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한형·윤창원 기자 갑자기 해방전후사 논쟁이 소환됐다. 역시 정치권이 불을 지폈고 일부 언론들까지 가세했다.
'미군이 점령군이냐 해방군이냐'의 팩트체크는 본질이 아니다.
이런 불경스런 얘기를 꺼낸 의도를 저마다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바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일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이육사 선생의 딸을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외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국민의 성취에 기생한다"며 직격하고 나섰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최대 경쟁자를 겨냥해 처음 내보낸 메시지가 역사논쟁이다.
포고령 제1호 영어 원문. '우남위키'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1945년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학계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는 미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9월9일자 포고문에 점령군임을 명백히 자처한데 따른 것이다.
맥아더 사령관은 포고문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미군이 일본을 대신한 점령군임을 천명했고 일제 시대 통치 조직을 그대로 인정하고 심지어 영어를 공용어를 쓸 것을 명령했다.(원문 참조)
반면에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는 북한에서 조선인의 해방과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치스차코프의 포고문은 이북에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미군정에 대한 남한 주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성명의 성격이 강했다.
이후, 북한은 소련군의 위호 아래 김일성 공산정권이 탄생했고 남쪽에서는 반공을 내세운 이승만 친미 정권이 출범했다.
이승만 정권이 친일세력을 그대로 등용하고 친미 사대주의로 일관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통으로 이어진 출발점임은 분명하다.
부끄러운 역사도 자랑스런 역사도 다 대한민국의 역사다.
민중일보 맥아더 포고문 한국어 번역문. 우남위키 홈페이지 캡처 따라서, 이승만 정권의 적통을 굳이 부정하거나 미국을 천사와 악마의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화석화된 역사인식이다.
진보정권 10년과 보수정권 10년을 나란히 나눠가진 21세기 대한민국이 70년이 지난 지금 그런 역사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다.
이 지사의 발언은 보수를 친일과 친미 사대주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현 여권의 전통적 문법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 지사 공격 역시 장모 구속과 처가 의혹으로 위기를 맞자 보수의 처마 밑으로 소나기를 피해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해묵은 역사논쟁으로 물타기하려는 의도로 보기에 충분하다.
학계가 아닌 정치권에서의 역사논쟁은 항상 색깔론으로 등장했다.
왼쪽부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 이한형·윤창원 기자·연합뉴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색깔론은 정치권에서 '전가의 보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한지 오래다.
21세기 대한민국 역사는 70년 전 '점령군.해방군' 프레임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많이 발전했고 다이내믹하게 변해왔다.
30대 청년이 정통 보수정당의 대표가 돼 이같은 색깔론을 거부한 아젠다로 진보를 압도하고 있다.
이재명의 발언과 윤석열의 반박을 모두 듣는 2,30대들은 어느쪽에도 휘둘리지 않는 미래지향적 판단 능력을 갖고 있다.
색깔론은 약발이 떨어진지 오래다. 대선주자들은 이제 더 이상 역사논쟁이라는 탈을 쓴 색깔론으로 국민들을 우롱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