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생:'작아지는 대한민국'을 준비하는 법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

편집자 주

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2067년엔 월급의 절반을 떼일 수도?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3900만 명으로 쪼그라듭니다. 그중 절반은 고령자입니다. 빽빽한 인구밀도의 수도권과는 달리 지방은 텅 비어 있습니다. 세금 낼 사람이 줄어 생산연령인구 1명당 노인 1명을 부양합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노년부양비 등 명목으로 월급의 절반을 원천징수 당합니다. 공상과학 아니냐고요? 합계출산율 0.84명이라는 초저출생 기조가 이어지면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폐업'하는 중입니다
서울시 관악구의 한 산부인과. 5년 전만 해도 분만 건수가 연간 2000건에 달했지만 지금은 600건이 채 안 됩니다.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한 산부인과는 41곳. 신규 개원한 34곳을 앞질러 총 7곳이 줄었습니다. 지역 산부인과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문제도 파생됐는데요, 바로 '고위험 임신' 산모의 건강한 출산입니다.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명. 저출산이 천천히 진행된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브레이크 없이 너무 빠른 시간에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 속도, 늦출 순 없을까요?
 
    
에너지가 없으면 자동차가 달릴 수 없듯
사람이 없으면 성장도 없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7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전망한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여기엔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시나리오가 담겼는데요, 놀랍게도 두 시나리오 모두 203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각각 0.92%와 0.86%로 내다봤습니다. 성장률 0%대의 나라.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곧 닥쳐옵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반드시 받는다고 국민연금공단은 말합니다. 그런데요, 국민연금 적립금이 수급자 증가로 인해 2054년에 소진된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2051년부터 연금 수급 예정인 기자는 어째 불안하기만 합니다. 평생 정부 말만 믿고 보험료를 원천징수 당했는데, 3년만 받고 끝나는 걸까요? 안전한 노후 보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연금 개혁입니다.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5천 명의 전남 고흥군 포두면. 이곳은 30년 뒤 대한민국 행정구역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고령자들만이 마을의 명맥을 잇고 있죠. 포두면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이 소멸 위험에 놓였습니다.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지방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지방 소멸 속도도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 삽니다. 서울 등 수도권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수록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그에 따른 부산물 중 하나가 열악한 주거 환경입니다.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이란 까마득한 미래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줄면 군대도 당연히
작아집니다. 1990년대 48만여 명이었던 병역의무자는 올해 29만 명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지난해 출생아 중 남아는 13만여 명. 이들이 병역판정 검사를 받는 2039년엔 20세 병역의무자가 겨우 13만여 명뿐이라는 얘기죠. 현재 우리나라 병력은 징병과 모병이 각각 6 대 4로, 사실상 '징모혼합제'로 운용되고 있는데요, 인구절벽에 대비한 병역제도 개편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
이른바 '벚꽃엔딩' 공포감이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올해 신입생 충원율은 84.5%에 그쳤는데요, 특히 지방대를 중심으로 1만 명 넘는 대규모 미달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초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대가 직격탄을 맞은 겁니다. 인구 감소의 고통은 강도와 깊이를 달리하며 지역별로 차별적으로 스며듭니다.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아요
"집도 돈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하고 애를 낳죠?" (28세 남성), "여성이 일하면서 아이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39세 여성), "월급은 적은데 금수저인 사람이 국가 지원받는 게 현실이죠." (40세 여성), "당장 집도 없는데 20대 후반 자녀한테 왜 결혼 안 하냐고 묻기도 민망해요." (50세 여성)
일이 없어 일을 못 해요
한국경제연구원이 청년 542명을 설문조사했더니 62.9%는 청년 일자리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 70.4%는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되기 어렵다고 봤죠.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20대 청년 고용률은 55.7%였고, 청년 구직단념자는 2015년보다 18% 증가한 21만여 명이었습니다. 근본 원인이요? 질 좋은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집값은
결혼과 출산 기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2.5%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가장 노력해야 하는 부문으로 '주거문제 해결'을 꼽기도 했는데요. 정부가 신혼희망타운 등을 공급하고는 있지만,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죠. 안정적인 '내 집' 없이 자녀는 '언감생심'이란 판단 끝에 초저출생 시대가 이어집니다.
    
