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해 9월에 이어 5일 또다른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를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지난해 발사한 화성-8형 비행속도가 마하 3 정도에 그친 일과 달리 이번은 마하 5 이상으로, 실제 극초음속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미사일은 형태상으로도 화성-8형과 달라진 점이 포착된다. 상하좌우 변칙기동을 하면서도 실제 극초음속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선진국들이 개발한 최신형 극초음속 무기만큼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위협이 될 전망이다. 이 무기체계 특성상 공격이 방어보다 유리하기에 군 당국도 골치를 썩게 됐다.
군 당국, 공개 안했지만 비행속도 마하 5 이상으로 탐지…실제 극초음속에 상하좌우 변칙기동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6일 "국방과학원은 1월 5일 극초음속미싸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며 "발사 후 분리되어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의 비행구간에서 초기발사 방위각으로부터 목표방위각에로 120km를 측면기동하여 700km에 설정된 표적을 오차 없이 명중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시험발사를 통하여 다계단 활공도약비행과 강한 측면기동을 결합한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의 조종성과 안정성이 뚜렷이 과시되였다"고 밝혔는데, '측면기동'이 포인트다. 기존 KN-23 등을 통해 입증한 풀업 기동(pull-up, 하강단계 상승비행), 즉 상하에 이어 '좌우'로 궤도를 바꾸는 데에도 성공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탄도미사일(초록색 선)과 HGV(빨간색 선)가 비행하는 모습. 파란 점선은 레이더 탐지 범위.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Hypersonic Weapon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극초음속(hypersonic)이란 음속(340m/s, 마하 1) 5배, 즉 마하 5 이상을 뜻한다. 일반적인 탄도미사일도 상승단계 이후 표적을 향해 떨어지는 종말단계 등에서 마하 5 이상 속도가 나올 수는 있지만, 이런 형태를 극초음속 무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비행궤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극초음속 무기라고 부르려면, 이렇게 빠른 속도를 내는 상태에서도 순항미사일처럼 비행궤도를 자유자재로 바꿔 빠른 시간 내 원하는 표적을 원하는 비행경로로 타격할 수 있어야 한다.
탄도미사일을 1단 추진체로 하되 여기에 자체 추진력 없이 활공하는(gliding) 비행체를 실어 날려보내는 방식의 극초음속 무기를 극초음속 활공체(HGV)라고 부른다. 활공체엔 자체적으로 가속하는 엔진은 없고, 날개와 추력기(thruster, 자세 제어 등에 쓰이는 소형 로켓)를 통해 비행 경로를 바꾼다.
북한은 지난해 9월 화성-8형 발사 이후 이 미사일을 개량하거나 아예 다르게 개발한 미사일을 통해 비행속도를 더 빠르게 하고 상하좌우 변칙기동 능력 또한 갖춘 것으로 보인다. 1단 추진체는 화성-8형이 그러했듯이 화성-12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군 당국은 이번에 미사일이 기록한 속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마하 5를 넘겨 실제 극초음속을 기록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성-8형은 마하 3 정도를 기록해 합동참모본부가 "개발 초기 단계로, 현재 한미연합자산으로 탐지 및 요격이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마하 5를 넘기고 상하좌우 변칙기동 능력까지 갖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2단 형상이 화성-8형에서는 글라이더처럼 생겼지만 이번에는 곧은 원뿔에 더 가까운데, 위에서 볼 때는 둥근 원에 가까워진다"며 "이렇게 되면 활공할 때 공기저항을 덜 받게 되기 때문에 속도를 늘릴 수 있고 조종성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대응 가능하다"는 軍, 실제론 글쎄…특성 이용해 전략적 효과 노리는 北
5일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과 작년에 발사한 화성-8형(오른쪽). 탄두부 모양이 다소 다른 모습이다. 연합뉴스6일 북한 보도 이후 합동참모본부 김준락 공보실장(육군대령)은 정례브리핑에서 "다양한 한미정보자산으로 탐지했고, 대응이 가능하며 우리 군의 대응 능력과 태세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HGV 특성 탓에 속도가 빨라 레이더로도 잡기 어렵고, 열추적으로도 찾아내기 어렵다. HGV는 자체적으로 가속하는 엔진 자체가 없으며 방향을 바꿔주는 추력기와 날개만 있기 때문이다.
패트리엇 PAC-3,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SM-3 등 우리에게 익숙한 서방권 요격미사일들은 대부분 날아오는 미사일의 기존 궤도를 분석해 어디로 갈지를 예상하고, 그쪽으로 비행해 탄두를 직접 때리거나 근처에서 폭발해 화염과 파편으로 미사일을 파괴한다. 하지만 HGV가 중간에 비행경로를 바꿔 버리면 이렇게 요격하기도 어려워진다.
HGV를 제대로 막으려면 아예 처음 발사되는 상승단계에서 요격하거나, 발사 직전에 선제공격을 가해 파괴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려면 발사 징후를 미리 포착해야 하고, 그에 따라 요격(또는 공격)미사일까지 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 데다, 그 미사일 자체도 아주 빨라야 한다.
게다가 전시도 아닌 평시, 또는 둘의 구분이 모호한 회색지대(gray zone) 분쟁 상황에서 북한 상공에 떠 있는 미사일을 우리가 쏴 요격하거나, 북한 땅에 있는 발사대를 섣불리 선제공격했다가는 정치외교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요격이 어려운 이런 무기를 개발해 그동안 주장해 온 이른바 '자위적 국방력'이라는 논리를 관철시키는 한편, 전략적 효과를 달성하려 한다고 추정된다. 실제로 북한은 이 미사일에 대해 "극초음속미싸일 부문에서의 연이은 시험성공은 당 제8차 대회(8차 노동당 대회)가 제시한 국가전략무력의 현대화과업을 다그치고 5개년 계획의 전략무기 부문 최우선 5대 과업 중 가장 중요한 핵심과업을 완수한다는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고 자화자찬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한미일이 차세대 무기를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개발할 경우 북한 스스로 근미래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추정된다"며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 방어체계로 막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국방정책과 남북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으로, 대북정책의 딜레마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