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지난 2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의 몸통, 박근혜 특별 사면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이재용 면담과 박근혜 사면. 국정농단의 두 주역이 면죄부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 복권시켰다. 수감된 지 4년 9개월이 흘렀고,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수감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밝혔다. 여기에 국민통합이라는 명분도 내걸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밝힌 대로 국민통합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적 성향의 정당, 세월호 유가족까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반발해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세력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박종민 기자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사면을 반대했던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대통령의 결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황한 기색도 보인다. 국민의 힘도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살얼음판 같은 대선판도에 불리하게 작용할 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민들의 여론은 대체로 사면에 긍정적이다. 약 60%가 넘는 국민들이 사면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국민여론과는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이 과연 정당한 권한 행사인지 아니면 월권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사면은 명분과 이유도 중요하지만, 사면 대상자의 반성과 사죄가 가장 중요한 전제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 될 때나 재판과정에서도 자신의 과오에 대한 사과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 사법절차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박종민 기자박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을 모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달 말쯤 출간될 이 책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을 '믿었던 주변 인물의 일탈' 이라고 썼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받은 혐의는 21개에 이르고 이 범죄혐의가 입증되면서 받은 처벌은 징역 22년이다.
국정농단 사건과는 별개로 박 전 대통령은 공천개입혐의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멋대로 가져다 쓴 혐의도 있다. 이것도 주변인의 일탈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반성과 사죄가 없는 사면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두환씨의 사례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가석방된 이재용씨를 만났다. 물론 6대 그룹 총수가 함께 만나는 자리였지만, 사면과 복권이 이뤄지지 않은 이재용씨는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에 경영활동을 할 수 없다. 내년 7월까지는 보호관찰대상자다.
그럼에도 이재용씨는 출소하자마자 삼성 임원들을 만났고,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가하면, 240조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재벌 총수들의 청와대 회동이 이재용씨의 취업제한조치 위반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재용씨의 죄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것이다. 이는 촛불 시위를 불러온 국정농단 사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비선실세를 통해 이재용 전 삼성부회장에게 접근해, 삼성전자의 경영권 확보를 도와 줄테니 대가를 달라고 한 사건이다.
이한형 기자
이 전 부회장은 이 거래로 삼성전자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장악했고, 확인된 뇌물 액수만 86억원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또한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 51명 가운데 9명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단죄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사면이 이뤄진 것이다.
반성과 사죄가 없는 박 전 대통령과 가석방된 이재용씨. 이들은 이제 촛불시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물론 오랜 기간 수감 생활로 건강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주변인의 일탈'로 자신의 범죄를 외면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이재용씨 역시 수감생활을 1년 넘게 했지만, 법무부가 규정까지 고쳐가며 수감생활을 끝내도록 도왔고, 그 후에는 실정법을 사실상 위반하며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을 알면서도 청와대는 이재용씨에게 또 한 번 면죄부를 줬다.
박종민 기자
그 겨울 수많은 촛불이 전국에 일렁였고, 그 촛불은 부패와 무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촛불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권은 말기에 이르러 그 시계를 다시 촛불시위 이전으로 돌려놓은 것 같다.
그리고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며 박근혜와 이명박을 단죄했던 윤석열은 이제 문재인의 단죄를 외치고 있다. 정치인들의 가장 흔한 수사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말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역사의 평가가 내려질지. 평가의 주체는 그 해 겨울 촛불을 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