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길 걷고자 했던 김경수…'디비진 경남' 두고 3년 만에 중도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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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보수 텃밭서 지사직 당선 '경남' 뒤로하고 드루킹 족쇄에 3년 만에 불명예 퇴진
"배운 대로 하겠다" 노무현 길 걷고자 했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의 꿈 좌절
유죄 확정 입장문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 벽에 막혔다고 진실이 바뀔 수 없어"
"무엇이 진실인지 최종적 판단은 국민의 몫으로 넘겨드린다"

도청 나서는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도청 나서는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처음으로 디비졌던 '경남' 뒤로하고 3년 만에 불명예 퇴진

"보수 세력의 절대적 기반이었던 경남이 디비졌다(뒤집혔다)."

보수 텃밭 이상의 자존심과도 같은 지역인 경남에서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단 첫 김경수 지사는 한마디로 '디비졌다'라는 평가를 받고 당당하게 경남도에 입성했다.

2010년 무소속으로 당선된 김두관 전 지사를 제외하고는 줄곧 보수당이 차지했던 터라 그 의미와 상징성은 더 컸다.

그러나 도지사 후보 시절부터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았던 '드루킹' 족쇄를 풀지 못한 채 3년 만에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대법원은 21일 김 지사의 댓글 조작 혐의에 대해 유죄(징역 2년)를 확정했다.

역대 민선 경남지사 중에 형사처벌을 받고 지사직을 상실해 퇴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홍준표 전 지사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돼 혐의를 완전히 벗어난 적은 있었다.

김 지사는 출마를 고심하던 때부터 '드루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정면 돌파로 승부수를 띄워 2018년 4월 김해을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는 각오로 나가 그해 6월 당시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42.95%)를 누르고 52.81%의 득표율로 당선에 성공했다. 당시 6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선거의 달인' 김태호 후보에게 첫 패배를 안겼다.

임기 내내 '드루킹 사건' 관련 재판을 받다 보니 도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고, 야권에서는 사퇴 목소리도 거셌다.

임기 중에 집무실과 관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도 받았다. 1심 때는 유죄를 선고받고 임기 7개월 만에 법정 구속까지 됐다.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나오자 "절반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 '절반의 진실'을 찾지 못한 채 형사 처벌로 3년 만에 불명예 퇴진에 이르렀다.

김경수 후보 경남지사 당선 당시 모습김경수 후보 경남지사 당선 당시 모습

"배운 대로 하겠다" 노무현 길 걷고자 했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던 김 지사는 "배운 대로 하겠다"며 노 대통령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와 닮았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이던 노무현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험지인 부산에서 "지역주의를 넘겠다"며 부산 출마를 고집했다. "부산에도 야당을 찍어줘야 한다"고 외쳤지만, 결국 실패했고 이때 '바보'라는 별명이 생겼다.

김 지사도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험지인 경남 출마를 결심했다. 노무현의 꿈처럼 지긋지긋한 패권 정당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당시 김 지사도 이렇게 외쳤다. "막대기 꽂으면 무조건 당선시켜주는, 그래서 정치고, 경제도, 가장 뒤떨어져 있는 지역이 됐다"며 출마에 나섰다가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두 번의 도전 끝에 첫 민주당 간판을 단 도지사가 됐다.

전통적인 보수 텃밭에서 민주당계 당적을 가진 후보가 당선된 전례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당선은 수 십 년간 이어진 일당 독점 구도의 판을 뒤엎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노무현의 꿈'을 김 지사가 배운 대로 현실로 만든 셈이다.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 선거 캠프 제공김경수 경남지사 후보 선거 캠프 제공
또 하나의 노무현과 닮은 이야기가 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상대 후보로부터 장인의 좌익 활동 등을 빌미로 색깔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자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주십시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입을 맞춰 헐뜯는 것 방어하기도 힘듭니다. 저는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서까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면 대통령 그만두겠습니다. 언론에게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이 되지 않겠습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라며 정면 돌파했고 결국 대선 후보가 됐다. 이 연설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김 지사도 '드루킹 사건'에 연루되자 선거 캠프 개소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정면 돌파하는 당당함을 보였다. 연일 보수 언론과 야당의 공세가 거세지자 "분명히 경고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남자, 두드려 맞을 수록 오히려 지지도가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의 주인공, 강철은 때릴수록 단단해진다고 한다. 사람 잘못 봤다.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고 정면 대응했다.

