 무력 전시장으로 변질된 우크라이나 주변에 러시아 병력이 대규모로 집결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예상 밖으로 강력하게 나왔다.
지난해 12월에만 두 차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담판에 나서는가 하면 지난달 중순부터는 침공이 임박했다며 먼저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도 러시아의 침공 시점이 '곧', '조만간', '이번주', '올림픽 기간', '마지막 단계', '푸틴이 마음만 먹으면' 다가온다고 하거나 급기야 전쟁 날짜를 '16일'로 정해서 언론에 흘렸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미국인들 상대로 소개령을 내리고 이어 대사관 가족과 직원 철수에 이어 대사관을 폐쇄하며 위기를 증폭시켜왔다.
15일 러시아의 일부 병력 철수 선언이 나왔을 때도 미국은 해당 병력 철수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러시아가 거짓말했다며 도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이 꺼져가는 듯한 전쟁의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짐작케 할만 한 보도가 최근 유에스뉴스(1월 28일자)에서 나왔었다.
'위기의 혜택(The Benefit of a Crisis)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푸틴과 바이든 모두 전쟁을 원하지 않겠지만 위기가 진행되면서 바이든에게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을 실은 보도다.
이 기사는 우선 러시아의 공세로 바이든으로서는 미국의 역할을 세계에 강조할 기회, 미국 상원에서 오랫동안 외교문제를 다뤄왔던 그가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기회를 맞았다고 봤다.
특히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냉전 시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선과 악의 싸움으로 어필하기 쉬운 문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바이든과 푸틴 스스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번에 나게 될 전쟁은 세계 대전급에 비견되는 것도 바이든에게 유리하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주러 미국 대사관. 연합뉴스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번 사태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악몽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라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스트롱맨 푸틴과 대결하는 것 자체만으로 바이든은 자기 앞에 붙은 '늙고', '졸리고', '치매있는'이라는 꼬리표를 떨쳐버릴 찬스를 마련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런 흐름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운명 지을 올해 11월 중간선거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미국 언론에서는 그 동안 바이든 대통령을 힘들게 해왔던 코로나 사태, 인플레이션, 인프라 법안, 경제법안, 투표권 약화 등의 이슈가 사라졌다.
침공 대비 전술 훈련 벌이는 우크라이나군. 연합뉴스문제는 지금의 사태가 실제 전쟁으로 발전하느냐다.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플레이션은 말할 것도 없고 석유수급, 주식시장 등에도 큰 파장이 일 것이다.
또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 푸틴과의 문전 싸움에서 졌다는 평가, 외교력이 약했다는 지적, 중국과 북한에게도 좋지 않은 신호를 줬다는 비판 등이 뒤를 따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섣불리 전쟁이라는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면전이 자신에게 강펀치라면 푸틴에게는 핵펀치의 위력이라는 것을 바이든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
전쟁 발발시 미국에 비할 수 없는 러시아 경제에 대한 파급력, 국제적 고립, 민심 이반(현재 러시아의 민심은 과거 다른 전쟁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강하다) 등 푸틴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훨씬 막대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반면 전쟁이 아닌 위기 수준으로만 지속된다면 그것은 푸틴에게도 이득이다.
높아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악력, 나토에 대한 협상력 등의 부산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라는 한 배에 올라 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