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저출산 예산'은 느는데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
스마트이미지 제공 지난 15년 동안 한국 정부가 38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사업을 알고 계십니까? 심지어 이 사업은 그동안 처절할 정도로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거뒀고, 앞으로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앞으로 더 많은 투자가 불가피한 사업, 바로 '저출산 대책'입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저출산 예산'을 처음 편성했던 때는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15년 동안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된 사업의 총예산액을 모두 합하면 결산 기준(2019~2020년 계획 기준) 380조 2천억 원에 달합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태어난 출생아 수를 모두 합치면 626만 1467명이니까 단순히 나눠서 계산하면 아이 한 명을 낳을 때마다 6070여만 원씩 예산이 투입된 셈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출생률은 해마다 가파르게 추락했습니다. 2006년 출생아 수는 약 45만 2천명,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132명이었는데요. 지난해 출생아 수는 그 절반 수준인 27만 2천여 명으로, 합계출산율은 0.837명으로 떨어졌습니다.
매년 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지만, 그때마다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는 '저출산 예산'.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인문학 강화'가 저출산 대책?…'깜깜이 예산'
지난달 감사원과 국회 예산정책처는 잇따라 정부의 저출산 예산·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보고서 모두 저출산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는 '깜깜이 예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저출산 대책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들이 저출산 대책으로 포함된 사례도 발견됐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을 청년과 무관하게 단순히 창업을 지원하거나, 프로스포츠팀을 지원하거나, 대학 인문학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되는 식입니다.
한편 정부가 2013년부터 실시한 무상보육·교육(누리과정)은 유치원의 방과후과정비 등이 물가상승률보다 크게 증가해 학부모 지출비용만 늘린 점도 지적됐습니다. 또 신혼부부·청년 주거를 지원하는 사업이나 전세자금 대출도 관련 수요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효과가 낮은 사업들을 추진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최성은 선임연구위원은 우선 '저출산 예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사용된다고 지적합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애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만을 위한 정책, 사업은 없다"며 "각자 고유의 목표가 따로 있는 사업들을 놓고 출산 효과를 가져올 부분이 있으면 일단 모아서 저출산 예산이라고 통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초저출생이 심각한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저출산 예산 사업도 급격히 확장됐습니다. 2006~2010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계획했던 예산은 40조 3천억 원이었는데, 지난해까지 실행됐던 제3차 기본계획 예산은 197조 5천억 원으로 5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지자 각 부처가 이를 명분으로 과도하게 관련 사업 예산을 확대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며 "당연히 세밀하게 설계하고 효과를 따져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저출산 해결을 이유로 필요 이상으로 예산이 확대돼 예산 대비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고 진단했습니다.
'직접 지원 사업'이 현금 살포? 사실은…
스마트이미지 제공 이런 맥락에서 특히 주목받는 지점이 직접 지원 사업의 비중입니다. 보통 출산·보육·난임 가정에게 각종 수당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직접 지원 사업, 고용이나 주거, 교육 등 아이를 낳고 기를 여건을 마련하는 사업을 간접 지원 사업이라고 합니다.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핑계로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며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직접 지원 사업 예산 비율은 1.43%로, 2~3% 수준인 해외 선진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 김근진 부연구위원은 "현재 전체 저출산 정책 예산 중 간접 지원 예산 비중이 60%를 넘었다"며 "전체 저출산 예산 총액이 확대되면서 충분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는 '착시 효과' 때문에 정작 출산과 육아에 직결되는 직접 지원 예산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접근에 주의할 지점도 있습니다. 우선 저출산 문제에 직접 지원 사업이 간접 지원 사업보다 반드시 더 효과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초저출생 배경에는 다양한 사회구조적 문제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어떤 사업이 얼마나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될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급격하게 저출생 문제를 겪고 있어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쉽지 않습니다.
출산 문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중장기 과제입니다. 지금 당장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려면 수년이 걸립니다. 더구나 이미 저출산 문제가 장기간 지속돼 아이를 낳을 연령층 자체가 크게 줄어든 현재의 인구구조로는 극적인 출생률 반등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저출산 대책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정처는 "(정부 대책에 따른 결혼·출산 여건) 변화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을 확신하고 생애에 대한 전망을 바꾸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단기적인 차원에서 출산율을 제고하는 정책대응보다는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조성하는 정책을 펼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컨트롤타워 기능 못하는 저출산위…"정부·국회도 반성하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그렇다고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부는 현재 5년마다 저출산 대책의 목표와 정책 틀의 기반이 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우는 등 다양한 정책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각 부처와의 사업을 조정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이 저출산위가 충분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감사원은 저출산위가 내부 업무 분배에도 실패했고, 저출산 대책 사업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관련 기사
"저출산 컨트롤타워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최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 사업을 새롭게 벌이고 예산을 확대하면 가시적으로 성과가 보이지만, 부처들이 내놓은 사업을 조정하는 일은 하기 어려우면서도 눈에 띄지 않아 저출산위가 소홀했던 경향이 있다"며 "단순히 저출산 대책의 덩치를 키우는 일보다 사업을 검토하고 재정비하는 작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저출산위의 역할과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관련 예산을 저출산위가 키를 잡도록 한곳에 모으고, 컨트롤타워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 실패의 책임이 무조건 저출산위에 있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저출산 대책은 저출산위의 5개년 기본계획에 일단 담기지만, 다른 정부 사업과 마찬가지로 매년 국무조정실의 정부부처 업무평가로 검증받습니다. 또 예산을 편성할 때는 기획재정부가 심사해 정부 예산안에 반영하고, 국회가 이를 심의해 확정합니다. 즉 저출산위뿐 아니라 정부와 국회도 저출산 대책 사업을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종서 인구정책연구실장은 "저출산위는 정권이 바뀌는 등 시기에 따라 수시로 조직과 소속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며 "아직도 매우 제한된 권한만 갖고 있는데, 저출산 정책의 문제점을 모두 저출산위가 해결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연구실장은 "정부의 재원을 배분하고 사업을 편성하는 권한은 정부 각 부처가 갖고 있고, 부처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입장이 다른 경우도 많다"며 "비단 저출산위에 저출산 문제 해법을 맡겨두지 말고 정부 부처 전반에 걸쳐 저출산 문제의 시급성을 공유해 공감대를 갖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공통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