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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당구장 여주인' 돌고 돌아 마침내 준우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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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해태 PBA-LPBA 챔피언십' 결승 경기를 펼치는 윤경남. PBA'크라운해태 PBA-LPBA 챔피언십' 결승 경기를 펼치는 윤경남. PBA
17년 전 당구장 여주인이 돌고 돌아 결국 화려한 프로 무대의 결승까지 올랐다. 한국 3쿠션 여자 선수 1세대로 시작해 현역에서 물러나고 당구장 사업까지 접는 우여곡절 끝에 어엿한 정상급 프로로 우뚝 섰다.

프로당구(PBA) 여자부 베테랑 윤경남(44)이 생애 첫 결승 무대에 올랐다. 윤경남은 지난 13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열린 '크라운해태 PBA-LPBA 챔피언십' 여자부 준결승에서 이지은을 3 대 2로 제쳤다.

꿈에 그리던 결승에 올랐지만 22살 천재 김예은(웰컴저축은행)의 패기에 밀렸다. 김예은은 첫 세트를 뺏겼지만 거침없이 내리 네 세트를 이겨 4 대 1(10-11 11-6 11-7 11-8 11-9) 역전으로 우승을 일궈냈다. 김예은은 지난 시즌 SK렌터카 챔피언십 당시 남녀부 통틀어 역대 최연소(21세 7개월) 우승 이후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윤경남의 준우승도 값졌다. 굴곡진 당구 인생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도전한 끝에 이뤄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윤경남은 2004년 서울 안암동에서 당구장을 시작했고, 2014년까지 이듬해 결혼한 남편과 운영했다. 고려대생 등 인근 동호인들에게 '고수 누나'로 불리며 친절하게 레슨도 해줬다. 그런 윤경남은 2006년 서울연맹에 선수로 등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당구장 운영과 가정일, 여기에 출산까지 해야 했던 터라 2년 만에 은퇴해야 했다. 윤경남은 "당시 선수들은 월례 대회를 해야 했는데 그것도 부담이었고 결혼한 지도 2년이 넘어 아이를 낳아야 했던 터라 선수 생활을 접었다"고 돌아봤다.

2015년부터는 안암동에서 중랑구 서일대 앞으로 당구장을 옮겼다. 윤경남은 남편의 배려 속에 동호인 대회에 출전해 여전한 실력을 뽐냈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코리아당구왕'에 나선 윤경남은 2018년 왕중왕전에서는 4구 정상에 올랐고, 3쿠션도 준우승을 거뒀다.

그러던 중 윤경남은 PBA 출범 소식을 들었고 도전을 택했다. 당구장 사업도 접고 본격적으로 선수로 나설 생각이었다. 대한당구연맹 등록 선수가 아닌 동호인이라 랭킹이 없어 프로 테스트인 트라이아웃을 거쳐야 했다.

윤경남은 "사실 트라이아웃에서 떨어져 예비 6순위로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운 좋게 순서가 와서 프로에 데뷔할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PBA가 출범한 2019-2020시즌 윤경남은 네 번의 대회에 출전해 '메디힐 챔피언십'에서는 9위에 오르기도 했다.

'크라운해태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예은을 격려하는 윤경남. PBA'크라운해태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예은을 격려하는 윤경남. PBA

여세를 몰아 지난 시즌 개막전인 'SK렌터카 챔피언십'에서는 5위까지 올랐다. 윤경남의 첫 8강 진출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8강전 상대가 김예은으로 윤경남은 1 대 2로 지면서 4강이 무산됐다.

올 시즌 윤경남은 첫 3번 대회에서는 부진했다. 개막전 32강, 이후 두 번은 64강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4번째 대회에서 마침내 첫 4강은 물론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윤경남은 "이전에는 훈련을 많이 해서 부담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비우고 즐기자 했더니 결승까지 와서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김)예은이가 잘 쳤고 결승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경남은 김예은이 우승 뒤 준비한 소감을 적은 종이를 잃어버리자 큰 언니처럼 찾아서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남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윤경남은 "훈련 때문에 매일 나가니까 집에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이해해줬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아들이 친구들 13명과 SNS 단체방을 만들어 응원해줬다고 하더라"면서 "그런데 지는 경기를 보여줬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그래도 대견하고 뿌듯했다"고 엄마의 미소를 지었다.

특히 베테랑 선수들은 물론 중장년 팬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자부심이 있다. 윤경남은 "제 또래 40대 선수들이 5명 정도 있는데 워낙 젊은 선수들이 잘 해서 우리는 안 되나 보다 침체돼 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내가 결승에 오른 걸 보고 '나도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오지연, 박수아, 양승미, 이향주 등이 예전 선수 등록을 비슷한 시기에 했고 쭉 선수로 뛰었다"면서 "나는 동호인에서 다시 선수로 왔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오니까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 남자부 우승자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지난 대회 우승자 에디 레펜스(SK렌터카)도 50대인 만큼 LPBA 선수들도 관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윤경남은 "사실 러키샷도 많이 나오고 운이 많이 따라준 대회였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한번 와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우승은 모르겠지만 향후 성적은 더 열심히 해서 8강 안에 자주 들도록 하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밝혔다. 당구장 사업을 접은 뒤 대형 당구 클럽 직원이었던 윤경남은 이제 온전히 선수로서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이다. 17년 전 당구장 여주인이 프로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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