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만연한 증오와 분열을 경계하며 쓴소리를 던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언급하며 분열 정치 우려 "지지자들 사이에도 적대와 증오"
문 대통령은 최근 임기 종료를 3개월 앞두고 연합뉴스 및 세계 7대 통신사와 합동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 정치,경제,외교안보 이슈 등 전반에 포괄적인 질답이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강조한 국민통합이 재임 기간 얼마나 실현됐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언급하며 현재의 정치 문화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도 우리의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거론한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진영간의 극한 대립을 비판하고, 검찰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정권 심판론을 견제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연합뉴스문 대통령은 또 "극단주의와 포퓰리즘, 가짜뉴스 등이 진영 간의 적대를 증폭시키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지자들 사이의 적대와 증오'는 여권 진영 내에서도 경선 과정 등에서 내부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며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또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권이 앞장서 갈등을 치유하며 국민을 통합시켜 나가야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는 정치 통합을 위해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설치 등을 통해 노력했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임기 초반부인 2018년 8월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합의한 기구이지만 같은 해 11월 5일 열린 첫 회의를 끝으로 더는 열리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1월 5일 청와대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여야 원내대표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또
"야권의 유력 인사들에게 당적을 유지한 채 내각 참여를 제안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취지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끝내 모두 고사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정치 통합에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문 대통령은 "그럼에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통합된 역량"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코로나 위기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통합된 역량을 발휘해 위기 극복의 주체가 됐다. 우리 사회가 계속 발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퇴임 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임기 최고의 장면은 능라도 연설"
한편, 이날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사회적인 활동도 구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솔직히 퇴임 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퇴임 후 거주할 양산 사저 공사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뉴스에 보도된 사진으로만 봤지, 한 번도 현장에 가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방북 특사와 같은 역할을 요청받으면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임기 중 최고의 장면으로는 2018년 9월 19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5·1 능라도 경기장에서 이뤄진 '능라도 연설'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사상 최초로 평양 능라도에 모인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반대로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는 '하노이 노딜'을 떠올렸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것이 참으로 아쉽다"며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공했다면,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