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열린 삼성전자 제52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이 소개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이재용 부회장, 10월 25일)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가치 있게 변화시키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초일류 100년 기업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김기남 부회장, 11월 1일)
故(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1주기와 삼성전자 창립 52주년을 맞아 각각 이재용·김기남 부회장이 내놓은 메시지다. 공통적으로 '변화'와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뉴 삼성'을 이끌 이 부회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1일 경기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임직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2주년 창립기념식을 열었다. 김기남 부회장은 "경영환경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변화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부회장은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빅뱅이 도래할 것"이라며 "고객과 인류 사회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마음껏 꿈꾸고 상상하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특히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삼성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변화시키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초일류 100년 기업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다짐했다.
1일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창립 52주년 기념식 모습. 삼성전자 제공이날 창립기념식에는 김 부회장을 비롯해 김현석 대표이사 사장(CE부문장), 고동진 대표이사 사장(IM부문장) 등 경영진과 임직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예년처럼 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별도의 메시지도 따로 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대신 지난달 25일 1주기를 맞은 부친의 흉상 제막식에서 "고인에게 삼성은 삶 그 자체였고, 한계에 굴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으로 가능성을 키워 오늘의 삼성을 일구셨다"며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지난 8월 가석방된 이후 처음으로 임직원을 향해 발표한 공식 메시지로, 창업 3세대로서 '뉴 삼성'을 키워드로 선포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이날 창립기념식에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는 이 부회장의 발언이 소개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3개월 가까운 잠행을 털고 조만간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부회장은 지난주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아 '사법 리스크'를 일부분 덜어냈다. 김 부회장이 이날 '경영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언급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프로포폴 불법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이 부회장은 마침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의 재판에서 여유 시간을 얻었다. 이 재판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속행되는데, 오는 18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유로 열리지 않는다. 11일 공판 이후 25일까지 2주가 주어진다. 미국 내 파운드리 제2공장 투자 계획의 최종 결정을 위한 미국 출장도 충분한 시간이다.
'뉴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규 투자도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2017년 9조원을 들인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중단된 상태다.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액은 9월말 현재 120조원이 넘는다. 자동차 반도체 업계 2위인 네덜란드의 NXP 등이 잠재적인 인수 대상으로 거론된다.
재계에서는 특히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이목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4세 경영 승계 포기를 선언했다. 삼성전자와 주요 관계사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맡긴 지배구조 개편 관련 외부용역은 올해 하반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삼성은 BCG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내부 검토를 거쳐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전망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지주회사 설립, '미래전략실' 같은 콘트롤타워 부활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의 일부 사업부가 매각되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된다는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연말에 발표될 정기 임원인사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처음으로 단행된 지난해 인사에서는 김기남 부회장,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기존 대표이사 3인 체제가 유지됐다. '뉴 삼성'을 선언한 이 부회장은 공석인 회장으로 승진하거나, 새로운 삼성을 이끌 새 얼굴을 발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