15년간 저출산 대책에 투입된 예산은
자그마치 380조 원.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최저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출산 대책 효과가 맹탕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상당수의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었던 거죠. 청년과 무관한 창업 지원, 프로스포츠팀 지원, 인문학 강화 등이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해 있는 식이었습니다. 저출산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땅끝마을로 유명한 전남 해남군은
출산장려금으로 첫째아 300만원, 둘째아 350만원, 셋째아 600만원, 넷째아 이상은 720만원을 각각 지급합니다. 다른 기초자치단체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액수죠. 그런데 출산장려금이 인구 감소를 막거나 증가시키는 데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심지어 출산장려금만 받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먹튀 논란'까지 불거졌죠.
사회가 내 꿈을 포기시켰다
임신·출산·육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박한 시선 속에서 여성들은 갈림길에 섭니다. 육아냐, 직장이냐. 그리고 상당수의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일터를 포기합니다. 여성 고용률은 결혼과 출산이 맞물리는 30대에 현저히 떨어졌다가 육아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서서히 상승하는 'M자' 곡선을 그립니다. 육아휴직자 3명 중 1명은 직장에 제대로 복귀하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죠. 사회가 경력단절 여성을 양산하고 있는 겁니다.
'집안일은 여자가, 바깥일은 남자가 한다'는
고정관념은 옛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가사분담은 부부가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가고 있죠. 그런데 현실은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맞벌이 가정의 73.3%는 여전히 아내가 주로 집안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결혼 후 여성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청년들은 더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초저출생 시대의 정부 대책은
'출생 지원'과 '축소 적응' 두 갈래로 나뉩니다. 떨어지는 출생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노력과 함께, 이미 시작된 인구 축소에 사회·경제적으로 적응·대응해나가는 방향인데요. 이런 정책 기조는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일자리란
①정규직이면서 ②중위소득 이상의 소득을 얻고 ③4대 보험이 보장되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고용 안정성을 위해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전 국민 고용보험' 등은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일자리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급증한 만큼 이제는 새로운 노동 정책이 필요하죠.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한 주거 지원은
아이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추가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해외 선진국들은 자녀 수 증가에 따른 점증적인 지원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프랑스는 부양가족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추가로 주거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을 일부 따라가고는 있습니다. 다자녀 지원 기준을 기존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한 게 대표적이죠.
    
출산과 돌봄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내년부터 육아휴직을 허용한 우선지원대상기업 사업주에게 월 30만원씩 육아휴직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우선지원대상기업에 지급하는 출산육아기 대체인력지원금도 점차 증액되는 추세죠. 돌봄을 사회적 책무로 인식하는 기업들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으려 직장어린이집을 증설하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대량생산형 학교에서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육부는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치닫는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2025년 외고·자사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고, 모든 일반고에 고교학점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습니다. 교육시스템의 판 자체를 갈아엎는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죠.
군대도 다운사이징에 대비해야
지속가능합니다. 병력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한번 군에 들어온 전문인력들이 안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죠. 다만, 여성 징병제가 뾰족한 대안은 아닙니다. 대신에 장교의 관문을 넓히고 연령 제한을 완화한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잡 예비군'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요.
     
인구 위기를 극복하려면 대통령의 의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내년 3월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앞다퉈 저출생 공약을 내놓고 있는데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출산휴가·육아휴직 자동등록제'와 기본소득 공약 등을 내놨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육아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늘리고, 난임시술 지원 소득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의당 심상정·국민의당 안철수·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는 직접적인 출산 지원책보다는 결혼과 출산을 돕는 '살기 편한 세상' 만들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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