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밀쳐도 "무관심이 더 무섭다"…장애인 지하철 시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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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일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 시위로 지하철이 연착돼 승객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장애인들은 "충분히 기다렸다"며 정부와 대선 후보의 '책임있는 장애인 권리 보장 약속'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장연, 14번째 지하철 탑승 시위…"장애인 권리예산 보장하라"
출근하는 시민 "피해 끼치지 말라" 반발 크지만 '생존 보장' 요구

지난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모습. 허지원 기자지난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모습. 허지원 기자"그동안 없는 것처럼 여겨진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성을 찾고 회복하는 시간으로 느껴져요. 단순히 지하철을 연착시키는 게 아니라 소수자가 배제돼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을 멈추고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13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진우 활동가가 최근 지하철 출근길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해 말했다. 그는 시위와 선전전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선다. 지하철로 20분 거리지만 휠체어를 탄 그의 이동 시간은 총 4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이날 오전 7시 30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호선(상행선) 타는 곳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 등 10명이 모였다.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는 지난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 처음 시작됐다. 설 연휴 이후부터 주말 제외 매일 이어온 시위는 이날로 14번째였다. 동선은 매번 바뀌는데, 이날은 광화문역을 거쳐 혜화역 4호선 승강장으로 집결했다.

혜화역은 1999년 이규식 장애인 인권운동가가 지하철역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중상을 입은 곳으로, 이동권 투쟁의 역사적 장소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 6일부터 이곳에서 평일 오전 8시 선전전을 해왔다. 이들의 요구안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과 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책임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 △장애인 활동지원 하루 최대 24시간 보장 예산 책임 △장애인 탈시설 예산 증액 △대선 후보자들의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약속 등이다.

"출근길 불편" 시민 반발에도 '생존 보장' 위해 시위

지난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모습. 허지원 기자지난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 모습. 허지원 기자"세월이 지나면 편하고 권리가 보장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가 법적으로 명시한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욕을 하시더라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충분히 기다렸습니다."

지하철에 탄 전장연 박경석 상임대표가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는 "전장연의 불법 시위로 정상적인 열차 운행이 방해받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출근 시간대 지하철 출입문을 가로막고 운행을 방해하면 시민의 불편이 가중된다"며 시위자들을 제지했다.

약 1시간가량 이어진 이날 시위에서는 전장연 측의 발언과 다른 지하철 이용객들의 항의가 뒤섞인 채 터져 나왔다. 일부 승객은 장애인들에게 "빨리 내려라", "불편 끼치지 말라"며 소리쳤다. 욕설을 하고 일부러 시위자들을 밀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복을 입은 한 중년 승객은 "장애인들을 지지한다"면서도 "출근해야 하는데 잘리면 책임질 것이냐"라며 반발했다.

이 같은 상황에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회장은 "때리는 사람도 있어서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분노가 나오는 과정을 거쳐야 (장애인 요구 사항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점잖게 모르는 척하는 무관심보다는 낫다"며 "이야기하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휴대전화나 책만 보는 게 더 무섭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떤 시민은 '내가 5분 지각하면 경위서 쓰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말하는데 이런 걸(장애인 시위로 인한 연착을) 회사에서 인정해주지 않아 불안하다는 점을 안다"며 "시민들이 다 같이 연착하자고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는 안 되겠죠"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시민 반응은 평소보다 부드러운 편이었다. 유 활동가는 "한 남성이 봉투에서 소금을 꺼내 뿌린 적도 있다"며 "시민이 장애인을 더러운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상희 사무국장 역시 "(선전전을 할 때) 지나가며 욕하는 시민을 보며 장애인을 같은 사람으로 안 본다고 느꼈다"며 "심하게 말하면 제3의 동물로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전했다.

김 사무국장은 집 근처 지하철역 한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리프트를 탄다. 그는 "특수 전동휠체어 무게가 나가서 리프트가 삐거덕거리는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공포를 느낀다"며 "생존의 공포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말하는 출근길 불편함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하철은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대중교통인데 그 시민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느냐"며 "장애인도 아침에 출근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출근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떨어져 죽어도 사과 못받아…'책임있는 약속' 요구

박 대표는 "2005년 교통약자법이 제정되고 특별교통수단과 관련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는 만들어졌지만 예산에 대한 확답이 없다"며 "필요한 만큼의 예산을 기재부가 배정해야 하는데 그걸 강제할 수 있는 내용이 보조금법 시행령에 명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2001년 오이도역 참사 이후부터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100% 도입 등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장애인이 지하철역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죽었을 때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철 연착 등과 관련 (법을 어긴 부분은) 사법처리 받을 것"이라면서도 "16년 동안 지키지 않은 법적 권리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욕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것(장애인 권리 보장)이 빨리 해결되는 명확한 책임 있는 약속도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로부터 장애인 권리예산 확보 답을 받아내고 기재부의 예산 편성 동의를 얻을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예정이다. 오는 22일에는 수도권에 대한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범위를 넓히고 지역적 차별을 해결하라는 대규모 이동 투쟁에 나선다.

시위 참여자들은 "장애인 이동권은 노동권, 교육권 등과 연결돼있으며 장애인들의 투쟁이 결과적으로 다른 사회적 약자의 권리도 보장하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사무국장은 "특정 집단에만 이익이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재부도 이런 의미를 알고 예산을 배정해 다 같이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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