당시 김 지사의 격정적인 연설은 특유의 거침없이 솔직하게 연설을 한 노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졌다는 얘기가 많았다.

김경수 후보 도지사 선거 운동. 당시 김경수 캠프 제공김경수 후보 도지사 선거 운동. 당시 김경수 캠프 제공
김 지사는 경남 고성 출신으로 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학생 운동을 하다가 3번 구속됐고, 1994년부터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활동하다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시작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제1부속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등을 지냈다. 노 대통령 퇴임 후에는 함께 김해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봉하마을에 남아 고인의 꿈을 지켰다.

당시 노 대통령 사저를 방문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워졌고, '박연차 게이트'가 터졌을 때 봉하마을에서 함께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도 했다. 이후 선거 데뷔전인 2012년 김해을 총선에서, 2014년에는 도지사 선거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도왔고, 2018년 도지사에도 당선됐다.

'완전히 새로운 경남, 더 큰 경남' 꿈 펼치지 못해, 도정 어쩌나

김 지사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을 만들겠다며 침체된 제조업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자 도정혁신과 사회혁신과 함께 경제혁신을 주도했다. 남부내륙고속철도 정부 재정 사업 확정, 스마트공장·산단, 스마트팜 혁신밸리 유치 등 경남 전역이 골고루 잘사는 균형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도민이 체감하는 행복한 변화'를 만들고자 부울경 메가시티와 청년특별도, 교육인재특별도라는 도정 3대 혁신과제와 함께 스마트뉴딜·그린뉴딜·사회적뉴딜 등 경남형 3대 뉴딜을 새롭게 추진했다.

취임 3년 차 접어든 올해 초부터 '위기를 기회로! 더 큰 경남, 더 큰 미래'를 목표로 코로나19 등 도민 안전 위기 대응을 강화했고, 부울경 메가시티 기반 구축과 스마트 인재 양성 등 청년 문제에 집중했다.

경남도는 각종 주요 현안 사업에 동력이 붙어야 할 시점에 수장을 잃으면서 당분간 어수선한 도정 운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남도 하병필 도지사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2시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혼란한 도정 다잡기에 나선다. 지방자치 출범 이후 경남에서는 벌써 5번째 권한대행 체제다.

2013년 김혁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 탈당과 함께 지사직을 중도사퇴했고, 2012년에도 김두관 전 지사가 대권 도전을 위해 직을 내려놨다. 2017년에는 홍준표 전 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무려 14개월 동안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졌다. 지난 2019년 1월 김 지사의 1심 선고 때 법정 구속으로 70여 일 동안 권한대행 체제를 겪었다.

김경수 지사 취임 3주년 기자회견. 경남도청 제공김경수 지사 취임 3주년 기자회견. 경남도청 제공
경남도는 침통한 분위기다.

도청 신동근 노조위원장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도지사의 유죄 확정으로 또다시 도정이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게 된 점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그동안 추진되던 각종 도정 정책들이 차질이 없도록 공직자들은 더욱 업무에 매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애초 연차를 냈다가 취소하고 이날 오전 출근해 코로나19 대응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마지막 회의인 셈이다.

선고 결과를 받고 도청사를 떠나 관사로 향한 김 지사는 관할 검찰청에 형 집행을 촉탁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이날 당장 수감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감될 곳은 주거지 관할 교도소인 창원교도소가 예상된다.

김 지사는 마지막 출근이 된 이날 도청을 나서면서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가 벽에 막혔다고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 저의 결백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최종적 판단은 국민의 몫으로 넘겨드려야 할 것 같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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