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쇼몽' 포스터. 연합뉴스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 '라쇼몽'은 인간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명작 중의 명작이다.
사무라이의 죽음을 놓고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 산적, 나무꾼은 재판장 앞에서 제 각각의 증언을 내놓는다.
이들 4명은 객관적 현상을 눈앞에 두고 서로 다른 주관적인 주장을 한다. 각자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이다.
이 영화는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인간을 그렸다.
'라쇼몽'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 거짓말하는 인간 기억의 주관성을 뜻하는 철학용어가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아내 김건희씨는 26일 회견에서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었다"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사과 입장문을 발표를 위해 발언대로 이동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부끄러운 일"이라며 사과했지만 어떤 해명도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없었다.
1100자의 사과문을 관통하는 것은 '부풀려졌을 뿐 허위는 없다는 것'이다.
김건희씨의 회견 직후 국민의힘 선대위가 배포한 해명서 역시 3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부풀려졌다" "잘못 기재했다" "부정확한 기재"였다는 것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고, 때렸지만 폭행은 아니며, 강간했지만 성폭행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김건희씨가 정작 하고싶은 말은 "(위기에 처한) 남편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말아달라"는 당부가 커보였다.
어쩌면 범죄일 수도 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해명보다 '존경하는 남편'을 지켜달라는 감성이 돋보인 회견이었다.
김건희씨에 앞서 라쇼몽의 그림자가 어울거린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아내 정경심씨다.
정씨는 자녀의 입시를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위조한 표창장 한 장이 문재인 정부의 가증스런 위선의 밑바닥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 댓가로 정경심씨 집안은 수십 차례의 압수수색과 수만 건의 언론 기사로 도배질을 당했다.
일가족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러나, 국민적 법 감정은 정경심씨를 동정하지 않는다. 범죄 앞에 감성은 우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부풀려진 것'과 '위조'한 것의 법률적 차이는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마치 '라쇼몽' 등장인물들의 자기 주장처럼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는 있다. 정경심씨는 사실관계가 검찰에 의해 낱낱이 공개됐지만 김건희씨 경력의 실체는 여전히 의문 투성이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경심씨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혹독한 책임을 지고 있고 김건희씨는 여전히 책임을 벗어나 있는 점이다.
김건희씨의 '부풀려지고 잘못 기재된' 경력들이 누적돼 오늘의 김씨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깨져버린 '공정과 상식'이 쌓이면서 윤석열 대선후보가 탄생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창원 기자그런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이 최근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의 역전된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명확한 해명도 없고 책임도 지지않는 그저 익숙하게 보아왔던 정치인의 모습이 윤석열에게 보인다.
"부풀렸지만 허위가 아니다"라는 말은 '속였지만 사기죄가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영화 '라쇼몽'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용서받지 못한다. 관객들은 그들의 주관적인 해석과 거짓말을 인간본성이라고 이해할지언정 거짓말 자체에 공감해주지 않는다.
정경심에게 윤석열이 들이댔던 잣대만큼만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 대선후보만큼은 '라쇼몽'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