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와 누리플렉스가 교체를 추진중인 스마트미터와 구성 부품들. 누리플렉스 홈페이지 캡처정부가 1조 원 가량 드는 가정용 스마트 전력계량기(AMI) 보급사업을 추진하면서 예비타당성조사 조차 실시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해 설치초기부터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특히, (주)누리플렉스 단 한 곳의 회사에 사업물량을 몰아줘 특혜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해당 회사는 282억 원의 예산지원을 받았지만 올해초까지 스마트 전력계량기는 1대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
AMI는(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양방향 통신망을 이용해 전력사용량, 시간대별 요금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지능형 전력계량 시스템을 말한다.
'졸속 추진' 전기계량기 교체사업 표류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한국판 뉴딜사업 가운데 하나로 추진되는 '아파트 스마트 전력계량기 보급사업'의 사업자로 누리플렉스를 선정했다. 정부와 누리플렉스는 총 3차례에 걸쳐 사업추진계약을 체결한다. 2020년 11월, 2021년 1월, 2021년 4월 3차례다.
산업부가 구자근 의원(산업통상중소기업위원회)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누리플렉스는 아파트 계량기를 바꿔 달아주는 대가로 2020년 11월 14일 70억 5천만 원, 2021년 2월 18일 141억 원, 2021년 4월 8일 70억 5천만 원 등 총 282억 원의 사업비를 정부로부터 지급받았다. 그리고 2021년 9월 29일 292억 8천만 원을 추가로 지급받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 지 마지막으로 사업비가 지급된 2021년 4월8일 기준으로 단 1건의 스마트 전력계량기 설치실적도 없었다. 이 사업은 아파트의 전력계량기를 지능형 전력계량시스템으로 교체해 가정의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이겠다는 좋은 목적인데도 실적이 전혀 없는 상황.
누리플렉스 사업 연도별 사업비 집행 및 설치 현황(단위 : 백만원). 구자근 의원실 제공AMI를 통해 실시간 전력사용데이터를 가정에 제공해 소비자의 자발적 절전을 유도하겠다는 사업목적과 무료로 전력계량기를 바꿔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이 표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계량기 교체 목표는 500만 대 이지만 현재까지 12만 5천 대가 교체된 데 불과하다.
정부예산 282억 원 집행 VS "사업실적은 0"
계량기 교체를 위해서는 해당 주민들의 동의가 필수지만 주민들이 동의가 생각 만큼 쉽지 않은 것이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구자근 의원은 "누리플렉스가 작년 단독 응찰한 물량 40만호는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 연말까지 설치를 완료해야 했지만, 작년말 기준 설치 실적은 0건으로 단 한 건도 없었지만, 사업비는 282억 원이 전액 지급됐다"고 지적했다. 3차 사업기간(6.30.)인 6.28일 기준으로도 설치대수 8849호, 희망 가구 9만 7758호로 목표 가구 40만 호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사업이 추진 초기부터 표류하는 데는 크게 3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아파트 계량기를 바꿔달아 전력 소비를 줄이고 관련 데이터의 사용도를 높인다'는 목적에 대한 검증이 선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 7월 범정부적으로 추진된 디지털 뉴딜사업의 패키지 가운데 하나로 포함됐다. 사업 추진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급작스럽게 추진된다. 이 사업의 예산이 첫 반영된 건 뉴딜 발표 1달 전인 2020년 6월 3차 추경 때로, 당시 282억 원이 반영됐다. 2021년 976억 원, 2022년 2267억 원 등 총 7050억 원이(예산50 : 민자50)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인데 웬일인 지 사전 타당성 조사가 없었다.
"뉴딜 끼워 넣으려 예비타당성 조사 생략"
구자근 의원실은 "정부가 서둘러 사업을 뉴딜에 끼워 넣으려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건너 뛴 것 같다"고 지적했다. 타당성 조사가 선행됐다면 시장 여건이나 기술 개발 정도 등을 면밀히 검토했을텐데 이를 건너뛰다 보니 사업이 초기부터 표류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둘째,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가 주어졌다는 의혹이다. 산업부는 사업 추진을 위해 2020년 3번 입찰을 실시하고 2021년 1번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실시한다. 2020년 10월 최초 입찰은 유찰됐고 2,3차 입찰은 (주)누리플렉스가 단독 응찰해 사업자에 선정됐다. 2021년 4월에는 누리플렉스 등 2개 업체가 경쟁했으나 누리플렉스로 낙찰됐다.
2020년 가정용 스마트 전력 플랫폼 사업 입찰 내역. 한국전력 제공문제는 사업추진이 2개년에 걸쳐 1개 업체에 몰아주기 양상으로 진행된 점, 정해진 사업기간 내에 예산만 지급받고 설치 실적이 '0'인 동일 업체에 또다시 사업기회를 준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기간 (주)누리플렉스 주가 폭등"
구자근 의원은 "2차 공고를 통해 선정된 누리컨소시엄의 성과가 전무함에도 계약체결 15일 뒤 3차 공고, 또다시 단독응찰 기회를 제공해 총 282억을 확보하게 했다"는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잇따른 사업수주에 힘입어 코스닥 상장회사인 누리플렉스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무리 계약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계약내용에 명시된 사업추진 실적이 없는데도 4차례에 걸쳐 꼬박꼬박 수백억 원의 사업비를 지불한 데 대해, "국비가 아닌 내 돈으로 사업하는 사업자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혜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촉구했다.
끝으로 정부가 급한 김에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니 국민들은 사업추진의 문제점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고서야 스마트 계량기사업의 실체를 알게 됐고 홍보 또한 미흡해 계량기를 교체해야할 지 말아야할 지 판단할 근거가 부실하기 그지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아파트 주민들이 망설이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