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국회사진취재단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법정 토론 최소 의무 횟수 이상으로 토론에 응할 의사를 밝히면서 향후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공직선거법 제82조는 대선 과정에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 법정토론을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3회 이상'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늘어난 토론 수 만큼 유권자의 알권리 확대가 기대되는 가운데,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법정 토론 3회는 (대선 후보를) 검증하기에 부족하다"며 추가 토론을 위한 실무 협의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토론에 있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모양새가 판세에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후보의 발언에 "(토론을) 언제든 환영한다"라고 즉각 반겼다.
대선 토론의 영향력은?
지난 2017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19대 대선 두 번째 TV토론. 국회사진취재단대선 TV토론은 대선 때마다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모여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모습은 평소에 드물기 때문이다. 올해 대선이 6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간 대면 토론은 아직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에서 총 6번의 TV토론이 진행됐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대선이었던 만큼, 짧은 기간에 홍보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TV 토론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 후보간 격렬한 토론 뒤 부동층의 이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토론은 대선 후보에게 피할 수 없는 '진검 승부'로 받아들여졌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벌써부터 토론 횟수를 두고 설전을 벌인 이유이기도 하다.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박근혜 떨어뜨리러 나왔다" 신스틸러까지
왼쪽부터 지난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이한형 기자최근 진검승부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지난 2017년 19대 대선이었다.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여유 있는 1위를 달리다 어느순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오차범위 내 접전을 허용했고 1, 2위 주자간 '골든크로스'까지 예상됐다.
하지만 그 해 4월 13일과 19일 1, 2차 TV토론을 거치면서 판세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 2위인 안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
당시 토론에서는 1위인 문 후보를 중심으로 일대 다(多) 구도가 펼쳐졌지만, 안정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문 후보에게 오히려 토론이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상대 후보들의 말실수도 한 몫했다.
안 후보의 경우,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는 실언을 반복해 지지율 하락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아바타 발언'은 지금까지도 정치권에서 회자된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MB정권 연장에 반대해온 자신에게 온라인상에서 'MB 아바타'란 프레임을 씌우자 억울하다고 토로한 것이지만,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희화화됐다. 문 대통령은 당시 토론에서는 "그런 얘기를 제 입으로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공세를 쉽게 피해나갔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북한이 주적입니까"란 질문으로 문 후보와 말싸움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유 후보는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며 문 후보의 안보관을 문제 삼았고, 문 후보는 '외교적 협상을 해야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적절치 않은 표현'이라고 맞받아쳤다.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향해 "말로는 못 이긴다니까"란 웃지 못할 말을 남기기도 했다.
토론 덕 본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토론 이후 급격한 판세 변화가 있었다. 지지율 3위까지 떨어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킨 것.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가장 주요한 이유로 꼽히지만, 단일화 과정에서도 TV토론도 한몫했다. 다른 후보들과의 공식 TV토론에서도 당시 노 후보는 안정적 모습을 강조하며 '새 정치'로 지지율 상승세 만들어갔다는 평가도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토론 기조연설에서 "이번 대선은 낡은 정치에 스스로 사로잡힌 사람과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 애쓰는 사람의 대결"이라며 "낡은 정치는 돈을 뿌리고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제왕적 권력에 줄을 서고 밀실에서 자리를 나누는 정치, '아니면 말고'식으로 치고 빠지는 공작정치"라고 외쳤다. 여당 후보로서 '오히려 새 정치'를 외치며 정권 심판론을 뿌리친 것이다. 당시 1차 토론에서 권영길 후보가 민주당을 겨냥해 '부패신당 개업당'이라고 비판하자 노 후보는 "부패사업 폐업하고 사장도 바꿔서 깨끗하게 하려고 한다"고 맞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기는 TV 토론과 함께 인터넷이 급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유튜브'가 선거운동의 키워드가 된 현재 대선의 뿌리이기도 한 셈이다. 2002년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대선미디어공정선거국민연대가 포털 다음과 여론조사전문기관 엔아이코리아에 의뢰해 성인남녀 2만781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8.4%가 대선후보 결정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매체로 TV토론 꼽았고, 신문 잡지에 이어 인터넷 정치 사이트가 세 번째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등장했다.
판세 역전은 없었지만, 언제나 대선 중심에 선 'TV 토론'
2위 후보의 역전 등 결과적으로 판세를 뒤바꾸지는 못했지만, TV 토론은 언제나 큰 이슈를 만들어냈다. 법정 TV토론이 처음으로 의무화 됐던 1997년 대선이 해당된다. 당시 IMF(외환위기) 직후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가 불안한 1위를 기록하는 가운데 열린 TV 토론은 높은 주목을 받았다. 사상 첫 정권 교체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TV토론 시청률 55.7%는 여전히 최고 시청률 기록으로 남아있다. 김 후보는 당선 직후 정치 사상 처음으로 TV를 통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 만큼 영향력을 실감한 셈이다. 김 대통령은 해당 방송에서 IMF를 겪는 국민들에게 "화이팅"이라고 외쳤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TV토론. (왼쪽부터)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윤창원 기자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저격수로 나선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며 토론 '신스틸러(주연 보다 인상깊은 조연)'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박 후보의 토론 기피도 대선판의 큰 화두 중 하나였다. 박 후보가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성공한 전략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된 이후인 2022년 대선에서는 '토론 기피 전략'이 윤석열 후보에게 오히려 주홍글씨로 남게 됐다. 토론을 피하는 모습 자체가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면서, 압박으로 작용하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은 2012년 대선과 함께 야권의 분열과 일 대 다 구도가 펼쳐지면서 TV토론의 영향이 크지 않았던 선거로 남는다.
주목도 만큼 아쉬움도 큰 TV토론…이번엔 어떻게?
국회사진취재단한편, 토론 형식도 매해 대선에서 주요 이슈가 된다. 아무래도 다자 구도가 형성되다 보니 정보 제공 측면에서 토론의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토론 뒤에 "1대1 토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초청 대상 기준으로 △국회에 5석 이상 의석을 가진 정당 추천 후보자 △직전 대선·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지방의원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 추천 후보자 △언론 기관이 1월16일부터 2월14일까지 실시해 공표한 여론조사에서 평균 지지율이 5% 이상인 후보자 등 토론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는 방향으로 원칙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1:1 끝장 토론을 제안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선두 후보에게 1:1토론을 제안하고, 성사되지 않는 풍경은 매 선거마다 반복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과연 1:1 토론이 이뤄질 지 관심사다.
1:1 토론 대신 지난 대선에서는 토론의 역동성을 더하기 위해 일어서서 하는 '스탠딩 방식'이 도입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도 벌어졌다. 문 후보가 스탠딩 방식에 대해 호응을 안 하자 국민의당은 문 후보의 체력 부족 의혹을 꺼내들었다. 결국 문 후보는 "스탠딩 토론이든 끝장 토론이든 얼마든 자신있다"며 찬성하는 입장을 별도로 내야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떤 방식이 처음으로 도입돼 토론에 재미를 더하게 될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