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제공바야흐로 '탄소 중립' 시대다. 국내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탄소 중립'이 들어간 뉴스를 검색했더니 지난 20일 0시부터 자정까지 24시간 동안 무려 709건의 기사가 나왔다. 기사의 내용도 각양각색이었다. 군민(郡民)에게 참여를 독려하거나 석탄발전의 미래에 우려를 표하고, 기업들은 탄소 중립 실천에 박차를 가한다.
지금 이 기사를 읽는 일부 독자들은 의구심이 들 것이다. 탄소 중립이 뭐기에 이렇게들 '호들갑'인가 싶어서 말이다. 단언컨대 탄소 중립은 이미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는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찬찬히 뜯어보기 전에 먼저 올 초로 돌아가본다.
조 바이든 美대통령의 '트럼프 뒤집기' 첫 행보는 파리협정 복귀
지난 1월 20일 오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파리 기후변화협약 복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취임식 직후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오랫동안 하지 않은 기후변화와의 싸움을 돕겠다"고 천명했다. 세계 최강대국 신임 행정부의 첫 행보가 일종의 '트럼프 뒤집기'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취임식 직후 '파리협정' 복귀 등 각종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그는 "파리협정은 미국의 에너지 업계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반면, 외국 기업은 처벌 없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허용해 왔다"면서 국제 공조를 통한 문제 해결을 부정했다.
지난달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기후변화라는 과제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 공조에 힘을 실었다. G7은 가능한 일찍, 늦어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매년 개발도상국을 위해 연간 1000억 달러의 국제 기후변화 재원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EU, 국경 넘는 탄소에 세금 부과…사상 초유의 탄소국경세
유럽에서는 국경을 넘는 탄소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대규모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세계 처음으로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제안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중 역내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다.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을 대상으로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아울러 2035년부터 EU 내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한다. 전기차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각 회원국은 2025년까지 주요 도로에 최대 60km 구간마다 공공충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이번 EU 집행위의 제안은 27개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협상 및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시행까지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논의 과정에서 내용상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룬다는 목표만큼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EU는 사상 최초의 탄소 중립 대륙을 꿈꾸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제시한 2050 탄소중립 이정표. '2050년 넷제로-글로벌 에너비 부문을 위한 로드맵' 보고서 발췌탄소 중립은 탄소 배출량과 감축량이 같아 순배출이 '0'이 되는 상태
탄소 중립이 뭐기에 미국이고 유럽이고 이렇게들 '호들갑'일까. 탄소 중립은 사실 그 실천의 어려움을 떠나 매우 간단한 개념이다. '중립'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즉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된다. 영어로는 Net-Zero, 순(純) 양이 '0'이 되는 상태를 뜻한다.
탄소 중립은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이다. 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가령 인간의 활동으로 탄소 10개(에너지 환산과 배출기준 단위인 1TOE, tCO2eq 등은 추후 설명)를 새로 배출했다면 대기 중에 있는 탄소를 그만큼 제거해 더 이상 탄소가 늘어나지 않게 하는 개념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되,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흡수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간단한 개념이지만 그 실천은 매우 어렵다. 2016년 전 세계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약 461억4095만톤(CO2eq)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1990년부터 매년 1.6%씩 늘어나고 있다.
온실가스? 탄소? 이산화탄소? '탄소 중립'은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
참고로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 의해 삭감 대상으로 꼽힌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화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유황(SF6) 등 6가지다.
이 중 이산화탄소는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나머지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환산톤(tCO2eq)으로 계산하는 등 온실가스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또 이산화탄소와 탄소는 엄밀히 말하면 다른 물질이지만, 석탄·석유 등 화석 연료와의 '결별'이라는 의미를 더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행위를 '탄소 중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탄소를 왜 줄여야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더 이상 지구가 뜨거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최근 독일과 벨기에에 이어 중국을 덮친 '대홍수'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북미 서부지역은 지난달 중순부터 '100년만의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가 기후변화를 늦출 준비는 물론, 이와 공존할 준비도 안 됐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행히 국제사회는 탄소를 줄여 지구 온도 상승을 늦추기로 이미 약속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파리협정'이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한 파리협정에는 197개국이 참여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보다 훨씬 아래(well below)로 유지하고, 나아가 1.5℃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합의했다.
전지구 온도상승을 왜 1.5℃로 막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표. 대한민국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y)에서 발췌2016년 12월 발효된 파리협정보다 한걸음 더 진전된 합의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나왔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제48차 총회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승인하고, 1.5℃ 목표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이미 배출된 탄소를 더 빠르게 줄여야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할 수 있다. 제48차 IPCC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 발췌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으로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한다. 나아가 2050년까지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
2021년 7월 뜨거워진 지구는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 30년 사이 평균 온도가 1.4℃ 상승했다. 최근 서유럽을 강타한 홍수나 북미 서부 지역을 덮친 폭염 같은 재해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 이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은 없다. 이런 재해가 기후변화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훨씬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수두룩하다.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지금이라도 제어하기 위해서는 '2050 탄소중립'의 실천을 더는 늦출 수 없다. 탄소 중립의 과정에서 교통, 난방, 조리, 도시계획과 일자리까지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이미 바뀌고 있고, 앞으로는 송두리째 바뀔 것이다. 다음에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각국의 탄소 중립 대응 준비 등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